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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리시냐고 물으신다면

육아는 체력전이라고 그랬다

by 짱고아빠

사실 시작은 인스타에서 본 유아차 달리기였다.

아빠는 마라톤을 하고 아이는 아빠가 만들어주는 바람을 즐긴다.

아이는 크루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바깥 구경도 하고, 간식도 먹고 이따금씩 '아빠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한다.

그게 뭐라고 이상하게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이 유아차 달리기가 나의 버킷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를 태우고 천천히 거리를 달려보았다.

유아차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아이는 달리기를 영상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저 빨리 이 유아차에서 내려 달라고 난리였다. 쩝.


내가 마라톤을 시작한 건 나이키 앱의 기록으로는 2018년부터다.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그때는 지금처럼 러닝붐이 없었다) 갑자기 마라톤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이냐면 그건 아니다.

나는 어릴 적 늘 100m 달리기 꼴찌를 도맡아 하던 아이였고 체육시간을 좋아하지 썩 않는 아이였다. 어느 체육시간에 단체 기합으로 운동장 10바퀴를 돌았는데 우리 반에서 그 10바퀴를 완주한 게 육상부와 나 단 둘이었다. 물론 그 친구와 한두 바퀴 차이가 났던 것 같고 나 혼자 텅 빈 운동장을 뛰던 그 모습은 지금도 꽤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알게 되었다. 내가 빨리는 못 뀌어도 오래는 뛸 수 있다는 걸.

업무 스트레스로 죽어버릴 것만 같던 날 갑자기 난 이날의 기억을 떠올렸고 그렇게 처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km를 못 달리던 내가, 2km, 5km를 쉬지 않고 달리게 되고 처음으로 10km 마라톤 완주도 해냈다.

그렇게 나는 러너가 되었다.


이후로도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하루가 어수선할 때, 아무 말도 하기 싫은 저녁이면 러닝화를 신고 나섰다.

적어도 코로나로 모두가 집에 갇히기 전까지는 깨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25년.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집에 와서 눕는 것보다 헬스장이던 독서실이던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은 잘 보내고 싶어서 뭐라도 하자고 시작한 게 달리기였다.


1km, 2km, 5km. 몸은 정말 정직하게도 몇 년 전 나의 루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고,

시간들은 그렇게 조금씩 쌓여갔다.


오늘은 6km, 다음 날은 10km, 또 언젠가는 4km(아마 비 오던 날인 것 같다).

다 다르지만 앱에 기록된 달린 날의 기록이다.

그날의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숫자는 그 하루를 분명히 살아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아이의 몸무게만큼의 감량을 했고 다시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운동화를 신기까지의 과정은 죽을 것처럼 귀찮고 싫다.

왠지 오늘은 쉬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다리가 괜히 쑤셔오기도 하며 매일 뛰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유튜브의 러닝코치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 오만가지의 이유를 꾹꾹 눌러 삼키며 러닝화를 신는다.

왜 이렇게 뛰는 걸까? 뛰면서 물었다.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육아는 체력이라고 한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고, 빨라지고, 사고를 친다.

조금 늦게 아빠가 되어버린 나는 이런 아이를 케어할 체력이 모자라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뛰는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괜찮은 아빠가 되고 싶기도 하다.

허세로 가득한 아빠가 아니라 삶의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한없이 진지한 어른으로 보이고 싶다.

실패가 부끄러워 감추지 않고, 넘어진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메는 걸 보여주는 어른이고 싶다.

아빠 이거 잘 못했는데 이렇게 열심히 해서 이제는 잘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아빠이고 싶다.


문득 뛰다가 '나 왜 달리고 있지?'에 대한 생각이 길어졌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내일도 난 뛰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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