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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채식주의자 선언

생명이 위대한것보다는 < 수명 안에서 건강 걱정없이 자유롭게 살고싶어서요

금연하겠다, 금주하겠다, 다이어트하겠다 등등...

무언가를 하겠다고 만천하에 선언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가령 담배로 친다면 간혹 금연중 못참고 못참아 한 대를 필 때 '금연한다며 우우우~'라는 친구들의 핀잔을 듣기 싫어서. 내가 나로 태어나서 못할게 뭐란말인가. 못해도 내 스스로 핀잔을 주는거고, 잘하면 소근대며 내게 잘했다며 칭찬하는거지 뭐.



코로나 시대, 넷플릭스를 탈탈 털어 더이상 볼 프로그램이 없어지자 나는 비로소 다큐 장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밥상에 관심많은 남자친구는 슥 <몸을 죽이는 자본주의 밥상>을 틀었다. 채식을 해서 놀랍도록 건강해진 이들의 사연이 나왔다. 살아가기에, 그리고 몸매를 가꾸기에 꼭 필요하다고 들었던 '단백질'의 역설을 말했다. 건강한 근육몬이 되기 위해 어쩌면 건강은 더 큰 댓가를 치루고 있었던걸까. 게다가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는 암담했다. 몸을 겨우 가눌수 있는 좁은 축사에서 태어난 돼지는 똥과 오물에 뒤덮여 성돈이 되고 고기가 된다. 인간이 지정한 '가축'인 닭과 돼지와 소는 그렇게 고기로 태어나 좋은 고기가 되기 위한 식사를 하며 고기로 죽는다.



요즘 '팔레오 식단'으로 조명받는 수렵채집 고대 조상의 수명을 살펴보면 치안과 감염병 등으로 위협을 받았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유아사망률을 제외한 최빈값 수명은 무려 72세가 나온다고 한다. 의료 발전과 치안 수준이 크게 성장한 지금의 평균연령 83.3세와 단지 10년 내외의 수명이 오른 걸 보면 의문이다. 요즘의 사람들은 영양 결핍보다 영양 과다의 위험이 더 크다고 한 만큼, 지금 우리가 먹고 소비하는 환경이 과연 '건강한 삶'을 위해 좋은 토대가 되는것인가.



거룩하게 모든 생명에 대한 위대함을 말하고픈게 아니다. 동물을 먹을 수 있는 권리는 먹이사슬에서 인간이라는 최고 등급의 개체로 존재하는 바, 내가 사람인만큼 당연한 이치이다. 다만 그 동물이 주는 영양이 '건강을 위해 좋은 영양분인가'라는 의심이다.

우리가 가장 인간답게 건강했다던 머나먼 수렵채집 시절엔 최소 동물로 태어나 제 터전을 뛰어다니다 사냥으로 죽어버린 짐승을 잡아먹었지, 고기로 태어나 시체로 소비될 운명의 고기를 소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맑고 건강하게 살아다가 죽은 동물의 시체와 무념무상으로 죽을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동물의 시체는 어떻게 다를까. 단순한 물도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의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진다는데 더 높은 개체인 동물의 살과 뼈와 피, 그리고 영양은 어떻게 달라질것인가.



인터내셔널 스탠다드로도 30을 쑥 넘어버린 나이가 되자 조금씩 몸의 모양과 컨디션이 달라진다. 야근과 스트레스를 잘 견뎌내던 몸은 점점 외부 환경에 취약하게 변하고, 육식주의 식단에 술 & 담배 & 커피 & 군것질로도 강건했던 몸의 구석구석에 염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수만가지 내 정신이 즐겨대는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잘 견뎌내던 내 몸은 노화와 운동부족으로 무너지는중임을 실감한다. 모래성 게임처럼 한번 한번 쓸어담는 모래정도로 깃발은 쓰러지지 않는다. 서서히 약해지던 모래성은 별 것 아닌 일격으로 함락되고 마는것이다. 30대에 들어서는 건강을 잘 관리하라던 선배들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건강으로 인해 할 수 없는것들이 늘어나게 되는 나이인 것. 불쑥 찾아온 바이러스 상황에 우리가 늘상 즐기던 mask-free 일상이 모두 마비된것처럼 우리의 일상 또한 다르지 않음을.



나의 신념은 지금부터 완전 채식을 하겠다!가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비롯된 공장식 축산업을 신뢰하지 않겠다는 방향이 맞다. 고기로 소비될 운명임에도 너른 초원에서 맘껏 뛰놀고 풀도 먹었던 그런 소나 돼지를 믿고 싶지만, 호주건 미국이건 기업식 축산의 '비즈니스'를 믿을 수 없기에 채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모든 식단을 컨트롤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제 남자친구와 한 지인과의 식사에서도 비빔냉면 안에 든 소고기 조각을 개념없이 입 안으로 슥 밀어넣었고, 시킨 모듬전 안에 탐스러운 육전 앞에서도 침을 흘려대며 겨우 젓가락을 막아냈으니. 직장생활 점심시간에도, 회식 자리에서도 나의 신념이 풍요로운 고기 냄새와 감미로운 맛을 걸러내는 강인함이 있을까. 다만 설령 고기 냄새에 함락될지언정 최소 '이것은 나에게도 고기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부는 중요한 일일테다.



개념의 하나를 열어보면 그 다음이 보인다. 베지테리언 진입 1단계로 가금류 제외 붉은 육고기를 배제하는 '폴로 베지'를 표방한 내게 <닭은 괜찮은가>란 질문이 자연스럽게 열려온다. 다른 컨디션도 있지만 1제곱미터당 9마리 이하의 사육환경이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사육 환경에서 나아가, 좁지만 '닭장'없이 여기저기를 누비며 살 수 있는 케이지 프리 사육 방식 등 더 나은 환경은 점점 나타나고 있다. (물론, 그런 치킨이나 달걀 가격은 정말 비싸다!) 폴로 채식 식단을 준비하며 의외로 단가가 올라가는 밥상물가에 마음은 좀 쓰리지만 쏠쏠하게 올라가는 연봉의 의미는 책임만큼 건강하게 지내라는 뜻 아니겠냐며 위로해본다.


소극적 채식주의자 파티원 구합니다...전 폴로 베지테리언(부터 도전하고있는) 사람입니다.


* 닭이 닭답게, 돼지가 돼지답게, 소도 소답게 행복하게 살다 감사하게 밥상으로 오는 식생활이 가능한 그날까지(조금 연하지 않아도, 부드럽거나 육즙이 풍성하지 않아도 좋다!) 건강제일주의 폴로-채식주의자 밥상을 종종 올려볼께요. 고기만큼 맛있는 식단 말고, 그 자체로 맛있는 채식주의밥상을 찾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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