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XX 고객님
기존에 안내드린 바와 같이 고객님이 청구하신 악성암 진단 적정성 여부에 대해 의료 자문을 실시하였고, 관련 규정에 의거하여 자문 결과를 안내해드립니다.
의료자문 시행 병원 : 한양대학교병원
의견 : 치료병원(서울대병원) 병리검사 결과와 동일하게 병변 0.7CM의 상피내종양이며, 악성암으로 볼 수 있는 침윤이 없음. 따라서 최종 진단명은 고객님이 청구한 악성 폐암(C23)이 아닌 좌측 폐의 제자리암종(D02)가 적절함.
당사는 의료자문 결과를 토대로 고객님이 청구한 폐암진단금 3,000만원을 검토한 결과 일반암이 아닌 제자리암으로 300만원만 지급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고객님의 쾌유와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험회사 10년 차인 나도 보험에 대해 모든 걸 안다 생각했으니까. 그 시간 동안 대부분 백오피스에서 약관, 의학서적, 보험사고 등을 눈으로 보며 보험금이 어떻게 지급되고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웠다. 보험사고는 뉴스와 전산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었고, 우리는 그걸 수치로 환산해 손익 보고서를 작성하기 바빴다. 그것만이 진실이고 정답인 줄 알았다.
업무가 바뀌고 직접 고객과 대면하는 보험금을 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현장은 너무 다르다는 것. 약관과 진단서, 사고내용, 대처방안은 활자로 쓰여있었지만, 전화상으로 문의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사고 경위와 아픔을 토로하는 고객, 어찌 보면 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실제였다. 사무실에서 활자에 적힌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실제는 활자와 너무 달랐다. 100% 일치하는 일도 드물었고, 활자에 있는 대로 설명해주면 고객은 참담해했으며, 방법이 없냐고 되묻거나 가끔 이런 것도 못 도와주냐며 한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활자에 쓰여있는 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렇다. 실제는 격정적인 상황이 많아 활자따위는 자근자근 씹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와 내 주변 사건을 통해 기억되는 장면들은 미약하지만 도움이 됐다. 실제 느껴졌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대응방안을 생생하게 알려주면 고객들은 어느 정도 진정되곤 했다. 감정은 활자를 뚫고 가니까. 하지만 기억의 재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기억은 경험했던 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돼 나를 침울하게 만들었다. 악성암의 제자리암 논쟁이 그것이었다.
암은 기본적으로 악성종양이다. 다른 세포의 생활을 방해할 만큼 번식력이 좋아 궁극적으로는 생명에까지 위협을 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은 빠르게 잡아야하며 의료기술의 발달은 이를 가능하게 했다. 빠르게 발견되는 암을 통칭해 제자리암이라고 하곤 한다. 말 그대로 암이 다른 곳을 침투하지 않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초기단계라는 뜻이다. 보통 0기암, 상피내암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변부를 침투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를 잘 받으면 완치율이 상당히 높다. 주기적인 건강검진과 의료기술의 발달은 암을 제자리 단계에서 잡아냈으며 보험사는 제자리암을 따로 분리하여 일반암 보험금의 1/10 정도로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제자리암과 일반암이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보험사는 제자리암을 고객은 일반암을 주장했다. 우리에게 들어온 의뢰건도 그랬다. 고객은 주치의를 통해 폐암(C코드)진단을 받았으나 보험사는 다른 병원에서 자문을 받아 제자리암(D코드) 이라 말하며 3,000만원 보험금을 300만원만 준다고 한 것이었다. 암의 크기가 작을 때는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해야 정확히 그 단계를 알 수 있다. 수술 전에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통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한 상상을 하며 정신적 피폐함으로 신음했고, 혹시나 하는 죽음의 순간에 대해 상상하며 밤잠을 설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런 상황에서 보험사가 돈을 적게 주겠다고 하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췌장에 종양이 양성이 아니라 악성일 가능성이 높다네. 같이 봤는데 크기를 보니까 0기나 1기일 확률이 크고 나빠봤자 2기인거 같아. 췌장암은 조기에 발견하기 어려운데 운이 좋았지."
집집마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들이닥칠 때가 있다. 4년 전 이맘, 딱 여름이 시작할 때 그런 순간이 우리집에서 벌어졌다. 동생이 아산병원에서 MRI를 찍고 췌장암 의심 선언을 한 날이었다. 우리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완치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걱정 말아라. 다른 가족에겐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유난 떨지 않았으면 한다. 감정을 꾹 누르며 이야기하는데 나와 길여사는 이견을 달 수가 없었다.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씰룩거리는 입술과 창백해지는 얼굴, 초점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공허한 눈빛은 본인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술 날짜는 3주 뒤로 잡혔다. 동생은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방에서 꼼짝 않고 나오지 않는 시간이 많았다. 길여사는 "내가 이 나이 먹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고 말하며 욕심 많았던 교감선생님 자리를 그만뒀다. 그리고 절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무얼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배운 췌장암 관련 내용은 치사율 90%이라는 점과 높은 치사율로 특정 회사는 고액암으로 빼뒀다는 것. 다행스러운 건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뒤에 따라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는 무얼 말해야 할까? 좀 찾아봤는데 초기라 괜찮을 거 같아라고 말하기엔 너무 남일 말하듯 하는 것 같았고 그저 일상 이야기만을 하자니 무심해 보였다. 같이 걱정을 하자니 우울함만 증폭될 것 같았다.
마음속에 담겨있는 감정과 달리 발화되어 나가는 말들이 너무 가볍거나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까 봐 결국 아무 말 못 했다. 그렇게 수술이 다가올 때까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길여사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떤 말과 행동을 취해야 할지 사소한 행동이 오해가 되지 않을지 염려하고 조마조마하며 매일을 보냈다. 종종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렸으나 디폴트는 침묵이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수술을 앞두고 동생한테 카톡이 왔다.
-아니 근데 있잖아. 오빠 덕분에 내가 보험을 좀 많이 들어놨잖아.
-그치그치. 암은 꽤 될 텐데.
-한 4,000만 원인데. 이게 나도 지금 알았는데. 제자리암이면 400만 원만 주더라? 알고 있었어?
-제자리암이면 암이라고 볼 수 없지 않나? 좀 과하다 싶은 거지. 그래서 그런 거지.
-뭐.. 보험회사 입장은 그렇겠지.
5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동생 톡이 오기 시작했다.
- 나처럼 까 봐야 아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그때까지 받는 스트레스는 동일하지 않나? 근데 넌 알고 봤더니 별거 아닌 거 같으니 조금만 주겠다 하면 좀 그렇지 않나.
-음.. 그래도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좋게 생각해야지 뭐.
-그리고 이게 일반암, 제자리암이 무 자르듯 경계가 명확한 것도 아니라고. 논쟁도 많을 텐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수술 후에 볼 책들을 동생 방에 한아름 갖다주고 대화를 끝냈다. 다음날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는 동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동생에게 팁을 알려줬다. '제자리암일 때 소견서에 침윤 정도와 위험성을 꼭 이야기하래. 그럼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데.' 동생은 웃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9시간이 넘는 수술을 했고, 그 수술의 여파로 입원실에서 폐렴을 격렬하게 앓았고, 4개월 정도 회사를 쉬며 강릉에서 지내다 완쾌되어 돌아왔다. 암은 1기였다. 현대해상에서는 심사자가 암의 크기가 작다며 조사가 필요하다고 동생에게 전화했다가 의사의 지식 아래 한없이 작아짐을 경험하고 바로 4,000만 원을 지급했다.
우리 가족은 4년 동안 그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4년 전 동생과 이야기했던 대화가 종종 생각났다. 내가 대답을 너무 실무적으로만 한 거 아닐까 하는 것과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 대화를 복기해볼수록 의사-보험회사 직원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때는 너무나 활자에 매몰된 시기였다.
"라이나에서는 진단서를 보고 폐암이라고 암 보험금을 지급했는데.. 삼성생명에서 내가 진단받은 암이 폐암이 아니래요. 이게 말이 됩니까? 주치의가 다 써준 내용을..."
이XX 고객은 격정적으로 화를 냈다. 내가 보더라도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이었다. 주치의 의견과 보험사 의견이 다를 순 있어도 보험사마다 다른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건 보험사와 다퉈볼만한 사건이었다.
"이런 건 말이 안 되죠. 보니까 크기는 작지만 약간의 침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상품도 예전 상품이라.. 약관이 명확하지도 않아요. 경계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 고객편을 들어줘야 하는 게 맞습니다. 치료받는 과정도 힘드셨을 텐데...."
애매하게 결과가 나오는 사건이 있었다. 보험사는 별거 아니라 말하고 고객은 억울해하는 그런 일들. 활자로는 분명 첨예한 차이가 있다고 쓰여있으나 실제는 달랐다. 애매하다고 해서 육체적 아픔과 심적 불안이 덜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걸 비슷한 사례의 고객에게서 그리고 동생을 통해 알았다. 알면 알수록 감정적 공감이 격해졌고, 그런 시간을 거쳐 나는 활자와 실제를 넘나들며 미약하게나마 공감과 현실을 짚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알에서나 볼 것 같은 사건이네. 이런 거 많이 봤으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아?" 친구들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받은 질문이었다.
분명 나는 많은 사건과 고통을 확인했다. 죽음도 많이 목도했다. 그렇기에 친구들은 내게 삶의 이유나 목적 같은 거에 그럴듯한 답변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1000명의 고통과 사건을 확인해도, 솔직히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내면은 어차피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래도 확실한 건 우리는 죽음으로 향해가고 있고 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고통과 마주할 것이다. 친한 지인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필멸의 존재임을, 도처에 무수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대면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경험과 배움은 감정을 풍부하게 하니까. 그런 시도를 한다면, 적어도 아픔을 겪고 나서 한참을 비명을 지르는 사람에게 이제 때가 지났다고, 예의를 갖추라고 야단칠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은 항상 어디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