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인 동생이 의사 같지 않았던 인턴 초창기 무렵, 험악한 상처의 환자들을 보면 고통과 괴로움의 생생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상상할 수 없이 다양하게 입원한 환자들의 고통을 보고 사연을 들으며 일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종종, 죽음과 소멸 그리고 생의 실존에 대한 말도 했는데 결론은 항상 "의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끝났다. 환자에게는 한없이 높아 보이지만 의사 역시 실은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행위는 감정을 무뎌지게 한다. 4년 차 안과의사인 동생은 이제 핀이 눈에 찔린 사람을 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환자의 사정과 이야기를 본인과 독립시킬 줄도 안다.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직업이든 반복되는 특정 행위는 마음의 일부분은 무뎌지게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보험 사고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고객들의 무리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고객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풀어갈 수 없는 건이나 서로 돈이 안될 것 같은 사연은 칼같이 거절했다.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다. 울리는 전화 속에 허우적이며 사는 엄팀장은 정말 냉철했다.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케이스는 사례를 딱딱 짚어주면서 고객이 빠르게 포기할 수 있도록 정곡을 콕콕 찔렀다.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듯 우리는 그렇게 무수히 많은 고객들 사연 속에서 돈이 될만한 것들을 빠르게 찾아나갔다.
그날도 언제나 그렇듯,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링크된 기사와 함께 통화되실까요 라는 짧은 문자가 같이 왔다. 기사는 한 여성이 차를 몰고 강으로 뛰어 들어간 사건이었다. 특이점 하나 없는 자살사건이었다. 뭐, 보낸 사람은 다 이유가 있겠지. 빠르게 통화버튼을 누르고 대기음이 한두 번 흘렀을까, 상대방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자살로 추정되는 여성의 아들이었다. 격앙되면서도 묘하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어머니가 자살할 리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반복될수록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졌으며, 호소력은 짙어졌다. 반복되는 말임에도 확신이 점점 커져감이 느껴졌다. 아! 이 사람 많이 흥분한 상태구나. 고객은 경찰이 자살로 판단하지 않고 사망 원인이 안 미상으로 진행할 경우 상해사망 보험금 4억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애매한 건이었다. 자살 사건 중 종종 익사사고가 있었다. 차를 몰고 자발적으로 강으로 들어간 사람을 보고 자살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자살은 원칙적으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된다. 다만, 음주나 우울증의 여부에 따라 심신미약으로 주장하여 받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 고객이 자살로 판정된다면 음주, 우울증 등을 파악해야했다. 의뢰인 말대로 자살할 근거(유서, 평소 행동 등)가 없어 사망원인 미상으로 결론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사망보험금은 또 다른 문제였다. 사망 원인 미상은 말 그대로 증거만으로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기체 결함 등) 알 수 없다는 것으로써, 보험사는 이런 아리송한 건은 절대 지급하지 않는다. 이럴때는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 고객쪽에서 어느정도는 찾아줘야한다. 멀리서 볼 때는 진주 같지만 손으로 꽉 쥐면 모래가 흘러나올 것 같은, 그런 건이었다.
예상대로 엄팀장은 자살과 원인 미상의 결과에 대해 벌어질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포기를 권했다. 고객과 보험사가 비슷한 경우로 다투다 법원까지 가서 고객이 진 판례를 조리 있게 예시로 들었다. 옆에서 들어도 꽤 괜찮은 설득이었다. 서로 힘 빼지 말고 여기서 바이 바이. 그렇게. 그 후로 전화도 없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러던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큰 박스를 양손에 꽉 들고 한 고객이 성큼성큼 본사로 찾아왔다. 그 고객이었다. 그날 이후로 제대로 관리를 안 했는지 머리는 삼발이었고, 입술은 갈라지고 갈라져 피가 고여있었다.
"제가 이렇게 많이 준비했는데, 이걸로는 안될까요?"
박스 가장 위에는 사체검안서가 있었다.
사고 종류 : 익사
의도성 여부 : 미상
유서도 없고, 자살 일리가 없다는 하나뿐인 아들과 주변인의 증언은 어느 정도 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랬으니 사망 원인은 알 수 없음으로 찍혔겠지. 사체검안서 밑에는 망인이 꾸준히 갚아온 대출금, 세금, 월세 내역서와 예적금 통장 등이 있었다. 의뢰인은 [내 어머니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각종 모아 온 자료로 말하고 싶은 거였다. 중간에는 망인과 아들의 카카오톡 대화 출력본이 있었는데,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생의 의지가 느껴진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결국 망인의 사망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지난번 전화 내용에서 바뀔 건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의뢰인의 노력과 얼굴을 보니 냉정하게 단도리 치는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런 말 하기 정말 죄송스럽지만 사실 지난달에 안내해드린 것과 바뀐 게 없습니다."
엄팀장이 조심스레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거예요. 고객님이 모은 자료가 자살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될지 몰라도, 왜 돌아가셨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자살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사망 원인이 미상인 것부터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엄팀장은 자료 하나하나를 보며 최대한 고객 입장에서 이야기하려 애썼다. 고객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엄팀장의 이야기에 미동하나 변하지 않는 얼굴을 보며, 한 달 동안 많은 일을 겪었구나 생각했다. 엄팀장의 설명에 고객이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고,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나와 엄팀장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덧붙였다. 판례, 보험사 입장, 반복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다만 이 침묵이 너무 힘들 뿐이었다.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이윽고 그는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왜 차를 몰고 강으로 뛰어들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요. 유투브에 차를 몰고 강으로 뛰어내린 동영상을 찾아봤어요. 다양한 이유로 차가 떨어지더라고요. 기체 결함, 운전 미숙도 있고.. 물론 자살도 있겠죠."
"원인은 보험사에서 밝혀줘야하는거 아닌가요. 아무도 모른다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준비해왔는데..."
"이렇게 단박에 거절할 일인가요. 이게?"
울먹이며 그는 오분 정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듣는 내내 그의 감정에 몰입될 수밖에 없어 지금 기억나는 문장은 이 정도지만, 아마 오분내내 비슷한 뤼앙스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은 나는 처음이었거니와 숱하게 거절해온 엄팀장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일단 돌아가시고.. 한번 더 고민해보고 저희가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날 밤은 온갖 생각이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CCTV를 한번 찾아볼까.' '카드 영수증에 소주를 산 기록이 있던데 만취상태 아니었을까.' '남모르는 우울증이 있던 게 아닐까.' 상해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가정했지만 확실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어렵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래 속에서 진주를 찾는 일은 사실상 거의 희박했고 드라마에서나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다음날, 엄팀장도 잠을 잘 못 잤는지 얼굴이 띵띵 부어있었다. 나를 보자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 했다.
"의뢰인하고 전화했어요. 진행하기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이미 마음 깊이 훅하고 들어온 사람을 내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고 내치고 나면 종종 이 시간이 후회로 남을 테니까.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엄팀장은 나보다 더 전문가니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분석할 사람이니까.
엄팀장은 의뢰인과 함께 사건 현장인 구미를 1박 2일로 두 번 왔다 갔다 했다. 주변인의 증언에 대한 녹취, 망인의 흔적을 추적한 CCTV 등을 추가적으로 확보했지만 결정적인 건 없었다. 결정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적 증거들만 모아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사는 지급 거절을 하고 채무부존재 소송을 진행할 것이다. 패소할 경우 의뢰인이 짊어 저야 할 패소비용까지 생각해야 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청구하지 않는 게 낫다. 그렇게 답보상태로 고객과 통화 횟수도 줄어드며 육 개월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의뢰인이 손에 한아름 빵을 들고 찾아왔다. "업무차 들렀어요."라고 수즙게 말하는 의뢰인은 예전보다 말끔해진 머리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동그란 눈을 본 의뢰인은 "저도 이제 일 해야죠."라고 덧붙였다. 그렇지. 언제까지 슬픔과 함께할 수는 없지. 그렇게 이십 분간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밝혀지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은 여전했으나, 마음이 많이 평온해졌는지 농담도 줄곳 주고받았다.
"청구 시효(3년) 전에 무언가 나오면 좋겠어요."
"어차피 본가 갈 일이 종종 있어서 구미 돌아다니면서 찾아볼게요. 어머니 유품들도 다시 뒤져보고. 그때까지 도와주실 거죠?"
"당연하죠. 잘 되기만 하면 뭐, 저도 돈 많이 버는 건데요."
의뢰인은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떠났다. 고객이 가고 엄팀장은 의뢰인과 작업했던 자료들을 하나의 파일철로 묶고 있었다. 파일철 명은 [보험 미제사건 모음]. 엄팀장에게는 여러 건의 처리 못한 사건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같이 처리했던 사건 중에서는 이게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미제사건 1호인 셈이다. 해결된 것 하나 없어 일의 효율성으로 치면 꽝인 사건이었었지만 나도, 의뢰인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울림 있게 다가오눈 순간이었다. 언젠가 꼭 의뢰인이 갑자기 불시에 다른 증거를 들고 방문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 미제사건은 더 빛이 날텐데.
나는 종종 결과가 나오지 않는 누군가의 뷰 파인더에서 벗어난 사건에도 시야를 고정한다. 가끔은 모래 속에 진주보다 손에서 흐르는 모래가 더 소중한 순간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