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상황이나 삶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큰 나머지, 그 몫을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시간은 영혼없이 보내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사적인 상황은 지속성 있는 삶 속에서 찰나의 순간이라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루틴한 일상 속에서 훌훌 털어내게 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잘 걸러진 사금에서도 모래가 나오듯, 잘 닦은 바닥에서도 먼지가 나오듯,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런 사람을 만나곤 한다. 강사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지주사에서 우리회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강사원으로 바뀌면서 나는 그를 처음 접했다. 경력을 조회해 보니 1년 조금 넘은 사원이었다, 주 업무는 지주에서 필요한 우리회사의 각종 업무에 대해 공지하고 취합받는 일이었다. 보통 팀에서 막내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업무현황 파악, 문서 작성, 소통 등 기본적인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업무였다. 다수의 팀과 일정을 조율하면서 소통해야하는 취합 업무는 한량으로 지내려면 한없이 한량으로 지낼수도, 한없이 열정적으로 지내려면 그럴수도 있었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지주에서 내려온 보고의 기한이 짧다거나 지시한 내용이 수정을 하면 더좋아지는 경우라던가 필요한 상황인 경우, 혹은 반대로 취합받은 데이터가 잘못됐다던가 큰 폭의 개선이 필요할때, 얼마든지 자진해서 바꿔볼 수 있다. 하지만 회사생활이라는게 영혼 빼며 일하는 직원이 많아 대부분은 전자에 가까웠고, 강사원은 전자 중에서도 최고 수위인 사람이었다.
그는 조금 깊이 물어본다거나 대화가 길어질 경우, 더이상 하기 싫다는걸 마침표로 표현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라던가, [저도. 여기까지만. 들었습니다.] 라던지. 더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의사를 모든 단어 끝마다 넣으면서 표현했다. 상대방도 '아 이정도면 그만....'이라는 뤼앙스 정도는 바로 캐치해서 그렇게 대화가 끝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심부름을 떠나 사라진 함흥차사처럼 그 이후에 강사원의 피드백은 한번도 없었다. 취합한 파일이 이상이 있으면 우리만 된통 당할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영혼없는 온점주의자]라고 불렀으며, 중요한 일이나 궁금한 사항은 강사원을 패스하고 그 윗사람과 의논했다. 모르는 일은 먼저 말하는게 나중에 덜 깨지는 지름길이다. 굳이 따지면 다른 회사 사람인데.. 여기서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그를 서로 원치않는 자리에서 만나게 됐다.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대기업을 퇴직 후 전 회사에 인사차 들르러갔던 50대 임원이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며 뇌사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계단에서 넘어져 식물인간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고객 쪽에서는 두 가지를 물어봤다.
산재처리나 회사 단체보험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80%이상 상해후유장해가 2억이 가입되어 있는데 빨리 받을 수는 없는지
1번은 당연히 아니오일 것이다. 퇴직한 지 열흘 정도 지났지만 산재처리 및 회사 단체보험은 이미 끝난상황일 것이다. 두번째, 80%이상 후유장해는 두 눈이 멀거나, 행동이 매우 불편하거나, 거동이 거의 안되는 경우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해당한다. 문제는 뇌사상태(식물인간)로 80%이상 후유장해를 받으려면 이 상태가 1년 6개월 지속된 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뇌사에서 조금의 시간이 지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망보험금과 중복 지급받는 경우를 막기 위해 1년 6개월은 일종의 버퍼인 셈이였다.
뉴스에 나올법한 안타까운 사연을 무기로 줄 수 없는 보험금을 달라고 보험사와 이야기 한 경험이 있었다. 마른 걸레를 쥐어짜듯, 가느다란 실 위를 맨발로 겨우 지탱하는 사람들에게 불어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 실이 얼마나 가늘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물 한 방울 안나오는 마른걸레였다는걸 읍소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드려 매우 죄송합니다. 약관에 안써있는걸 해주는 건 다른 계약자들에게 피해가 도덕적 행위입니다. 죄송합니다." 이 건도 뻔했다. 뇌사상태로 6개월, 1년이 지나 보험사에게 보험금을 청구한들 보험사는 약관에 나와있는 1년 6개월을 주장할 것이다.
엄팀장의 메시지가 왔다. 보호자가 회사로 찾아왔다고 상담실에 같이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본사에서 챙겨주는 모습 보여줘야지. 나름 큰건이라고. 보호자가 젊은 청년이라 오히려 과장님이 와주는게 도움이 더 될꺼같음. 흠.. 나도 이젠 어디가서 젊은 나이라 하면 꼰데소리 듣는데.
마른 체격인데도 어깨가 넓고 눈빛이 명확했다. 단정하게 가르마한 머리와 날카로운 안경, 깔끔한 양복은 사무직을 연상케했다. 날이 좀 풀렸는데도 기다란 검정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검정색 긴 코트를 입은 날카로운 눈빛의 사람을 보자 어느정도 긴장이 됐다. "안녕하세요. 본사에서 엄팀장 도와 일하는 김종열과장입니다." 명함을 주고받는데 익숙한 이름이었다.
[개미 금융지주 강XX 사원]
"혹시 두 분? 업무로 마주치거나 그런적은 없져?" 엄팀장이 물었다.
"네. 없. 습. 니. 다." 강사원이 말했다.
마침표가 글에만 존재하는게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엄팀장이 잘해서 우리팀이 뽐낼께 있어야 지주도 찾아가고 그러지." 괜히 엄팀장만 타박하는 나였다.
단호한 말투였기 때문에 그때 상황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단호하면서도 과묵한 남자였다. 대부분 우리의 설명에는 아는 내용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지 않으며 설명을 조근조근 들었다. 어느정도 공부를 하고 왔는지 궁금한 사항을 종종 물어봤는데 꽤나 디테일했다. 판례, 보상 사례등을 디테일하게 물어봤다. 나와 얼굴이 마주치면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척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듯이. 비교적 강사원이 원하는 것이 적확하고 해볼만 한 것이어서 계약까지 수월하게 이어졌다.
<후유장해 평가는 1년 6개월 이후에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보험사와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서 6개월, 1년만에 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수수료는 사고 후 6개월, 1년, 1년 6개월이 경과될때마다 일정부분씩 낮아진다.>
"좋은 요양병원에서.. 몸이 괴사되지 않게 이곳저곳 잘 만져주는 곳으로 가야합니다. 어머니랑 이야기해보시고 계약서 꼭 확인해서 연락주세요."
"어머니가 몸이 안좋습니다. 그래서 저와 진행한다 보시면 됩니다."
이십분의 만남이었지만 드라마속 한 장면같은 그때의 상황은 잊혀지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에서 강사원의 상황에 대해 수소문해보니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7개월전부터 당뇨가 심해져서 앞이 점점 안보인다는 것.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얼마전 아버지가 퇴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직원이 어느정도 알고 상황이 이러니 지주에서 업무를 조금 빼줬다는 것까지. 아직 추가 정보가 업데이트가 안됐군. 주기적으로 간병을 해야할 일이 많이 생기다보니 퇴직을 한건데 더 안좋은 일이 들이친 것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쓰나미같은 일들이 몰아칠 때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까.
어제 일은 회사에서 티 안내셨으면 합니다.
메신저가 반짝였다.
알겠습니다. 잘해봅시다.
라고 썻다 지웠다.
잘 알겠습니다.
이 상황이 일단 익숙해지자 나도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업무를 하다 해결이 안되는거는 바로 윗선을 통해 이야기했으며, 강사원 역시 무거운 성격인지라 아무 말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강사원 아버지일로는 엄팀장과 한번 더 만났다. 육개월째가 되는 날 장해평가를 진행하고, 보험사에 청구했으나 역시나 거절당했다. 뭐 다들 알고있었자나. 이런 표정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속에서 강사원과 그렇게 종종 교차했다. 말 없이 일을 하고, 어려운것은 다른 라인을 통해 알아서 처리하고, 만나면 깔끔하게 일 얘기만 하고, 답답한 면은 있지만 큰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다. 종종 궁금한게 있었지만 이 이상 무엇을 더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사건이 벌어지고 9개월째 되던 날, 강사원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과장님. 술 한잔 하실까요?
지난 7개월동안 대화하면서 처음 본 물음표였다.
아 좋죠. 언제 되시나요.
저는 오늘도 좋습니다. 제가 삼성역으로 가겠습니다.
좋아요.
독한술로 짧고 굵게 끝내고 싶습니다.
삼성역 뒤에는 버번바배럴 이라는 바(Bar)가 있다. 작년까지는 8시전에가면 해피아워 타임을 운영해 퇴근하고 종종 갔던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위스키 값이 오르면서 그런 호사스러움도 없어지게 되었다. 약속시간인 6시 15분, 해피아워가 사라진 바는 손님이 없어 휑뎅그렁했다. 카운터 제일 왼쪽 자리로 가서 메뉴판을 폈다. 시작은 글렌드로낙 18이었다. 퇴근하고 지친마음을 달래주는건 쉐리만한게 없지. 15분이 조금 지나자 강사원이 들어왔다. 무표정한 표정, 날카로운 눈매, 가끔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 여전했다.
"유명하면서도 가격 안나가고 평범한걸로 주세요. 얼음도요."
유명하면서 평범한 위스키? 조합이 안되는 단어를 이야기하자 카운터에서는 발베니 12년을 가져다줬다. 그는 언더락잔에 발베니 12년과 얼음을 넣고 한입에 꿀꺽 넣더니 카운터에 하나를 더 요구했다. "이거보다 더 단걸로요." 그러자 맥켈란 12년이 나왔다. 그는 그것을 또 꿀꺽 마시고 눈을 사르르 감고 파르르 떴다."이걸로 계속 주세요." 세잔째부터는 맛을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시기 시작했다.
"저는 입맛에 맞는거는 빨리 찾아야 직성에 풀려요."
나 또한 빨리 마시는 성격은 아니라 강사원이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는 순간부터 박자를 맞추며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잔이 쌓여갈때쯤 그가 운을 띠우기 시작했다.
"고마웠습니다."
"뭐가요?"
"말 안해주신거요."
"아니 어차피 금방 다 알던데."
그러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퍼진건지, 회사 사람들이 다 알더라구요. 제 불.행.을. 이게 좋은지 안좋은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예 몰라주면 그거 나름대로 더 서글플텐데. "
"제가 아직 2년차라 그런가. 저는 회사에서 사적인 이야기하는게 항상 부담스러워요. 신입사원때 월요일에 출근하면 주말에 뭐했는지 물어보고, 점심시간때는 연애, 취미생활 왜 이런걸 계속 물어보는건지. 야구 좋아한다 했더니 며칠 후에 야구 동오회 총무라고 생전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 연락오더라구요. 왜 다른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알고 있는건지. 그래서 저는 일종에 회사에 올때는 스위치를 누른다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스위치? 회사에서의 다른 자아 뭐 그런건가?"
"비슷합니다. 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회사에서는 일상의 나를 버리는거죠. 주말에 뭐했니. 뭐했는지 기억 안나네요.. 그냥 뭐.. 놀다보니 하루가 갔습니다. 연애는 잘 하고 있니? 이런 질문엔 가상의 누군가를 만들어서 말하기도 했었구요. 점심 혼자 먹고 싶을때도 친구들 만들어냈죠. 뻔하고 귀찮고 영혼없이 대답하니까, 어느정도 알더라구요. 웃긴건 그러니까 그냥 다른 사원한테 가서 똑같이 물어보더라구요. 그냥 그 사람들은 그 시간에 귀로 흘리고 넘길 안주거리 같은거였던것 같아요. 이렇게 하니까 좀 낫더라구요. 그런데..."
그는 다음 문장을 말하기까지 한참을 머뭇거렸다. 바의 공기는 조금씩 더 어두워지고 서늘해져 마치 그가 말할 문장을 기다리면 폭발할것같이 응축되었다.
"어머니가 이렇게 되고, 단체보험을 청구하고 불가피하게 휴가를 쓰다보니 팀원들이 이런 상황을 다 알게 되더라구요. 알아서 일도 좀 빼주고.. 도와줄려고 하는데..."
"그런거 있자나요. 궁금한데 굳이 안물어보려고 참는 눈빛과 아니면 안쓰러운 표정들. 이럴때일수록 힘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 차라리 모른척 해주는게 좋은데. 그런 말을 듣거나 안쓰러운 눈빛을 볼 때마다 스위치를 키고 다른 자아로 무장했던 제 자신이 현실로 소환되며 무너지더라구요. 그런다고 불행이 줄어드는게 아닌데. 해결되는게 아닌데. 고통만 더 커지더라구요. 그리고 또 맞아요. 이런 생각도 많이해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종종 웃을일도 생기자나요. 근데 신경쓰이더라구요. 혹시나 팀원들이 부모생각 안한다고 생각할까봐. 그런데 또 죽쓰고만 있어도, 눈치가 보여요. 내가 괜히 팀 분위기를 망치는게 아닌지. 그렇더라구요."
"이미 죽은 사람을... 안보내고 붙잡아 두는것도 너무 힘든데... 그깟 돈이 뭐라고..돈때문에 뭐 하나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곱씹을수록 증폭되는 마음들이 있다. 그의 고통은 감당할 수준을 넘어 자체적으로 마음 속에서 증식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그는 비슷한 뤼앙스의 얘기를 한시간 동안 되풀이했다. 그러다 그는 툭 힘없이 "이 회사랑 안맞는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래도 힘 내야지 않겠냐. 일어날 일은 이미 일어난건데. 라고 힘 하나 없는 목소리로 옆에서 대꾸했다. 응축되었던 공기는 이내 산화되어 갈 곳을 잃은듯 고요했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걸 본 바텐더들은 우리쪽으로 오지 않았다. 공기와 느낌이 다른 독립된 공간에 있는것 같았다.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며 옆에서 하다 결국 나도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한 5분정도 침묵이 흐르자,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라며 그는 버번바배럴을 떠났다.
다음날, 그에게 힘내보자고 메신저를 보내려고 했는데 오프라인으로 꺼져있었다.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주 후 그에 대한 소식을 나중에 회사 부고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강사원의 아버지가 몇주 전부터 위독한 상태였다는 것. 연차를 쓰고 회사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는데 삼일 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장례식 후 그가 회사에 통보했다는 것. 지난 팔개월동안 2억이라는 돈을 받기 위해 식물인간 상태인 아버지를 지켜봤던 그는 모든것이 떠나자 슬픔과 고통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보험금도 받지 못하고 마음 속 죄책감의 멍에는 커져가고. 그리고 며칠 후 사표를 내고 쉬다 다른 회사를 알아본다는 말까지 이어서 들었다. 그다운 선택이었다. 몰아치는 파도를 견딜 수 없었던 이 시간들과 갖고있던 부담감을 떨치는 좋은 선택은 다시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문자를 하나 보내려 하다 괜히 잊고 있는 스위치의 버튼을 누르는것일 수도 있어 결국 보내지 못했다.
종종 그와 나눴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고통과 불행이 가득찬 상대에게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아직도 모르겠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오늘도 파일을 정리하다 그의 이름으로 저장된 사건폴더를 지나쳤다. 지나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미안함과 안타까움 등이 생각났다.
부디 다른 회사에서는 스위치를 고장내지 않고 잘 키고 끌 수 있길 바란다.
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그와 나와의 짧았던 시간도 마음속 어딘가 잘 간직되어 성장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