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 참전용사

학군지 학원가 입성기

by Anna Jang

그 여름방학은 불구덩이 같은 사교육의 세계로, 많은 학부모들이 열망하는 학군지의 세계로 첫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마지막 타이밍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J가 초등학교 6학년, 내년에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한 학기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1년 전인 5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된 그 불씨를 1년 동안 키우지도 죽이지도 못한 것은 H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J보다 두 살 위로 이미 중학교 2학년 생인 H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학교 앞 작은 수학 보습학원을 아직 떠나지 못한 채였는데, 그때까지도 학원 가는 길은 늘 J를 앞세워 같이 가느니 마느니, J는 안 가는데 나는 왜 가는 것이며, J는 보충도 없는데 나는 또 왜 보충을 하는 것인지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한 번이라도 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혈안이 되기 십상이었다. 반면에 J는 손 갈 것 없이 등, 하원에 잡음이 일절 없었고 학교 단원평가, 수행평가 공지가 있어도 내가 일부러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 우리의 가정 형편을 대강 알고 더는 궁금해하는 일 없이 내 염려를 잠재워 준 수학학원 선생님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자였는데, 불필요한 소통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J와 H가 형제임에도 판이하게 다른 성취를 보이는 것에도 수더분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눈치여서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 적당함에 좀 더 기거하고자 차일피일 미뤄오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H는 그 작은 학원에서도 취해야 할 것이 아직 너무 많았고, J는 그곳에 그대로 두기 아까운 아이였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H가 J를 의지해서라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힌다면, 아쉬울 것도 아까울 것도 하나 없겠다 싶었다. 그래봤자 J는 아직 초등학생 아닌가. 아직은 좀 더 미뤄도 괜찮고 그 참에 H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준다면 결국에는 J에게도 좋은 영향이 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J가 5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도 정말 깊은 고민 끝에 한 학기만 더 버티기로 마음을 먹은 뒤로 J의 6학년 여름방학이 된 것이다. 다음 학기만 지나면 J는 중학생이 된다. 싹이 좋은 아이이니 좋은 길을 터주기 위해서는 진짜 움직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해치우기 위해 여름방학 1개월은 너무 짧았다. 애초에 광장동 학원가를 타깃으로 삼아 리스트업을 시작했다. 광장동은 양진초, 광남초 – 양진중, 광남중 - 광남고로 이어지는, 강북에서는 드물면서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군지로 꼽혔다. 구 내에서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자양동 일대와 비교해서도 광장동이 월등히 앞서는 것은 학군 영향이 컸고, 아파트 부동산 시세도 큰 폭으로 차이가 났다. 강북강변으로 인접한 올림픽대교 북단과 천호대교 북단까지,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늘어서있는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 1:1 개인 지도부터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까지 일일이 알아보는 것도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일이었다. 상담 신청 후에 전화 연결이 되면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물어보는 것이 아이의 학교와 선행 학습 진도였다. 학교는 학군지의 아이냐, 아니냐를 파악하는 정보인 듯했고 선행 학습 진도 역시 그 학원에 입반 가능한 아이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로 평가하는 듯했다. J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지역 내에서는 규모도 크고 유서 깊은 학교였으나 학군지 초등학교와 비교해서는 부끄럽게 여겨지는 분위기였고, 다세대가구와 구옥, 빌라촌으로 얽힌 주변 동네 분위기가 연상되어 학교를 밝히면서도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선행학습 진도는 더 가관이다.


저희 아이는 현행학습 중심으로 공부했어요.
6학년 2학기 3단원 정도 나가고 있습니다.


최대한 자존심을 지키면서 감정을 절제해 이렇게 말한 뒤에, 일부러 약간의 선망을 넣어 그들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이렇게 덧붙여 물었다.

“그 학원에서 가장 상위권 아이들은 어느 과정을 하고 있나요?”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극심화반은~
“영재반은~
“SKY반은~

으로 시작해서

~ 공통수학 한 바퀴 다 돌고 두 번째 들어갔네요.”
~ 고2 과정 들어간 반이 가장 빨라요.”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고등학교 수학을 풀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전화를 끊기 전까지는 여유를 잃을 수가 없어 애써 침착하게 레벨 테스트 일정을 받아내는 것으로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위했다. 이 학원가에서는 일정 점수 이하의 학생은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열흘 간의 조사와 전화 상담을 마치고 다시 3~4일 간격으로 4군데 수학학원의 테스트 일정을 잡았다. J의 관심과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J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 얻은 정보들로 스스로 어디에 터를 잡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주어서 나까지 한층 힘이 났다. 아이를 만나기도 전에 서열과 계급이 이미 정해져 버린 듯한 상황을 J와 적나라하게 공유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선행을 그렇게까지 해야 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라며 당차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J가 되려 믿음직해서 학군지 아이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돌올하게 빛나는 J가 상상되어서 주책없이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했듯 비학군지 학생이 학군지 학원가로 입성하는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꽃길일리는 없다. 8월의 땡볕 아래 자전거를 타고 처음 가본 건물, 처음 들어가 보는 학원에서 모르는 선생님의 차가운 안내를 받고 레벨테스트 비용을 결제한 후에 혼자서 시험을 보는 일은, 아무리 씩씩한 J라고 해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 발이 묶인 내가 J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위치 추적으로 J의 현재 위치를 좇거나 정확한 학원 위치 정보를 로드뷰 캡처에 메모해서 메시지로 보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근처 어디에 편의점이 있으니 땀을 식히고 음료수 한 병 사서 마신 뒤에 올라가라고 말해주면서도 벌겋게 달궈져 있을 J를 떠올리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당장이라도 약속을 취소하고 싶어 지는 것을 억눌러야만 했다. 레벨테스트 비용이 결제되면 아이가 잘 도착했구나 안도했고, 결제한 뒤 한 시간 남짓 동안은 절로 한숨이 마른 입술을 스치듯 새어 나왔다. 첫 번째 레벨테스트는 가장 규모가 작은 초등전문 수학학원으로 잡아 학군지 레벨테스트를 대비하기 위한 워밍업으로 삼았다. 나로서는 부드러운 입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한 선택이었는데 J의 반응을 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던 듯했다. 평가 후 상담에서도 등록을 권유받았다. 두 번째 레벨테스트는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으로 학원가가 있는 서울 시내 어디든 간판을 달고 있는 곳이었는데, 테스트가 끝날 시간이 되기도 전에 J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연결이 된 뒤에 벼락처럼 쏟아지던 J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있어나 사무실을 뛰어나온 나도 순식간에 눈물이 쏟아졌다. 서러운 울음이 쩌렁쩌렁 울리는 와중에 하는 말이

“나 안 할래.”

“어 그래 하지 말자. 괜찮아.”

“선행 안 했다고 했는데 6학년 2학기 다 나왔어.”

“어머나 그랬구나. 알았어 J. 괜찮아. 잘했어.”

“나 안 할 거야. 앞으로 하라고 하지 마.”

“응 알았어. 안 할게.”

그런 뒤에도 J의 울음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학원이 층층이 밀집한 건물이라 오가는 또래 아이들이 몹시 많았을 텐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토록 시원하게 울어 젖힌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주변을 의식해 터지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J의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뀐 후에 J와 그 건물 앞을 지나면서 사탕을 꺼내 먹듯 해준 얘기가 있었다.

“나 그때 OO이 만났다.”

“OO이 그 학원 다녀?”

“아니. OO이도 그날 테스트 보러 왔었대.”

“그랬구나. 울다가 아는 애 만나서 창피하지 않았어?”

“아니. 괜찮았어. OO이도 망했대. 그래서 OO이 엄마가 나 그때 먹을 것도 주시고 음료수도 마시고 진정하라고 위로해 주셨어.”

비밀리에 지나간 줄 알았던 통곡의 순간을 함께했던 인물들이 있었다니. 다행이었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OO 이는 테스트 보러 엄마랑 같이 갔었구나, 다시 한번 가슴이 찌르르르 흘러내린다.

J가 그토록 충격적으로 목도한 냉엄한 사교육 시스템은 내게도 적지 않은 자괴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여파는 아직도 가시지 않고 시시때때로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의 그런 마음을 J에게 들킬 위기가 꽤 자주 찾아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교육열 넘치는 단호하고 악랄한 엄마 역할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사이에서 느껴야 하는 고통은 뙤약볕 아래에 선 J의 통곡만큼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내게도 누군가가 “그래하지 말자” 해준다면 나는 아마도 그 말을 핑계 삼아 스스로 세운 성벽을 간단하게 허물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뚫어도 뚫릴 것 같지 않고, 기어오른대도 크게 나아질 것 없는 비정한 서열의 그늘 속으로 우리를 내몬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KakaoTalk_20260412_214518658.png 회사에 있던 나 역시 뙤약볕 아래에서 달린 J처럼 뜨거웠다. 이렇게만 보내줘도 기막히게 찾아 테스트까지 마치고 왔던 J.


세 번째 레벨테스트는 퇴근 이후 시간으로 바꿔서 J와 함께 갔다. 그나마도 아이를 픽업할 수 있는 여유는 되지 않아 학원 건물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J와 만나서 올라가는 것으로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J는 시간을 남겨두고 테스트를 마쳤다. 시험지를 들고 나온 J는 약간 멋쩍어하다가 곧 채점된 시험지를 흘끗 보고는 얼굴이 붉어지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설령 백점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선행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반은 소위 가장 레벨이 낮은 반이거나 상급반을 목표로 단기간에 집중학습을 해야 하는 특강반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개강 시기와 진도가 맞지 않아 J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 이틀에 걸친 상담 끝에 얻은 종합적인 입장이었다. 그래 치사하다 퉤 퉤 퉤, J처럼 빛나는 아이를, J처럼 근성 있는 아이를, J처럼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를, 이제 고작 열세살인 아이를 이런 식으로 퇴짜 놓는 세상이라니. 학군지 학원가의 매몰찬 마케팅에 뜻하지 않게 안성맞춤인 제물이 되고 보니 그런 줄을 알면서도 거부당한 불편한 심정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적잖이 실망한 J는 네 번째 레벨테스트는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까지는 닷새 간의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일단 그 선언에 동참하기로 하고 J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테스트에서 결국 최고점을 받은 J는 글썽이며 웃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다행이었던 것은 J가 드디어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상담테이블에 마주 앉은 원장선생님은 J의 시험지 풀이를 보시고 객관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아이가 받아온 최고점의 시험지는 승전보가 아니라, 이제 막 입장을 허락받은 가혹한 전장의 초대장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글썽이며 웃는 아이의 얼굴 위로,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한 '그래하지 말자'라는 진심을 묻어두고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KakaoTalk_20260412_214514541.png 지도 만으로 맘이 놓이지 않을 때는 로드뷰를. 아마도 로드뷰 기능을 가장 쓸모있게 사용했던 여름이 아니었나 싶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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