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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Dec 17. 2018

무결한 행복

오랜만에 찾은 친구를 보며

Jul. 2017, E100VS, Tempe

내 고등학교 3학년 때 단짝은 꽤 키가 큰 친구였다. 

어찌나 키가 크고 힘이 센지, 그의 별명은 박찬호, 임꺽정 같은 거구들의 이름이었다. 

덩치와 달리 성격이 곱고, 유쾌한 친구여서 그와 시간 보내는 걸 좋아했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동급생들은 물리를 배우기 싫어했고, 

수능 선택과목으로 물리를 선택하는 것을 꺼려했다. 

과목의 난이도를 떠나 보통 물리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만 선택해서, 

조금이라도 문제를 틀리면 상대 점수가 크게 내려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그는 그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와 같이 물리를 선택했고, 항상 나에게 많은 걸 물어봤었다. 

아마 그의 꿈이 기계공학자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순박한 그는 성적과 무관하게 계속 물리 공부를 했고, 수능을 마쳤다. 

그는 집이 서울이었지만 성적 때문에 내가 잘 모르던 지방의 한 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SNS도 없던 시기라 그와 차츰 멀어졌고. 

마지막으로 그와 연락이 닿았던 건 아마 대학교 1학년 초의 봄이었다. 

아마 새로운 학교에 진학해서, 어떻게 수업이 흘러가는지 잘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내가 서울대에서 무슨 교재로 물리를 공부하고, 어떤 책을 사야 하냐고 물었다. 

아마 수업에서 필요로 하는 책을 사면 된다고 일러두고 나는 전화를 마쳤다. 

최근에 그의 이름이 왜 생각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학교에 와서 그랬을까. 

심심해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더니 이미 그 대학을 졸업하고, 

최고라고 하는 한 명문대의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졸업까지 해서, 

지금은 로봇을 다루는 한 회사의 연구원으로 되어있었다. 

그는 정말로 고등학교 때 말한 그 길을 계속 걸었고, 

사진 속의 그는 아마 그의 부인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손을 접었다. 

그가 오랜만에 말을 건 나에게 얼마나 행복한지 늘어놓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혹이라도 우리가 흔히 하는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싶다. 

그런 현실의 고민을 첨가하지 않은, 사진 속의 무결하고 행복한 남자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글쎄 고등학생인 과거의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겠지만, 

그런 과거의 나에게 할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어른이 되면 알거라고.

Jul. 2017, E100VS, Tem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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