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꾼은 지극히 친절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어떤 똑소리나는 후배가 같이 준비한 프로젝트와 관련해, 영업사원 공유 메신저에 공지할 글을 같이 보완해보자고 한다. 그의 자리로 가 모니터를 보니, 카탈로그에 쓰여진 전문 용어가 가득한 어렵고 화려한 문장들이우리가 재구성한 챕터 순서에 맞춰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아. 야근중이라 좀 빨리 쳐내고 집에 빨리들 떠나자는 분위기였다) 멀찍이 굴러다니는 의자를 골라잡아 후배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회사에서 나는 날서고 무뚝뚝한 글을 쓰는 사람이다. 8년간 프레스 자료를 작성해온 쪼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형용사가 많거나 에둘러 본질로 향하거나, 본질이 없지만 본질이 있는척(외압으로 인한 어쩔수 없이 작성한 자료들)을 해야 하는 글을 질색한다. 그런 자료를 읽는 독자들은 그 글을 읽고 났을 때, '뭔지 윤곽은 알겠는데 그래서 정확히는 뭐가 좋다고 얘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수 있다. 작성자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글은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보고 자료는 보고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글은 읽는 자에게 잘 이해가 되야, 자료는 소비하는 자가 방향성을 명확하게 파악하는게 그 핵심이다. 후배와 함께 앉아 워싱을 시작했다. 자, 이게 올라가는 데는 고객도 윗사람들도 보지 않는 영업직 그들만의 채널. 그리고 읽는 사람들은 매장을 찾아온 고객들에게 설명할 때 이 내용을 영업화법으로 말 맛 살려 잘 써 먹어야 하는 직원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바로 활용하고 싶게 '말함직한' 단어와 문장들로 수정하는 게 필요하겠지? 그렇게 업로드를 눌렀다. 오늘 오전, 어느 지역의 영업 채팅방에서 연락이 왔다. '이거 봤는데, 이 부분 매력적이라 더 알고싶어요! 더 알려주세요!'
어떤 책을 읽다보면, 각주 300만개로 본문보다 각주 영역이 넓은 경우가 있다. 본문에서 풀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어려운 말들을 페이지의 하단에 아주 긴 호흡으로 설명해내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문단 처리나 단어 굵게 효과, 줄바꿈, 기울임 처리들. 작가와 독자간의 거리가 발생하는 그 시점이다. 모두가 알고있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처럼. (띄어쓰기를 안할지언정 아버지께서방에들어가신다, 혹은 띄어쓰기를 제대로 아버지가v방에v들어가신다 라는 문장이 되었다면?)
작가가 독자에게 더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 에너지의 반정도, 딱 그정도를 독자가 이해하면 성공이라고들 한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란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들어줄 이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친절하게 다가가는가'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종종 '설명하긴 어려운데 대충 이런거..무슨 말인지 이해하죠?'라는 멘트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태도다. 자신이 길을 걸어본 경험을 얘기하며 지도를 그려오라고 하면 산이 바다가 되고 평야는 언덕이 되버리기 십상이다. 같이 걸었던 상대가 느낀 경험을 듣고 그 내용 속 본인이 원하던 무언가를 적어보라 하면 지도의 윤곽은 훨씬 또렷해진다. 기억은 내 것이지만 이야기는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글도, 말도, 보고서도 전부.
오늘 아침, 문득 몇 달을 덮어두었던 철학 책을 열어보았다.
중간부터 읽으려드니 이전의 이야기들이 희미해져 기억이 나질 않아 다시 첫 장을 펼쳤다. 서문이 지나고 첫 번째 챕터가 시작되기 직전, 좌측 빈 페이지의 한 켠엔 이런 문구가 큼직하게 쓰여있었다.
일러두기
본문에서 고딕 서체로 표기된 부분은 지은이의 강조다
어찌 보면 살짝 소심한 '일러두기'를 편집자가 쓴 내용일지, 혹은 작가가 직접 쓴 내용일지 알 수 없다. 바탕체로 되 있는 책 속에 고딕 서체가 있다면 독자들은 '뭔가 중요한가보네?' 하고 알아서 주의깊게 볼테다.
다만, 이 일람은 "네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걸 빼먹지 말고 꼭 이해해줄래"라는 글 속 배려깊은 작은 암호다. 친절한 이야기꾼은 둘러앉은 이들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이 책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