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30분, 회사에 도착하려면 몇 분 버스를 타는 게 최선일까? 8분에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위해 7분 안쪽으로 도착해서 타면 다행인 건데, 막상 3분, 4분에 도착하고 나면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마냥 핸드폰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5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아 운도 없지. 타이밍 딱 맞게 나오는 테트리스의 기다란 막대기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눈앞에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처럼 늘었다. 지난 금요일도 별생각 없이 똑같겠거니 하고 나온 그런 날이었다. 하늘이 뚫려있다는 거 빼고는...
'하늘이 뚫렸다'라는 말이 적절했다. 새벽때까지만 해도 성기던 빗줄기가 오전이 되자 몰아치는 비바람으로 바뀌어있었다. 한여름의 오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하늘은 어두웠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번쩍거리는 번개와 쉴틈 없이 내리꽂는 비는 오늘 하루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했다. 비가 온다는 건 동일한 흐름 속에 모든 것이 느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빗물이 옷에 튀지 않을까 조심조심, 차가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버스에 승객이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사람도 버스도 심지어 지하철도 엉금엉금 기어가는 그런 날이었다. 겨우 9시 언저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담궈졌다 나온 느낌이었다. 물밀틈 없이 꽉 찬 버스에서 누군가가 들고 있는 우산이 바지와 옷에 닿을 수밖에 없었고, 물줄기는 그렇게 옷을타고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바지 밑단부터 양말까지 젖어있었다. 출근만 했을 뿐인데 피로감과 멘탈은 퇴근 후 못지 않았다. 자리에서 마르는 옷, 양말, 바지에서 약간의 퀘퀘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런날에는 쪼리나 슬리퍼를 신게 해주면 안되나. 찝찝함을 이겨내고 옆자리를 보니 경기도 광주에서 출퇴근하는 짝궁은 아직 출근하지 못했다. 이런날은 사실 원거리 사람이 더 고생이다.
고객의 놓친 보험금을 찾아주겠다는 보상지원센터도 어느덧 일 년째였다. 덕분에 제휴사 직원으로 손해사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옆자리에 두게 되었다. 제휴업체에서는 이사라는 직함이 주어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했다. 나는 보통 엄팀장이라 불렀고 업무가 잘 진행이 안될 때는 '거기가'라고 불렀다. 거기가 앞에는 항상 '아니 그러니까'가 붙었다. 고객들은.. 고객들은 더했다. 운이 좋을 때는 이사님이라 불렀고 평소에는 저기요라고 불렸다. 저기요 정도면 가끔은 황송한 대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 아니, 그 병원이 수술을 잘해서 갔는데 대체 왜 보험금을 안주고 못도와준다는거야?"
광주에서 헐레벌떡 차를 타고 뒤늦게 온 짝궁의 핸드폰에서 "야" 라고 부르는 여자의 고성이 들렸다. 얼마전 의뢰가 들어왔던 고객이었다. 코가 선천적으로 휘어 수술을 한 고객이었는데 보험회사는 미용목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휜 코를 고치면서 높이를 살짝 올린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이비인후과에서 진단받고 성형외과에서 수술하면 일단 보험사에서는 미용목적으로 의심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억울해서 내가 이렇게 손해사정인지 뭔지 하겠다는거 아냐."
안검하수를 하면서 쌍커풀을 같이 하는 경우처럼 외모개선 용도가 조금이라도 들어간다면 보험금을 받기는 어려워진다. 어쩌면 엄은 이 고객에게 어쩔 수 없다는걸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보험사 생리 얘기를 다시 함으로써 뫼비우스의 띄같이 반복되는 순환을 한번 더 반복할수도 있었다. 엄은 대신 감각을 차단하는 방법을 택했다.
귓방망이를 때리는 민원인을 썩은 보릿자루라고 생각하고 대하라는 옛 오부장의 충고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 상상력과 연기력, 그리고 뻔뻔함. 너는 짖어라, 나는 멍 때릴란다. 엄의 두 눈은 촛점이 없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고, 두 귀는 모든 소리에 동등하게 무관심을 배분했다. 입으로는 저도 안타깝습니다. 감각의 공허 속에 파묻히기, 엄이 손해사정을 하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며 배운 능력이었다. 무려 40분을 공회전한뒤 전화가 끝났다.
"민원전화 받느라 고생했네, 오전은 허탕이구만."
"에이 괜찮아요. 그래도 오늘 금요일이니까."
금요일의 남자 엄. 엄은 일주일 중 삼일만 살았다. 삼일의 시작은 금요일 오후 6시였다. 평일에는 죽어있다고 말하는게 나았다. 하루 평균 20번 내외로 울리는 전화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조그만 민원에도 신경질을 내거나 점심을 먹지 않으며 하루를 예민하게 행동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은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한시간 멍때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면 또 일이 밀려 야근을 하게되는 악순환이었다. 하지만, 평일이라는 시간의 소실점 끝에 다가갈수록 엄의 모양은 반짝였다. 평소같았으면 또 돈 안되는 것만 상담했다고 실망했을텐데 "그래도 금요일"이라는 말로 넘겼다. 점심을 자주 해결하는 깐부치킨의 뷔페도 평소같으면 가격만 올린다고 투덜거렸을 것 같은데 오늘만큼은 "다 먹고 살아야지"라며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다. 생명의 기간이 살포시 오고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말투와 손짓, 그리고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크게 별다른걸 하는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거나 무협지를 보는 특별하지만 또 어찌보면 무난한 하루를 보냈다.
"이번 주말엔 뭐 재미난거 하시나?"
"그냥 뭐 맥주나 사다가 드라마나 봐야죠."
오후에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이어졌다. 도수치료, 백내장, 치아파절, 자잘한 수술비. 충분히 보험금을 안 줄만한 사유들이 있었다. 비슷한 대답을 수화기에 구겨 넣을 뿐이었다. 저기요와 야 사이에서 고객은 신경질을 내거나 실망을 표출했다. 엄은 동요하지 않았다. 도약을 위해 양 볼에 먹이를 축적하는 다람쥐처럼 무덤덤하면서도 차분하게 에너지를 아끼며 상담을 처리했다. 일주일에 뿜어낼 수 있는 감정의 총량이 정해져있다면 난 그것을 마지막 삼일에 몰아 쓸 거야.
"예이~! 편의점 들렸다 가죠!"
어느덧 퇴근시간이었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보니 마법처럼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가득했다. 햇살은 어둠이 드리우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억울함을 토로하듯 가려져있던 본 모습을 열심히 발산했다. 물에 젖어 무거웠던 옷은 날개처럼 가벼워진지 오래. 명암의 대비가 확실한 그런 날이었다.
엄은 퇴근하는 길에 수입 맥주 네 캔을 샀다. "에이 오늘 하루 공쳤네." "그래두 팀장님이 좋아하는 금요일이자나." 그래도 마무리는 팀장으로 해줘야지. "오늘은 저거, 종이의 집을 봐야겠어요." 엄은 코엑스 상단 전광판의 넷플릭스 광고를 보며 말했다. "재미없다는 혹평 많은데. 후회할텐데요?" 내 이야기를 들은 엄팀장은 살포시 웃고만 있었다. 금요일 퇴근시간에만 볼 수 있는 찐 웃음이었다.
"사실 지금은 클레멘타인을 봐도 좋을꺼 같은데? 금요일 밤이 왔으니까."
무엇을 하든 용서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 엄에겐 그게 금요일 밤이겠지. 엄과 헤어지기 전 나는 엄에게 매 순간이 금요일 밤 같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