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싹을 틔워낸다는 것
H와 J가 친가로 거처를 옮긴 후에 엄마는 실직했다. 일평생 일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로 일손을 놓게 되리라고는 엄마 자신도, 나도 생각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엄마가 일하지 않고 일상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이길 바란 나였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배곯아 온 아이들의 입에 밥풀이라도 끓여 넣어 주려면 당장 누군가 24시간을 곁에서 지켜야 했기에 그마저도 나는 말리지 못했다. H와 J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몇 년간 엄마는 H와 J를 돌보거나 집안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을 밭에서 보내셨다. 옥상에 꽤 오랫동안 가꾸고 지어먹은 작지 않은 밭이 있고, 해마다 중랑천 텃밭을 신청해 분양받으셨다. 마당이 있는 집을 가꾸며 살았던 언니네 텃밭도 심심찮게 관여하셨으니 손 갈 일이 하나둘은 아닐 것이다. 가물었던 끝, 오랜만에 비 내리는 일요일이 지났다. 전국적으로 비예보가 내리자 엄마는 토요일 아침에 거름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 엄마를 거들었다. 엄마가 고춧모 아랫녁을 우묵하게 파 놓으면 나는 거기에 한 삽씩 거름을 넣어 주었다. 그런 뒤에 엄마가 확인을 하며 파 놓은 흙으로 다시 거름 부분을 덮었다. 잎 채로 먹는 상추에 거름이 흩어져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넣어주었는데도 여기저기 흐르고 날려 손이 많이 가게 생겼다. 엄마가 상추를 너무 많이 심은 탓이다. 상추가 걸리지 않는 곳이 없다. 그해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엄마는 늘, 해마다 차고 넘치게 상추를 많이 하신다. 도시에서 취미 삼아하는 농사이고 상추는 해마다 넘치도록 많이 심어 똑같이 나는 것 같아도 어쩐지 해마다 나는 양도 다르고 맛도 다른 것 같은데 그것은 누가 알려주어서 알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나도 그저 어렴풋이 그것을 느낀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똑같았을 상추가 올해는 더 부들부들하고 여리고 달고 아작거리고 맛이 난다. 그렇게 상추를 먹으면서도 상추 한 번을 씻은 일이 없었다. 가끔 언니들이 오면 엄마가 싸준 상추를 씻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네, 세 시간이 걸렸네, 하는데 과장이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엄마가 소리 없이 옥상에 계시는 시간 중 상당 부분은 아마도 두 번 세 번 상추를 씻는데 할애될 것이다.
봄 상추가 지나면 초여름 열무 수확이 시작된다. 열무 역시 씨를 잔뜩 뿌려놓고 배게 차서 자라 올라오는 대로 속아내는 식이다. 얼마나 여린지 뽀얀 뿌리째 한번 씻어서 자르지도 않고 강된장에 비벼 먹거나 고춧가루 들기름에 슬쩍 무쳐 먹으면 또 산해진미 부러울 것 없는 별미로 초여름 열무를 먹고 나면 한달음에 한여름이 달려들어 궁둥이 옆에 땀띠 나게 붙어 있는 것만 같다. 한여름은 단연 고추다. 땀띠 나게 더운 여름을 지나면서 새까맣게 독이 오른 청양 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먹는 땀나는 맛을 우리 가족은 너무나 사랑한다. 중랑천은 걸핏하면 범람해 동부간선도로까지 통제되곤 하는데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텃밭은 중랑천과 도로 사이에 있으니 동부간선도로가 통제됐다는 뉴스는 곧 우리 밭이 침수됐다는 소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혀를 끌끌 차다가 물이 빠지자마자 바로 달려가 남아 있는 작물들 잎에 남은 흙탕물을 씻어내고 떠내려간 고랑을 다시 지어 올리면서 보수 작업에 여념이 없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지어먹는 내 땅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어마어마하게 고집스럽다.
H와 J가 오기 전에는 나도 엄마의 그 도시 농사에 꽤나 공을 들였다. 봄, 여름으로는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엄마와 함께 밭에 나가거나, 수시로 옥상 밭을 오르락거렸다. 재미가 없었다면 그랬을 리 없다. 손길 가는 만큼 소출을 내어 주는 것이 신기하고도 기특했다. 그런 것들로 간단히 무얼 만들어 먹는 기쁨도 심심찮게 누렸다.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도시 농사가 계속되었다면 나는 좀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어른이 되었을까. H와 J 덕분에 밭을 들여다보는 횟수와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다 보니 이제는 그 밭에 무엇을 심었고,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대신 엄마가 밭에 머무는 시간은 이전에 비해 길고도 깊다. 그늘 한 뼘 없는 그 뙤약볕 아래에서 머무는 시간, 심어놓은 씨앗이 싹트기를 기다리는 시간, 포실포실 흙을 다듬고 까슬까슬 푸성귀 잎사귀를 들춰보는 시간, 꽃이 지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시간, 일하는 엄마의 손끝이 닿아 뭐든 여물어지는 시간, 그 모든 과정을 위해 물줄기를 찾고 물을 길어다 곱게 흩뿌려 주었을 시간을 엄마는 사랑한다. 엄마가 사랑하는 것이라고 내가 믿고 싶다. 가끔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고운 정원을 가꾸며 피고 지는 꽃을 눈길로 매만지는 것이라면
한층 나을 것인데, 엄마가 하는 것은 농부의 피와 땀 그대로의 노동이다. 엄마는 견디고 있다.
H와 J에게 치료가 필요한 만큼 엄마에게도 치료가 필요하다. 아직은 마음뿐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힘든 날들을 견뎌왔고 아직 여전히 견뎌 나가야 한다. 뙤약볕 아래서 땀처럼 콧물처럼 범벅으로 쏟아냈을 눈물로 고추가 달리고 오이가 자랐을 것이다.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엄마는 여름내 흘린 땀을 다 갈아엎고 가을 농사를 시작했다. 중랑천에는 아직 나가보지 못했으나 옥상은 벌써 풍년이다. 엄마 마음에도 풍년 들기를, 든 것이 있어야 쏟아낼 것도 만들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