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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인 회사원은 어떤 사람일까?

누가 누굴 체계적이다 덜 체계적이다 평가하겠어요. 내가?

처음 영문 레쥬메를 쓰면서 대부분이 사용하는 'organized'의 의미가 매우 생소했더랬다. 여러번의 검색을 통해 얻어낸 여럿의 백전백승 합격자소서 예시를 봐도 도통 빠지지 않는 단어였다. 사실상 그저 내가 체계적인 인간이다, 머릿속에 무언가를 잘 정돈해두고 필요할때마다 꺼내 쓰는 효율적인 성격으로 사무에 아주 최적화된 인간 양식이다 정도의 톤일테나, 구글링을 해 봐도 한국어의 맛을 구수하게 살린 번역어가 없다. 마치 '저는 전략적인 사람입니다'라는 클리셰처럼 이 단어가 여러번 나오는 이유란 도대체 뭔가.


그렇다면 마치 모든 직무의 필수덕목처럼 느껴지는 의미에 반해, 회사 생활에서 머리속 정리정돈이 쉽지 않는 사람이란 어떤 모양일까 생각해본다. 입사를 위해 몇 단계의 전형을 거쳐 힘들게 문턱을 넘은 이들 중 구조화가 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배운게 도둑질이라 마케팅적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분기를 아우르는 캠페인을 진행할 때 스케쥴링, 채널 트리와 각개의 목적성, 목표와 KPI는 신물이 나도록 생각하게 된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to do list가 정해지고, 이후의 타깃/크리에이티브를 고민할 때 신물나게 생각하는 저것들은 실행의 기준이 된다. 이러한 구조 자체를 highly organized와 well organized 등으로 나눌 수는 있겠다. 캠페인을 운영하는 마케터가 더 잘하고, 더 못하고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일이 몰리면 목적을 잊을 수도 있고 스케쥴을 놓칠 수도 있다. 그것이 less organized인 것은 아닌 셈이다. 성과가 좋다고 high organized도 아니고.(직관과 촉으로 성과를 내는 경우도 파다하다)


그렇다면 이 organized라는 형용사가 과연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가치인가를 떠올려본다. (나 또한 정화수를 떠두고 합격을 기원하던 이직백수시절 highly organized 상습범이었다)

구조적이고 계획적으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만큼 존재하는가(5년 전 당신이 꿈꾸던 미래를 살고 있는가?). 어떤 누군가가 나를 체계적이고 정돈된 사람이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스케쥴이 적은 이들은 덜 구조적인가? 목표가 더 적은 이들은 상대적으로 덜 체계적인가? 방이 엉망이지만 카오스 속 질서를 두고 사는 이들은 organized인가? 사회가 택하고자 하는 인재로서의 속성이 설령 그럴지어도, 나는 다시 레쥬메를 쓰게 된다면 저 단어가 아닌 다른 단어들을 택할 것이다. [나는 전략적입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처럼 냄새 없이 공허한 문장들은 멀리하고 조금 내 냄새가 담긴 단어로 글을 만들고싶다. 




얼마 전 친근하게 지내는 어느 스타트업의 마케터와 식사를 나눴다. 사람을 뽑는 어려움, 타부서와의 어려움, 좋은 콘텐츠를 뽑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피자를 바득바득 씹어냈는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어려움은 쉬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렵다'로 귀결된다. 시스템의 부재나 캐파의 어려움 등 다양한 이슈가 많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 우릴 고민하게 만든 것은 결국 감정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 highly organized도 좋다만,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직장인의 루틴에서 공감 능력과 열린 대화력을 지닌 사람이 더욱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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