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쫑쫑 Sep 21. 2023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평소에 생각하지 않던 질문들이 넌지시 다가올 때가 있다. 지난 모임에는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대부분의 멤버들은 '허락하는 한 오래, 아프지 않고'라는 뉘앙스의 대답을 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아프지 않고'였다. 아프지만 않는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멤버들의 이런 대답은 평균연령은 늘어나지만 잔병치례가 많아 원치 않은 아픔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역설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우리들 대부분은 죽기 전에 어딘가는 아프고 마음 쓸 일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불의의 사고가 덮치면 현명한 대처도 못한다. 치료나 간병 등의 막연한 이야기는 현실의 문제가 되고 금전적인 부분이나 가족 등 지인과의 관계도 삐끗 거린다. 얼마 전에는 암으로 의식불명 상태인 환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려 하니 계약자, 피보험자, 수익자가 환자 이름으로 되어있어 청구할 방법이 요원한 사연이 들어왔다. 해결 가능한 문제이나 시간이 필요했다. 미리 대처했더라면.. 머릿속에는 찰나의 진심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아프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항상 보면 삐그덕 거렸다.


보험 사건을 맡기는 대부분의 고객들도, 매일 보험사건을 보고 있는 나도 그랬다. 약속 없이 급작스레 찾아온 지금의 의뢰인도 그럴 것 같았다. 손에 서류만 꼭 쥔 채 허공만 바라보는 모습은 황망함 그 자체였으니까. 자리에 앉았음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멍하니 알 수 없는 곳만 쳐다볼 뿐이었다. '음' 작은 콧소리로 신호를 주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 안녕하세요." 정중히 인사를 하며 서류를 한 다발 나에게 건넸다. "의뢰인은 제가 아니라 아버지예요. 저는 너무 멀쩡하지 않나요? 아버지 건강검진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서류를 나에게 넘기며 그제야 남자는 한결 풀어진 눈으로 몸을 내쪽으로 향하며 대화를 시작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손해사정사분들이 다 출장 가서.. 제가 지금 이야기는 어렵고요. 저는 그냥 총괄하는 사람이라 서류를 잘 전달하겠습니다.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총괄하시는 분이면.. 좀 보고 설명할 수 있지 않나요? 오후 반차까지 내고 병원에 들렀다 소개받고 왔는데."


혹시나 아버지가 정말 아프셔서 대신 시간을 내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생각되어 차마 바로 보내진 못했다.


"그럼 그냥 증권하고 진단서 하고 보면서 살짝 점검만 해드릴게요."


서류가 많았다. 시작은 해남에 있는 한 병원이었다. 아버님이 해남에 사는 거죠? 건설, 토목 일을 하는데 최근 몇 년간 그쪽에서 일을 했어요. 해남 병원에서의 기록은 21년 12월이었다. 여러 가지 진단이 많은 사람이었다. 눈에 띄는 건 두 가지였다.


 I63.9 오래된 뇌경색

D12.8 대장의 양성신생물


오래된 뇌경색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뇌경색이 왔다가 갔다는 이야기였다. 뇌경색 자체는 보통 보험금을 지급하지만 오래된 뇌경색의 경우 발현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보험금 받기가 어려웠다. 아버님이 깜빡깜빡하실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 바로 병원에 갔으면 뇌혈관 질환비 다 나오는 건데. 아버지가 병원을 안 좋아하세요. 정말 이때는 아파서 가셨을 거예요. 대장의 양성신생물은 침윤 정도에 따라 소액암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많았다. 조직검사결과지를 보니 단순 양성종양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증거들이 많았다. 잘하면.. 잘하면 일반암으로도 가능한데. 흐음. 수술을 여기서 안 했네. 이거 때문에 삼성의료원에 갔나? 조심스레 그 다음장에 있는 삼성의료원 진단서를 펼쳐보았다


C88.4 B-세포림프종

D12.8 대장의 양성신생물


삼성의료원 진단서는 두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진단일이 22년 7월이었다는 것이었다. 해남에서 진료를 받고 6개월이 지나도록 대장에 있는 용종을 방치했다. 이 사람 정말 아파야 가는 사람이네. 두 번째는 추가로 말트림프종 진단을 나온 것이었다. 말트림프종은 보통 위에서 발현되는 림프암의 일종으로 진행은 느리나 위험도는 높아 보험에서는 고액암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다만 많은 보험금이 걸려있는 만큼 고객이 잘하지 않는 분자 유전학 검사지를 요구하는 등 보험사에서는 잘 안 주려했다. 대장 용종은 해남 병원과 의견이 같아 보험사와 잘 풀리기만 하면 소액암(대장용종), 일반암(말트림프종), 고액암(말트림프종)을 한 번에 다 받을 수 있는 희귀 사건이었다.


"잔병도 많고, 지나간 증상도 있었고.. 이 정도면 안 봐도 뻔합니다. 몸관리를 잘 안 하시는 분 같은데. 좀 괜찮으신가요? 입원하라고는 안 하셨나요?"


"아버지가 왜 여태까지 병원 한 번 안 가셨는지. 일단 통원으로 약물 치료받아가면서 해보라 하시더라고요. 말트암이 조금 애매하다고 의사분이 한번 손해사정사분 찾아가라 해서.. 아버지는 돈 그거 얼마 더 받자고 이러냐 해서 제가 왔습니다."


고액암 이천만원은 작은 돈은 아니었다. 돈의 액수보다는 고액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의뢰인 아버지의 마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도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을 별거 아니다는 말로 부정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맞아요. 이 얘기 꺼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고집도 세셔서 힘드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제 아버지가 똑같이 이랬거든요."


일어난 일을 인정하지 못하며 초기 증상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몸의 이상 증상을 조금씩이나마 발견하면서도 끝끝내 고개를 돌리다 일이 터지면 주위 사람과 소통하지 못한 채 사실을 외면하거나 부인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몇천만원 보험금이 걸려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하는 사람들. 왜 그들은 끝끝내 이런 대응을 하는 걸까? 나는 이런 사람들은 '모래 속에 머리 박는 타조'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한다. 눈앞에 닥친 적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모래 속에 콕 머리 박는 타조의 행동과 몸에 닥친 위험을 직면하기 두려워 바쁨과 귀차니즘을 핑계 삼아 매년 검진을 미루는 사람들의 행동의 근원은 비슷했다.


"뇌출혈이었는데 우기시는 바람에 진단비를 결국 못 받았어요. 재활과정도 썩 좋지 못했죠."


"사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서울에서 재활을 좀 하셔야 할 것 같은데. 해남에서 계속 통원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혹시,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딱히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극복할 게 있나요. 시간이 지나고 다 수긍하면서 사는 거죠. 서류를 가지고 손해사정사와 전문의 의견을 물어보고 연락을 준다 하고 의뢰인을 보냈다. 무의식 속에 깊이 감추어둔 우울하고 슬픈 기억의 편린들은 특정 상황에 맞물리면 깨어난다. 어떨 때는 소리가, 어떨 때는 냄새가, 어떨 때는 장소가, 그리고 지금은 의뢰인의 사연이 가둬둔 심연의 기억을 콕콕 찔렀다.


"너는 왜 결혼 안 하니? 뭐뭐.. 문제 있어?"


힘겹게 마비된 왼쪽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앞으로 나아가며 호통을 쳤다. 한걸음 내딛고 멈추는데 일이분씩 걸리는 일을 다섯 번 정도 하면 이내 지쳐 가로등을 잡고 쉬기 일쑤였다. 일주일에 주 3회, 세 시간. 나에게 주어진 어르신과의 산책 미션이었다. 뇌출혈로 일주일 넘게 입원하다 퇴원한 어르신은 왼쪽 다리에 심한 마비 증상이 왔다. 담당 의사는 편마비(몸 반신이 마비되는 것)가 아니고 한쪽 다리만 마비된 것은 운이 좋은 케이스라 말하며 재활만 잘하면 된다 했다. 편마비 증상이 있는 고객의 후유장해 감정을 몇 번 해봤기 때문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치료센터, 집안과 그 주위에서 걷기를 병행하며 재활을 시작했다.


문제는 어르신의 입과 태도였다. 나와 동생에게는 결혼, 돈 관련 이야기로 길여사에게는 친정에 연락을 안 한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며 괴롭혔다. 60세 이후는 의존하지 않는 상태에서 의존하는 상태로 바뀌기 쉬운 시기였다. 재산은 사라지고, 친구는 단절되고, 꿈은 없어지고, 남아있는 날이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낮아진 자존감과 몸의 아픔 숨기기 위해 타인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를 했다. 뭐... 이해한다. 삶의 위태로운 부분을 항상 정면으로만 직면한다면 누구나 항상 녹다운 상태일 것이다.


한 달 후, 결과와 진행방향을 의논하기 위해 의뢰인은 한번 더 사무실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의뢰인의 아버지와 함께였다. 정자세로 앉아 서로 서류를 보며 차근차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의뢰인이 혼자 왔을 때 느껴졌던 긴장감과 당혹감은 없어졌다. 오히려 은은하게 안온한 분위기가 퍼져가는 게 느껴졌다.


"주치의와 자문의사분이 잘 써주셔서, 말트 림프암은 고액암으로 인정받을 것 같습니다. 대장용종도 유사암으로 가능해서, 모든 암 보험금을 한 번에 받으실 것 같아요."


아버지와 아들이 눈꼬리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마스크로 가렸지만 희미하게 웃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암 보험금이 나오는 건 매우 드문 케이스고 잘 풀린 거긴 하지만, 그만큼 몸이 위험하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약이 잘 받아서 입원하고 방사선 치료 같은 건 아직까지는 필요 없다 하더라고요. 다행이죠. 해남에서 하던 일을 접고 이제 쉬려고요. 참 일이 뭔지.. 포기가 안 됐지만.. 내 몸이 제일 소중하지 않습니까. 주위에서 고생도 하고... 느낀 게 많았습니다."


뭔가 있었구나. 가족의 아픔만큼 그들을 변하게 하는 것도 없다. 물론 변하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었다. 옆에서 아들이 거든다.


"시간이 정말 약이었더라고요."


의뢰인 부자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아마도 보험금을 청구한다면 의사 소견대로 다 나올 것 같았다. 처음 의뢰인이 걱정과 근심은 많이 사라졌으며, 아버지 또한 듣기와는 다르게 고집은 보이지 않았다. 의뢰인이 처음에 잘못 말해준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함께한 세월이 거진 사십 년일 텐데. 지난 한 달간 사정을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무엇인가 잘 풀렸다는 사실을. 무언가 가족 간의 변화가 있었겠지 생각할 뿐이었다. 한 달 동안의 사연을 굳이 묻지 않았다. 보험금을 잘 받게 해 주는 게 일이고 잘 해결 됐으니까.


삼성역 사거리는 지하 복합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소음과 교통체증, 평상시와 같이 일을 해도 부쩍 피곤해진 느낌이다. 터벅터벅. 찬 바람은 매서웠다. 영하 16도는 정말 한겨울이구나. 불어오는 바람에 귀를 막고 집 문을 여는 순간 길여사와 어르신이 투닥거리는 장면을 목도했다. 동생이 전날 늦게 에그타르트를 여섯 개 사 왔는데, 하루 만에 다섯 개가 사라진 것이었다. 길여사 한 개 먹고, 동생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 들어왔다. 그러면 나머지 네 개는 누구입으로 들어갔을까? 초등학생도 알만한 수학문제를 나는 아니라고 어르신은 발뺌했다. 그놈의 고집은 참.. 어르신은 지금도 한쪽 다리를 살짝 절으며 걷는다. 발음은 약간 어눌해졌다. 재활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은 힘들어했고, 어느 정도 몸이 낫자 그 이상은 괜찮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우리도 그냥 포기했다. 고집 센 어르신과 그걸 고쳐보겠다고 항상 팩트를 날리는 길여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나와 동생.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한결같았다. 가족이 아파도 삼십년째 변함이 없는 우리집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 달 만에 변하기도 하던데. 하루만에 변하는 사람도, 평생 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뭐, 모범답안은 없으니까.


모든 사람은 끝을 향해 가고 결국 죽는다. 누군가 강제로 브레이크를 밟고 묻는다. 많이 아파 보이는데 의지할 사람과 돈은 있나요? 목적지까지 멀었는데 안전벨트는 든든하신 거죠?


보험회사에 오래 다녔더니 주변에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도면 충분 하겠지? 요즘 간병보험이 뜨겁다고 하던데 나도 들어야해? 이런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도 나의 먼 미래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될지 사실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아픔이 온다면 고통은 어느정도이고 나는 잘 대비하고 있는 걸까? 내 관계는 어떻게 뒤틀릴까? 너는 어떻게 될까?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대답을 머뭇거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눈물을 흘릴 수도, 아웅다웅할 수도, 생전 느껴보지 못할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미리 알아도 크게 달라지는건 없다.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그러니 괜찮다. 너무 무겁게 살지 말자.

이전 01화 어떤 전화 한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