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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Feb 05. 2021

사람으로 얻은 상처 사람으로 치유하고

-‘찻잔 속의 태풍’을 일깨우는 공동체 감각 -

직장동료들과의 학습공동체가 구성된 첫해였다. 첫 모임에 앞서 장소 답사를 겸해 모임 운영을 의논하기 위해 총무를 맡은 후배와 커피숍에서 만났다. 경력 12년 차에 접어든 그녀는 신규 시절 만나고 오랜만이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자리에 앉을 새라 그녀에게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지 무서워, 정말 앞에 나서기는 두려워요”


신명 나는 사물 놀이패, 연극판의 능청꾼, 유능한 일본어

강사 전력의 그녀는 공무원으로 임용되었을 때부터 그 재기 발랄함이 돋보였었다. 못 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눈물의 사연을 들어보니 너무 돋보였던 게 문제였는가 보다.


직장 외국어 경시대회에서 영어분야 동상을 받았는데 어느 선배가 그랬단다.


‘넌 일어하는 애가 영어까지 해? 선택과 집중도 모르니?,


무대를 휘젓던 전력을 살려 장구동아리에 가입했더니 또다시 들려오는 표독스러운 어거지.


‘야, 이것까지 해? 하나만 해! 하나만!’




직장이라는 공동체로 진입하며 시도했던 그녀의 호기로운 도전은 상처를 입은 채 사그라졌다. 그녀는 군중에 묻혀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 했다. 학습모임도 거절할 수 없는 선배의 전화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단다. 그러고 보니 총무로 지명되던 자리에서 울 것 같았던 그녀의 표정에 드리웠던 공포가 이제야 읽힌다.  


“아이씨~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지금이 어느 땐데, 요즘 대세가 이 분야 저 분야 엮어서 창조하는 융합인재인 거 몰라요?라고 쏘아줬을 텐데”


공분하며 위로했지만 그녀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눈물과 두려움 속에 시작된 학습모임. 따뜻한 동행의 가치 안에서 뒷 담화나 연예인 얘기를 하지 않아도 흥미진진한 시간이 이어졌다. 업무개선을 논하고 책 읽기를 공유하는 건설적인 공동체를 처음 경험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팀원들의 신뢰를 얻으며 그녀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두려움을 떨치고 상처를 회복해 갔다.


움츠려 있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하며 그녀의 공헌도가 두드러졌으니. 새벽녘 오랜 시간을 고민한 게 분명한 참신한 문제의식과 제안들을 쏟아내며 존재감을 빛냈다. 그뿐 아니라 싱크로율 200%인 ‘얼큰이 오니기리 이모티콘’의 익살은 관계를 유쾌하게 이어주며 그야말로 행복한 공동체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관계의 첫걸음이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내 딛기 어려운 그 걸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관계의 목적지에 ‘공동체 감각’이 있다고 한다.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는다. 공동체 안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친구가 된 그들을 위해 공헌하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동체 감각’이다. 여기서 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타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꺼이 타인을 도우며 ‘나’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자발적 지원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관계라는 난제를 풀어나가며 갖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지금과는 다른 ‘너와 나’,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공헌할 수 있는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리라.


공동체의 범주를 넓혀 가면 좁게 제한된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고통이 ‘찻잔 속의 태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눈앞의 작은 공동체에 연연해 불합리한 선배나 상사와의 관계가 깨질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학습공동체 회의에 그녀가 분임을 대표해서 참석했다. 회의는 어땠냐 물으니 그녀가 민망한 듯 배시시 웃으며 답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고 너무 말이 많다고 제발 그만 얘기하래요’


주저함 없이 의견을 말하며 한껏 수다스러워진 그녀의 목소리에 자신감과 설렘이 깃든다.


오랫동안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흔들리며 입을 닫고, 아픈 성장통을 겪었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다시 동료들과의 동행과 지지를 통해 치유하고 인간관계라는 인생의 과제에 용감하게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닮은 ‘얼큰이 이모티콘’이 오늘 아침 익살스러움을

더하며 격한 웃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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