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늦잠을 잤다. 원인을 찾자면 바로 어제, 어제가 문제였다. 어제는 이상하게 모든 게 짜증이 났다. 나에게 좋은 의도로 조언해주는 말도 괜한 간섭으로 들렸다. 조언이 아니라 그냥 본인 눈에 거슬리는 일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누구라도 그 정도는 안다. 나를 마음으로 걱정하고, 예뻐하고, 아껴서 하는 다정한 말인지 그게 아닌지 정도는. 누구라도 단숨에 구분할 줄 안다.
그게 뭐였든 어제는 내 인생에서 하루쯤 삭제할 수 있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지워버리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알람을 맞출 새도 없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다음날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화나고, 서럽고, 밉고, 싫고, 세상이 나를 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맴돌 때. 그럴 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시라도 또 이런 순간이 올 수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 미리 해결책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일단 잠을 잔다. 끝도 없이 내리잔다. 그러고 나면 피로가 풀리긴 한다. 약간 괜찮아진다. 그다음은 두 귀에서 이어폰을 꽂고 되도록 빼지 않는다. 빛이라고는 한 톨도 들어오지 않게 해주는 암막 커튼을 귀에 단 것처럼 주변의 소음을 차단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는다. 음악이 마음의 치료제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분명 심심하거나 이동하면서 들을 때는 이런 감정이 아니었는데. 눈이 번뜩일 정도로 실제로 마음이 안정됨을 알아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다. 처음에는 이렇게 열 받을 때 어떻게 나를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그 과정을 쓰는 사이에 어지럽게 늘어놓았던 마음이 차차 정돈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컴퓨터 자판을 하나씩 꾹꾹 누르고 새하얀 화면에 검은색 글씨가 한 자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마다 퍼즐 조각이 한 칸씩 맞춰지듯이 헝클어졌던 감정도 차례차례 줄을 서고 제 자리를 찾는다.
글을 쓰는 건 마음을 그리는 일과 닮아있다. 내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왜 이렇게 됐는지, 어떻게 해야 나아지지 같은 복잡한 내면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일. 눈으로 볼 수 없는 걸 보이게 해 두면 그제야 내 마음이 어떤 빛깔이고 질감인지 확인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만 넘실대던 속마음이 글 한 페이지 적었다고 한 순간에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못나고 까칠한 부분을 다듬기에는 글을 적는 일이 좋은 것 같다. 불행하게도 어제처럼 속상한 날은 살면서 언제라도 반복되겠지. 그런 날에 굴하고 주저앉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하얀 눈밭에 들꽃을 심는 마음으로 꾹꾹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