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by Anna Jang

진동이 울리면서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는 J가 친구에게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다. J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줄곧 가까이 지내던 친구였는데 요즘 한창 자전거를 같이 타고 다니며 노는 무리에 두 아이가 같이 껴있었다. 통화 연결이 되고 저쪽에서 "고모!"라고 불렀을 때도 나는 그 목소리가 J라고 생각했다. 침이 고여있는 입안에서 머금고 내는 자음과 모음의 울림은 아직 애기 티를 벗지 못한 J의 목소리 그대로였다. 체구도 또래 중에서는 작은 편인 데다 이미 중학생 태가 나는 아이들에 비해서는 아직 아기 솜털이 남아있는 아이들이 바로 J와 그 전화기의 주인인 J의 친구였다. 또래보다 더디 크는 J가 늘 걱정이면서도 그 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또 적잖이 안심이 되기도 했던 아이.


“저 J 친구 B인데요, 지금 학교 앞 세븐일레븐 앞이거든요? 근데 J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이가 부러졌어요. 입술이 다 터져서 피가 너무 많이 나서 119에 신고하고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고모.”


아기 목소리와는 맞지 않는 심각한 상황을 아주 차분하고 정확하게 전달한 B와는 다르게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 채로 비상계단으로 나왔다. 비상계단 창문에서 보이는 소나무 잎이 차갑게 정신을 찌르는 것 같았다가 이내 명치가 따끔거렸다.


“주변에 누구랑 같이 있니?”

“C가 119에 신고했고요, 저하고 J요.”


전화기 너머로 J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B에게 전화기를 넘겨받은 J는 나와 연결된 후로는 말은커녕 울지도 못하고 전화기만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할 수 있어?”

“응.”

“많이 아파?”

“아니야.”

“교통사고는 아니니? 차나 다른 사람이랑 부딪힌 건 아니야?”

“응, 아니야.”

“다행이다.”

“미안해 고모.”


차라리 울지. 너무 아프다고 하지. 미안하다고 하지 말지. 고모 빨리 와달라고 말하지. 그러면 내 명치가 덜 아팠을 텐데.


“고모가 곧 갈게. 119 도착하면 구급대원 말씀 잘 듣고 있어.”

“응.”


J에게 피는 뱉지 말고 삼키라고 말하는 흥분한 C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B에게 119가 도착할 때까지 옆에 있어 주는 것과 구급대원이 도착하면 다시 전화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내 눈앞이 하얘지면서 섬광 같은 빛줄기가 일렁이고 있을 때 바늘 다발 같은 소나무 잎이 창을 뚫고 들어와 관자놀이를 쪼아대는 듯 극심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지금 J에게 가야 하는데, 세븐일레븐 앞 차디찬 골목에서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로 119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얼굴을 덮고 흘러내린 눈물과 핏물이 그대로 얼었을 텐데, 놀라서 더 울고 있을 텐데, 오가는 사람들이 구경하듯 J를 쳐다볼 텐데, 지금, 내가 가야 하는데, 팀장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조카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그래서 고작 고모인 내가 가야 할 것 같다고 하면 이해해 줄까. 팀장도 아끼는 조카가 있으니 이해하지 않을까. 부모님께 사고가 났다고 해야 할까. 지금 바로 처리해줘야 하는 그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업무 전화를 마친 듯 조용히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메시지들을 빠르게 스캔했지만 그 어느 것에도 바로 응답할 수가 없었다. 팀장이 남겨놓은 물음들에만 티 나지 않게 대꾸를 하며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에 몰입하고 있음을 연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다시 관자놀이를 짚고 팔을 괴었을 때 B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119 구급대원이었다.


“J 학생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 J 보호자예요.”

“보호자요? 어머니신가요?”

“…… 네.”

“J학생 앞니 부러진 거 확인했고, 부러진 조각은 확보했습니다. 입술이 찢어져서 출혈이 많은데 차츰 지혈이 되고 있는 것 같네요.”

“이하고 입술 출혈 외에 다른 외상은 없나요?”

“네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치료를 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대학병원보다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가 지금 길에 있나요?”

“아니요, 구급차에 먼저 태웠습니다.”

“병원은 그렇게 해주시고,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아이가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안정할 수 있도록 진정을 좀 시켜주세요.”


KakaoTalk_20260409_120229578_01.jpg 벌써 4개월 전의 일이다. 성성한 눈발이 날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새잎이 돋는다. 2026년 4월 9일의 비상계단 창.



그런 뒤에도 나는 연신 허공에 허리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호자라는 대답에 어머니냐고 되묻는 맥락을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시간차를 두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지난 9년간 무수히도 많았다. 진실도 거짓도 아닌 애매한 상황들. 명료하게 짚어서 말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어깨가 오그라드는 순간들이. 그러면서도 지금은 119가 출동한 응급 상황이니 내가 머뭇거린 고작 1~2초의 시간을 그 대원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제발 그러길 바라면서 나는 보란 듯이 J의 주민등록번호를 구급대원에게 불러주어 신원을 확인시켜 주고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어머니와도 같은 초기 대처를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다. J의 영어학원 원장선생님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J를 이송하는 구급차에는 뜻밖에도 영어학원 원장님이 동승하고 있었다. 미성년자의 이송에 성인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척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소식을 듣고 뛰어나와 J를 확인하고 차마 혼자 보낼 수 없어 선의로 동행해 주신 듯도 했다.


“…… 어머니 제가 지금 이송되는 병원 위치를 문자로 보내드렸어요. 오셔야 할 것 같은데, 곧 오실 수가 있으세요?”


구급대원과의 통화에서 내가 지체했던 그 1~2초의 망설임이 원장선생님의 말에서 그대로 전해졌다. 아마도 소란한 현장 속에는 어느 시점부터 원장님이 있었고, 똘방진 B와 매사에 적극적인 C가 전화 속의 대화 상대는 J의 엄마가 아니라 고모라고 또렷하게 바로잡아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바늘 끝으로 명치를 찌르는 통증은 오간데 없고 가슴이 뻥 뚫린 듯 서늘한 한기가 폐부를 훑고 지나갔다. 원장님과 그간의 모든 상담과 대화에서 나는 철저히 J의 엄마였기에 그 순간만큼은 사연 많은 가정사를 들킨 상황에서 탄로 난 거짓말을 해명해야 하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원장님이 삼킨 1초의 말줄임표 속에는 ‘그럼 정말로 당신은 J의 어머님이 아니라 고모님이시냐’가 숨어 있었을 것이었다. 묻고 싶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그간의 많은 학부모들, 친구 엄마 무리, 학원 관계자, 남일에 관심 많은 위층 아저씨들, 축구 클럽 학부모들, 기타 등등의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러 해명하기도 어색하고, 해명 후에도 꼬리를 물고 일어날 궁금증이나 해명하고 난 후에 덧씌워질 색안경까지 내가 통제할 수는 없었기에 섣부른 대응은 일절 하지 않아 왔다. 엄마로 알아도 상관없고, 알음알음 고모로 아는 것도 부러 막지는 않았다. 아빠와 같이 다니는 법도 없었으니 이혼한 한부모 가정쯤으로 알아도 관계없다 여겼다. 아이들은 아무런 눈치 없이 어느 자리에서건 나를 고모라고 불렀고, 나는 어느 자리에서건 아득바득 선량하고 예의 바른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아이들이 사회의 불편한 시선들을 의식해 나에게 호칭 없이 말하는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이 세상의 손가락질보다 더 괴로웠을 것이다. 고모라고 불러도 나는 명백히 아이들의 사회적인 엄마이고, 엄마라고 불러도 나는 가족관계상 명백히 고모일 수밖에 없는 이상한 정상 가족.


나이 어린 팀장의 얼굴을 보고 말할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아 메시지 창에 객관적인 상황 정보만 적어 넣은 뒤, 눈을 질끈 감고 엔터 버튼을 눌렀다. 속속들이 내막을 알고 싶어 하거나, 이해해 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눈치를 주며 불편한 감정을 만드는 다른 수많은 상사들에 비해 이 사람은 의사소통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부탁의 말은 관리되지 않은 손으로 상대의 손을 잡아야 할 때처럼 어설프게 기워낸 누추한 마음이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1초 만에 돌아온 답을 보고 쭈뼛쭈뼛 눈인사를 건넨 후에야 J에게로 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눈치 보지 않고 연락받은 후에 바로 출발을 했다면 아마 30분도 넘게 빨라졌을 길이다. 회사에서 은마아파트 사거리까지 빠져나오는 양재천 둑방길에는 몹시 추운 날씨였는데도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기온은 낮아도 공기는 맑고 청명했다. 마른 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짧은 해가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들의 등허리에 곱게 내려앉고 있었다. 꾸밈없이 집 앞 산책에 나선 사람들도 킁킁거리며 오줌을 찔끔거리는 강아지들의 뒤를 따르며 한적하고 여유로운 겨울의 한낮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꾸미지 않았지만 궁색하지 않은 저 사람들의 삶과 일과의 대부분을 저당 잡힌 듯 빠듯하게 살아가야 하는 나의 삶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평일 낮시간에 젊은 부부가 아기도 아닌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허기졌던 나의 못난 마음도 오늘 같은 날엔 사치스럽기만 할 뿐. 산책을 마친 그들이 돌아갈 타워팰리스를 지나치면서 오늘 같은 날 J와 함께 이 길을 유유히 걸으며 고운 저 햇빛을 함께 받을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찾아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병원에서 마주한 영어학원 원장선생님은 궁금한 것이 많은 눈빛이었지만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자리를 피해 주었다. 아무리 재원생이어도 수업 일정 등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라 재차 감사를 전하는 내게 ‘제가 그 자리에 있어 같이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라며 되려 함께 있었던 B와 C를 칭찬했는데, 친구들의 그런 행동이야말로 J의 훌륭한 인성 덕분이 아니겠느냐며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이상하게 그 말이 정말 조금은 위로가 되어 마음을 더듬어주었다. 언젠가 소란이 정리되면 별수 없이 한번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뒤에야 J를 마주했다.

자리를 잠시 비우는 일이 비상계단을 탈출하는 것과도 같았던 나처럼 J 역시 구급차를 타고 병원 침대에 누워 진료를 기다리기까지, 우리는 서로 연결된 각자의 비상구를 찾느라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을 켜둔 채로 눈이 마주쳤다. J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고, 짓찧어진 입술이 양쪽으로 당겨지며 금세 핏방울이 맺혔다.



KakaoTalk_20260409_120212205.jpg 2026년 1월 27일. J의 부러진 앞니 조각.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