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드 Nov 01. 2021

■ 진보의 가치

: 조국 수사와 그들만의 정의.


허구헌날 '윤비어천가'를 부르짖던 검찰과 국민의 힘 나팔수인 족벌 언론사들은 결국, 연이은 황당한 발언과 몰상식한 행동으로 윤석렬의 지지율이 추락하자, 이젠 급기야 과거 '아방궁' 발언과 '돼지발정제' 등으로 유명한 인싸이자 진주 의료원 폐쇄로 지역 공공의료를 손수 무너뜨린, 동류(同類)ㆍ동향(同向)ㆍ동색(同色)의 대체재인 홍준표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럼 그 치들은 자신들 기득권 유지와 재집권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고 쳐도, 그에 덩달아 조국(曹國)과 정부를 비난하는 가난한 궁민(窮民)들은 뭔가?

정경심 교수의 컴퓨터 하드에 검찰이 개입한 명백한 정황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유죄를 선고한 판사는 또 뭔가? 그것도 중범죄도 아닌 일개 사문서 위조에 4년이란 무거운 형량을,


입학 사정 평가 항목에 들어가지도 않은 관행적 스펙에 불과한 일개 표창장엔 분노하면서, 성신여대 성적 조작 의혹을 비롯해 당락을 좌우하는 특혜적 입학 비리 의혹인 서울대 연구소 논문, 홍익대 입시 비리 등에는 침묵하는 선택적 분노와 차별적 정의는 또 무엇인가?

아파트 값 올랐다고 좋아하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세금 더 낸다고 화내는 거나, 재산과 소득 늘어났다고 자랑하면서 양도세와 상속세 많다고 정부를 욕하는 부자들은 또 뭔가?

이런 것만 봐도 이 같은 내로남불식 주장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이런 선택적 분노와 정의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만연한지 알 수 있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기득권이거나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척점에 서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책임 수장이었던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다주택 임대사업자 양성 정책과 그 일련의 부동산 과세 정책 등은 분명한 실정(失政)이다. 그 취지야 어떻든 간에 그건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정은 실험 대상이 될 수 없으니까,

과거 정부에서 대출 규제를 풀어 집값을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는 하나 현 정권이 집권한 지 5년 차인 지금은 그런 변명은 통할 수 없다. 비록 코로나로 시중에 많은 돈이 풀여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헤지(hedge) 등으로 인한 주식, 동산과 토지와 현물 등의 시장 가격이 급등한 것을 감안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그걸 빌미로 모든 걸 정부의 무능과 부패로 모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고 마타도어다. 이 정부 들어 전 세계적인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군사ㆍ경제 분야에서 세계 7위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건 분명한 펙트니까,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대다수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더불어 언론자유지수도 이 정부 들어 기록적인 좌표를 찍었다. 그건, 조중동과 그 아류 기사들이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의 뉴스 메인을 대부분 장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을 미워하는 이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이런 언론에 당연히 길들여지게 되면서 모든 걸 정부 탓으로 돌린다. 정부나 대통령을 편드는 이들을 '문빠''달창'이니 하며 비아냥 거리면서,


유튜브의 알고리즘(Algorithm)과 같이 자신이 보고 싶고 좋아하는 기사만 들여다보게 되니 시야가 좁아지고 애당초 옳고 그름과 잘하고 못한 걸 가릴 생각도 이유도 없다. 그들에게는 자신들 마음의 향수와 지지를 감옥에 보낸 현 정권과 진보는 악이고,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 다른 에게 분산하고 그 혜택을 나누어 주려는 개혁은 분명 적이니까,

검찰 개혁이니 복지국가니 하는 것은 모두 진보의 감언이설이고 사탕발림이며, 과거 운동권의 좌파 놀음이자 포퓰리즘일 뿐인 것이다.


그도 아니면 이놈도 맘에 안 들고 저 놈도 맘에 안 든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도인 척 행세한다. 3 지대론이니 뭐니 하며 틈새를 노린다. 사실 이게 더 나쁘다. 기회주의자의 표본에 불과하다. 이미 그 선례도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또 어김없이 이번 대선판에도 중도를 표방하며 판에 끼어드는 인물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마구리 같은 인사가 날뛰는 놀음판과 참 비슷한 것 같다. 그것도 광기로 물든,


그러면 진보라고 다 바른 길이고 보수나 중도라고 다 어긋난 잘못된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진보의 것도 보수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진보의 가치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서 독재에 저항해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내리기 위해 앞서간 이들의 희생이 너무 덧없어지니까,

그럼 합리적 이성과 진보적 가치가 항상 옳은 걸까? 그것도 아니다. 우린 진보를 내세우는 자들의 부도덕성과 이중성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보수는 그들을 위선자라 비난하고 성토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윤미향 사건과 조국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것이 얼마나 조작되고 날조되어서 세상에 기사화되고 있는지 말이다. 그건 언론에 노출된 당해 사건의 많은 의혹들이 실제 기소 조차 되지 않거나 기소된 많은 병합 사건이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되는 사유만 봐도 알 수 있다.


윤미향 사건으로 언론에서 제기한 수많은 의혹 중 공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거나 쉼터 관리인으로 부친을 특혜 고용하였다거나 또, 딸 유학 자금으로 기부금 유용, 남편 회사로 일감 몰아주기, 안성 쉼터 헐값 매각 등은 범죄 혐의 입증이 안돼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망신주기와 도덕적으로  파렴치한으로 만들기 위한 의혹 제기였고 아니면 그만이란 무책임한 마녀 사냥이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었다.


조국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조국 펀드'니 뭐니 하며 언론과 검찰이 내세우던 사모 펀드는 사법부에서 정경심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경심이 사모 펀드의 실질적인 운영자라는 검찰의 논리는 무너졌다. 처음부터 검찰개혁을 설계한 조국을 털어 도덕적으로 흠집을 내기 위한, 헌정 사상 단일 사건으론 최대 규모라는 100여 차례의 압수 수색은 '먼지 털이식 과잉 표적 수사'였다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온 가족과 일가친척은 물론 죽은 부친까지 부관참시하는 것도 모자라 아들의 미국 대학 온라인 시험을 도운 것을 대학은 문제를 삼지도 않는데 이를 해당 대학의 업무방해죄로 엮은 것은 코미디나 다름없었다.

이 외에도 자잘한 몇 가지가 더 있지만 결국 건진 건 표창장이 유일했고, 그것조차 이중 기소 논란으로 검찰조차 사문서 위조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었다. 그마저도 검찰이 증거에 개입한 정황이 나중에 밝혀졌었다. 물론 법원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이를 무시하고 선고를 했지만,


결국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도 권력형 비리가 나오지 않자 도덕적으로 흠을 잡기 위해 관행적ㆍ음성적인 입시 자료에만 그것도 특정인에게만 가혹한 사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항간에 정경심이 유죄면 지금 한국에서 유명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전부 수능을 다시 봐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그런 관행이 옳은 거라는 건 절대 아니다. 일부 특권층 부모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이런 제도적 빈틈을 이용해 자녀의 대학 입학을 위해 학연ㆍ지연을 동원해 스펙을 키우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분명 불공정하고 잘못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선 조국도 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


하지만 조중동 TV와 신문만 하루 종일 는 이들에게 이런 해석과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태극기와 성조기만 흔드는 이에게 사법 개혁의 깃발을 들려주는 격이다. 현실이 이러니 박정희와 전두환을 옹호하는 이들은 그 물질적 성과에만 집착하고 그 이면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이들과 그들의 부정 축재엔 무관심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태도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했던 이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드러난 퇴직금 50억과 그 클럽에 연루된 야당과 보수 인사들엔 관대하고 드러나지 않은 대장동의 몸통 의혹엔 흥분하고 집착하는 것도 이 같은 내로남불 심리로 볼 수 있다. 윤석렬도 국감에서 가족은 독립 경제라는 황당한 주장으로 김건희의 의혹을 방어했지만 조국에 대해선 부부공동체라는 이중 잣대를 들이 되었듯이, 언론 또한 '조로남불'만 대서특필했지  같은 '윤로남불'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굳게 닫았다.

그들에게 분노와 정의의 대상은 늘 그렇듯 선택적 사항이니까,


그럼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건 조금의 이성과 상식만 있으면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그 모든 걸 뒤섞고 이런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게 수많은 정보들이 언론이라는 이름을 빙자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하물며 검증되지도 않은 많은 가짜 뉴스가 TV와 유튜브 등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난무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부디 합리적 이성으로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바랄 뿐이다.


분명한 건, 지금도 우리는 때론 갈지자로 비틀거리기도 하고 조금씩 엇나가기도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와 흔들림 속에서도 세상은 계속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