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점차 폭주하는 부양가족 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파이널 스테이지 급인 최강자 씨앗이 또 도착하고야 말았으니..
그것은...... 바로바로 '토종 목화씨'
<목화학교> 소식을 듣고 바로 등록을 하였기에, 목화를 직접 재배할 수 있도록 씨앗 나눔을 해주셨는데 그 패키지가 오늘 도착한 것이다. 주위에 나눔 할 수 있도록 좀 더 씨앗을 보내달라고 요청드렸더니 감사하게도 흔쾌히 따로 더 챙겨주셨다.
문익점이 붓 통에 넣어 힘겹게 들여온 그 소중한 목화. 몇십 년 사이 거의 전멸한 우리 땅의 토종 목화. GMO (유전자 조작된)와 화학비료 떡칠의 미국 목화로 우리 솜들이 대체되고 석유로 만든 폴리 이불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소중한 유산을 걷어 차 맥을 끊어버리고 있는 한심한 우리 시대.
이 목화씨를 받아 들고서, 무척 기쁨과 동시에 또다시 독립투사의 열정이 불타올랐다. 나는.. 나익점이다!
<목화학교>에서 보내주신, 세심한 프로그램 패키지. 감동 덩어리.
처음 손에 잡아보는, 진짜 우리 토종 목화의 천연 솜(꽃)과 그 친절한 설명.
보들보들. 포근하고 따뜻하고. 실과 옷의 기본이 되는 그 원점. 소중한 자연의 선물. 귀중한 자원.
나익점이 올해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우리 목화 씨앗을 손에 얻게 된 것은 참으로 행운이지 않을 수 없다. 목화는 올해로 시작하여 평생 내 삶에서 떠나지 않도록 할 거야!
하나, 둘.. 아주 작은 발걸음이지만 '토종씨앗, 자연 농사, 먹거리 자급'계의 신생아는 이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두근두근~ 드디어 오늘이 목화 학교 '2021 목화랑 놀자'의 첫 시간이다.
* 옷을 키우는 목화학교 : http://slowcotton.com
목화씨를 손에 받아 들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심고 기르는지 (기르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 이것에서 어떻게 실이 나오고, 옷이 만들어지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몇십 년 사이 완전 절단 나서 끊어져 버리는 이런 고유의 지식들과 자연 이용 지혜들을 나부터 하나하나 알아감으로써 부지런히 회복해나갈 것이다. 부푼 기대감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말로만 들어보았던 '직조'. 어떤 만들어진 틀이 아니더라도, 나뭇가지를 가지고 만으로도 무언가를 짤 수 있구나! 신선한 충격. 천연 염색도 알고 싶고~ 알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다.
살아있는 진짜 지식 말이야.
목화가 꼭 하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약간 녹색빛, 갈색빛 나는 솜들도 있어서 천연으로도 다양한 멋스러운 색상들이 여럿 나올 수 있다. 사진으로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아름답다.
목화씨에 기름이 많아 물을 밀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 상태에서는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것이 의도였을 텐데.. 아니면 타 생물체들이 열매처럼 먹고 소화하여 씨앗을 똥으로 나오게 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나? 이 부분은 추후에 공부해서 알아보아야겠다. 궁금해지는 부분.
기름이 많아, 인공적으로 발아시키려면 (예전에는 오줌물에 삭혔다고 하는데, 얼마나 어떻게 삭혀야 하는지 모르겠고), 비누로 기름기를 제거하여 물에 불려서 발아시켜야 한다고 한다.
아!!!! 3대 GMO. 목화, 옥수수, 카놀라유.
거의 대부분이 미국 목화로 대체되어 의존하고 있는 이 현실. 그 목화가 GMO 작물이고, 저런 끔찍한 자연피해들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나도 이번에서야 처음 알았다. 이렇게 세상은 사람들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하염없이 모든 면에서 파괴되어가고 있다.
패스트패션. SPA. 나도 편리함을 이유로 애용하고 또 애용했던 매장과 옷들.
이 패스트패션을 소비함으로써 + 그것을 위해 생산함으로써 끼치는 말도 못 하게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마침 이 수업을 듣고 난 직후에 한살림에서 <그린피스 - 패스트패션 관련 강의>가 다음날 열린다는 소식이 왔다. 바로 그다음 날, 이어서 강의를 듣고 조금 더 제대로 이해했다.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지금 내 삶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소비-생활양식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에 대해 안심을 하게 되었다. 패스트패션을 알고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미 난 옷에 대한 소비를 최소화하였고, 거의 모든 옷을 되살림 가게 등에서 사 입기 시작한 지 이미 꽤 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이미 멀쩡한 옷들이 차고 넘쳐난다.) 앞으로는 점점 더 마음대로의 수선이나 조합, 직조를 통한 만들기까지 나의 자립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패스트패션 강의 들었던 부분은 언젠가 따로 글로 남겨보기로 한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목화솜. 보들보들 말랑말랑. 손으로 조심스레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그렇게 품에 안겨본다.
그 목화솜(꽃) 안에 예쁜 씨앗들이 숨어져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자, 처음 해보는 경험!
이 씨앗을 손톱으로 하나씩 떼어내기부터 시작한다. 쉽게 떨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예부터 솜을 빼내는 기계 ' 씨아'가 만들어져 이용되었다고 한다.
* 목화솜 빼는 기계, 씨아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4200#
슬픈 사실은, 우리나라 '씨아'는 역시나! (전쟁, 침략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옛것의 소중함과 보존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전승을 소홀히 여기는 인식들도 한몫할 것이다) 완전히 소실되어 버렸고, 재현도 어렵다고 한다. 유일하게 일본에서 이 기계를 대대손손 이어가고 전통 기구를 개량하면서 발전시켜서 아직 남아있고, 구하려면 일본 직구를 통해 역으로 들여와야 한다. 원통스러운 대목이다.
아따 마. 절단 났다. 절단 났어!
'기록'과 '전승(관심과 적극적인 행동으로서의 보존과 개량)'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씨앗을 조금 더 요청하여 추가로 받았다. 주위에 최대한 많은 목화씨를 뿌리기 위해서인데, 바로 씨앗 독립투사 '나익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포장되어왔던 종이봉투를 다시 잘라 재이용하여 씨앗 봉투를 만들고 10알씩 소포장하여 보물을 곱게 싼다.
드디어 포장 완료!
씨앗과 함께 받았던 설명서 내용과 목화 학교 수업에서 알게 된 내용들을 혼합하여, 간단하게나마 나름의 '목화 안내서'를 손수 글씨를 써서 제작하여 두었다.
이곳저곳에 알림을 하니, 다행히 목화씨에 관심 갖는 분들이 꽤 있어서 나의 목화씨들은 하나 둘 새 주인을 찾아 각지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씨앗 나눔 받으시는 분께서 글쎄, 키우고 계시던 '달래'와 '돌나물'을 보내주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선물 경제이다.
그래서 나도 또 고마워서 내 작업 물들(그림일기 엽서, 법구경 카드 등)을 함께 선물했다.
첫 목화씨를 나누고 선물로 받게 된 예쁜 돌나물과 달래.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나오늘 식물 보육원 식구'가 또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식구가 또 있었다. 다리가 무척이나 많은 복슬복슬 털복숭이 새로운 생명체
돌나물이 담겨있던 흙에서 이 친구도 함께 먼 곳을 이동해 왔다. 포천 텃밭에서 이곳까지 순간 이동하였으니, 가히 우주선을 타고 은하계를 넘어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잘 살아보자~ 새로운 식구야! 반갑다 :)
이렇게 옥상의 생태계는 조금씩 다채로워지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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