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알고 있니? 어제 오늘 나를 스쳐간 것들에 대해. 크게 관심 없겠지만 한번 들어봐. 어쩌면 언젠가는 우릴 스쳐 갈지도 모를 일이니까. 난 방금 멋지게 생긴 나무 의자의 한쪽 면에서 찍힘을 발견했어. 누군가 스쳐 지나며 만든 그 찍힘이 의자에겐 상처일 테고, 그 사람에겐 그 따위쯤 될지도 몰라. 근데 그걸 보는 난 슬퍼서 그래. 그러니 그냥 말할게.
어제 아침엔 한 여자 아이가 나를 스쳐 지나갔어. 아침부터 눈시울이 붉었던 그 아이는 엄마한테 혼이 났나 봐. 뭘 좀 말하려다가 갑자기 울어. 눈물 흘리면서 말해. 마음이 아프다고. 머리도 아프고. 다 아프고 힘들대. 뭐라 해 줄 말이... 없어. 그냥 손이나 좀 잡아줬어. 그래도 아프고 힘든 걸 알고 있으니 다행이야. 뭔지도 모르고 품고 사는 애들도 많으니까. 스치는 그 감정. 무슨 일인지 몰라도 마음 한 구석이 쑤셔. 자세히 묻는 것도 겁나서 못 물어봤어. 그냥 어른이니까 어른인 척, 괜찮은 척 해줬어. 괜찮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날 오후 난 인사동 어딘가에 앉아서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어. 주말이라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아이들이 많이 보여. 맛있는 걸 파는 노점상 앞에 줄 선 남자아이는 해맑게 웃어. 한 손에 풍선을 들고 다른 손에 엄마 손 잡고. 환하게 빛나는 그 웃음이 손짓해. 어디서 예쁘게 웃는 법 배워 왔나 봐. 세상 걱정 없는 웃음이야. 근데 난 따라 웃다가 갑자기 속이 냉해졌어. 아침에 스친 그 여자 아이 손이 생각나서. 아이들은 어디선가 울고, 또 어디선가 웃고 있어. 난 눈물과 웃음의 경계에 서서 묘한 슬픔을 느꼈어. 아침에 만난 그 아이와 손잡고 저 맛있는 줄에 서서 풍선처럼 웃을 순 없을까? 그러면서도 밤에 잠은 잘 자는 나 자신이 새벽부터 밉지만 스쳐 지난 걸 어떡해. 지나가면 다 지나가는 걸.
오늘 아침엔 싸우는 소릴 들었어. 집에 누워 있는데 옆집이 소란스러워.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그 아기의 엄마는 집을 뛰쳐나간 것 같아. 듣고 싶어 들은 것도 아닌데 들려오는 그 소리가 마음에 와 박혀. 어릴 적 태풍 같았던 우리 부모님의 싸움과 그 소리가 겹쳐지고 아이 울음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 이번에도 괜찮지 않아. 뛰쳐나간 그 엄마의 목소리는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해. 바로 옆에 살아도 어쩔 수 없는 생활의 풍경이 서글퍼.
오늘 오후 난 카페에 들렸어. 아내를 기다리려고 들린 카페에 사람이 많아.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는데 곧바로 내 자리 근처에 한 무리의 여자들이 모여 앉았어. 유쾌한 그녀들은 재밌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어. 한 번씩 터져 나오는 그 웃음소리에서 에너지가 느껴져. 아주 친한 친구들 인가 봐. 온갖 이야기를 다 하는데 주변 상관하지 않는 그 자유분방함이 부러워. 난 저절로 운명처럼 그 이야기들을 엿듣게 됐어. 그녀들이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내 옆 자리에 앉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가끔 그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는데 그런 내가 멋쩍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어. 구석진 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잠시 앉아 있으니 마음속에 뭔가 올라와. 아침에 들었던 싸움 소리와 좀 전에 들었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펑 터질 것 같은 그 모순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여기 남겨졌어.
나를 스쳐간 것들, 그 버릇없는 온도차. 결로가 만든 물방울이 마음속 벽을 타고 내려간다.
바람이 분다. 행복과 불행의 바람. 그 바람에 흔들리는 우리.
그 풍경을 위로한다. 조금 따뜻해지길 소원한다.
삶은 분명하지만, 영원하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