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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웍스 (2)

by 서효봉

역시 대기업은 달랐어요. 거대한 공장들이 마을처럼 모여 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자기 갈 곳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K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의 이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어요. 돌아갈 곳이 공장밖에 없다면, 대기업 공장에서 일해보려고요. 그는 친척 가운데 유일하게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외삼촌을 만나 매달렸어요. 조카인 K를 평소 각별하게 여겼던 외삼촌이 말했어요.

“그럼, 일단 협력업체부터 시작해 봐라. 내가 말해놓을게. 거기서 너만 잘하면 뭐 또 기회가 있을지 누가 아니?”

K가 다니기 시작한 협력업체는 대기업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였어요. 예전에 다니던 공장보다 월급이 두 배쯤 많았죠.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까지 손들고 나서서 맡았죠. 공장장은 그를 ‘멀티플레이어’라 불렀어요. 기분 좋은 칭찬을 앞세워 온갖 일을 다 시켰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월급날만 되면 예전과는 다른 속도로 통장 잔고가 불어났거든요. 돈 쓸 시간도 없어서 2년 만에 꽤 많은 돈이 모였죠. 그는 꿈이 있었어요. 대기업 공장의 정직원이 되는 것 그리고 다음 단계도 이미 머릿속에 그려놓았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던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어요. 외삼촌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어요. 외숙모의 전화를 받고 대학병원을 찾아간 그는 대기업이고 뭐고 다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외사촌들은 산재 처리를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며, 왜 하필 뇌경색이냐며 투덜대네요. 자기 부모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외사촌들이 한심했지만, 대기업 날아갔다며 낙담한 자기 자신도 별다를 게 없었어요.

그날 저녁, K는 외숙모와 외사촌들이 잠시 집에 간 사이 외삼촌 병실을 홀로 지키게 됐어요. 병실 문이 열리고 아저씨들 세 명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죠. 외삼촌과 같이 일하던 직장 친구분들이라 했어요. 그는 그때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음을 느꼈죠. 외숙모와 외사촌들이 돌아왔어요. K는 외삼촌 친구분들을 모시고 술집으로 향했어요. 전에 없이 밝은 표정과 능글맞은 웃음으로 형님, 형님을 외치며 노래방까지 쭉 이어서 대접했답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외삼촌 친구들과 낚시, 등산, 캠핑을 함께하며 친분을 쌓아나갔어요. 휴일근무수당은 포기해야 했지만, 날마다 공장에 박혀 있는 것보단 좋았죠.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며 3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협력업체에서 일한 지 5년째가 되었을 때 드디어 정직원으로 전환될 수 있었어요. 표면적으로는 그동안 별다른 사고 없이 성실하게 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외삼촌 친구분들의 입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대기업 정직원이 되면서 근무지도 달라졌어요. 여러 가지 복지 혜택도 누리게 됐죠. 부모님들도 좋아하셨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어요. 남들처럼 차도 굴릴 수 있게 됐어요. 여유가 생겼죠. 그는 예전에 일했던 대구의 공장이 생각났어요. 쉬는 날 차를 타고 그 공장이 있던 자리에 가보았죠.

폐허. 5년 전에 있었던 화재로 공장 전체가 불탄 후 그 주변은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동네가 되어버렸어요. 많던 식당도 다 사라졌어요. 겨우 하나 남은 집이 돼지불백집이네요. 이 집은 어떻게 아직도 남아 있을까요? K는 혹시 주인도 그대로인가 싶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 봤어요.

“어서 오세요. 어?”

“어? 형?”

놀랍게도 김형이 돼지불백집 주인이었어요.

“형, 식당 시작했어?”

“그래, 어쩌다 보니. 이게 얼마 만이냐? 한 5년 됐나?”

“어, 5년쯤 됐을걸? 근데 왜 이 집을….”

“야, 말도 마라. 완전 사기당했지, 뭐냐.”

“사기?”

“너, 공장에 불난 건 알지? 어떤 미친놈이 불 싸질러 가지고.”

“어, 안 그래도 뉴스에서 보고 놀랐어.”

“공장 망하고 부동산 업자들이 여기 아파트 들어선다고 난리였어.”

“아파트?”

“그래, 권리금까지 주고 이 식당 인수했더니, 젠장. 아파트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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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지구별 여행을 했어요. 어느 날, 책을 써서 작가이자 여행교육전문가로 살았어요. 지금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며 글을 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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