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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May 13. 2023

투명인간

에너지 낭비의 주범은 자신의 배역에 대한 과몰입이다. 과몰입은 자신의 그릇, 분수, 깜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는 내가 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괴로움을 겪는 이유는 바라고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며, 어떻게 해서든 뜻대로 하려는 그 안간힘은 우리를 평생 애쓰고 노력해야만 하는 자기계발의 개미지옥에 빠지게 한다.

지금 여기 유기체(야생동물)로서의 '나'는 의식주가 해결된 상태이므로 생존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 속한 구성원으로써의 '나'는 가끔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불안하고 두렵고 괴롭다. 남보다 더 좋은 집과 자동차를 소유해야 하고 풍족한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데, 한참 부족한 것 같고 사실 그렇게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속의 '나'가 괴로움의 근간이다. 사회 속의 '나'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는 적은 부를 가졌지만 누구보다는 많이 가졌다. 또한 누구보다는 능력이 부족하지만 누구보다는 출중하다. 이러한 상대성은 아주 자연스러운 연기적 현상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기에 온갖 시비호오의 해석이 붙게 되면서 평생 써도 부족하지 않을 괴로움이 빚어진다.

'나'는 결국 사회 속에서 내가 맡은 배역이다. 주로 아빠, 남편, 자식, 친구, 회사원의 배역을 맡고 있고, 예전에는 백패킹 유튜버 배역을 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만둔 상태다. 이러한 배역 앞에 '좋은, 멋진, 완벽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순간 과몰입의 메소드 연기*에 돌입하게 된다. 배역은 다양하지만 시나리오의 공통점은 슈퍼 히어로가 되어 천년만년 남보다 잘 사는 것이다.  

* 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

이러한 과몰입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시도하고자 하는 방법은 '투명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듯 살아보는 것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최고의 자기계발은 계발할 자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야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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