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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성취감을 찾아서

남의 칭찬을 내맘대로 조절할 수 없다면 셀프 칭찬의 고수가 되자

성취, 성장, 성공, 성적, 성과. 

주체 없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참 차가운 단어들. 


많은 직장인들의 불만은 '일한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것'. 성공적인 연봉 협상도, 승진도, 아니면 상사의 '잘했다'라는 멘트도 참 뜸하다. 야근밥을 먹어가며 소처럼 일한 성취감을 어디서 찾아얄지 불분명한 탓.


몇일 전,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회사가 원하는 전문성이란 무어냐는 매우 진지했던 질문에 그는 '회사가 시키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손! 하면 손을 주는 사람. 굴러! 하면 구르는 사람. 그럼 나는 영업을 시킬수도, 상품기획을 시킬수도, 공장에 갈 수도, 물류센터에서 손!을 건네고 있을 수도 있겠군, 하고 생각했다. 


나는 마케터다. 속한 분야에서 유능한 마케터가 되기 위해 이 회사에 들어왔고, 내년, 내후년엔 한단계 진화된 마케터가 될 것이다. 내가 속한 브랜드의 영역에서 최고의 입지를 만들어 낼 것이고, 매출과 브랜드력 신장에 힘이 되도록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여기저기 시키던 일만 하다가 '000은 회사가 시키는 일을 잘 해내던 사람'으로 내 근 2년의 커리어 노트를 채우기에는 원하던 성적표가 아니다. 회사가 나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이 회사는 내가 선택했기도 하다.


마케터 | 명사 | 제품을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판매하기 위한 기획 활동, 시장 조사, 상품화 계획, 선전, 판매 촉진 따위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이렇다(는군?). 상품화를 계획하는 사람이자 판매를 촉진하는 사람이자 시장 조사도 하고 (헉헉) 선전 뭐 기타등등 다 하는 사람이란다. 사전적 정의부터 이리 포괄적인 영역에 놓여 있으니, 인하우스의 마케터들은 영업이자 상품기획이자 그 사이 제반업무를 모두 서폿하는 사람이겠다. 마케터의 업무 영역을 명확히 선 그어주지 않는 회사에서 지향하는 전문성을 찾을 수 있는가는(지금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싶지 않다면야) 회사와의 궁합이 잘 맞는지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백만가지 업무가 다 마케팅의 영역이라며 코베어갈수 있다는 사실.


잠깐 딴소리를 했지만 다시 원점으로. 업에서의 '성취'란, 두 가지로 정리된다. (1) 어떤 일을 해서 남에게 인정을 받거나 (2) 어떤 일을 추진하며 일련의 여정과 결과를 통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얻거나. 

음, K-성취란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보통 (1)과 연관되는 상황이 많다.  내 스스로에 만족이 강해도 남이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으면(연봉/승진/칭찬 등등) 만족을 스스로 오롯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보통은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당하기 전에 넥스트 프로젝트로 넘어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힘든 세상에 내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칭찬할 시간 내기도 그렇게 어려운 세상일 수 없다. 


포괄적으로 이해해보자면, 역시다 남의 돈 벌어먹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을 매우 잘 만들어가도 회사는 칭찬할 그 짧은 시간마저 아까워, '더해! 더하라구!'라며 쪽쪽 직원들을 뽑아먹을거다. 만일 시간을 내 인정을 해 둔다 쳐도 그것은 by chance, 아주 우연한 상황이 될 테니 이런 우연성에 나의 감정을 베팅할 필요는 없는 것.

 위에서 내려온 오더에 내가 얻고자 하는 전문적인 커리어 영역을 조금이라도 얹어서, 적당한 열정으로, 그렇게 추진한 일을 진지하게 임하며 얻는 성취로, (만족이란 없겠지만) 적당한 임금을 받으며 단단한 멘탈로 일 하는게 회사겠거니. 하며 내일의 출근을 다짐한다. 




한 후배가 있다. 추진하는 일이 잘 되던 못 되던 자신의 자리에 우두커니 서 제 할 일을 하고, 맞건 아니건 제 고집을 최대한, 열띠게 이야기하는 친구다. 회사의 영감님들이나 웃사람들을 이 친구를 일로 평가하거나,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지난달 술자리에서 어떻게 일을 묵묵히 해 내는지 궁금하다하니 그녀 왈. "우리가 맡은 작은 하나의 일들, 점들에서 뭐 하나 잘 했다고 하겠어요. 그냥 내가 '나새끼 잘했다~' 만족하며 하는거죠(원샷)". 저런 멘탈은 연차를 떠나 짱언니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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