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가 선택한 구독모델, 제조업은 왜 바뀌는가?
구독모델에 대한 사례 내용은 도서 <커머스의 미래, 로컬>,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 -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모델>, <비즈니스모델 사용설명서> 등의 내용이 참고되어 구성되었습니다.
기업이 제품을 한 번 판매하고 끝나는 방식에서, 매달 혹은 매년 돈을 받고 서비스를 이어가는 ‘구독 모델’로 바꾸려면 조직 전체의 구조와 시스템에 큰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의 조직은 주로 영업, 생산, 유통 부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구독 모델에서는 고객과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꾸준히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전혀 다른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영업팀을 ‘고객 성공팀’ 또는 ‘멤버십 운영팀’처럼 재구성하거나, 아예 구독 전담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제품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의 사고 전환이라는 점입니다. 구독 모델 도입은 새로운 판매 방식 하나를 더하는 게 아니라, 조직 전체를 고객 중심으로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재무 부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기존에는 제품이 팔리는 순간 수익을 기록했지만, 구독은 매달 조금씩 수익이 들어오기 때문에 수익을 나눠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히 '얼마 팔았는가'보다는, 매달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매출, 해지율, 고객이 평생 쓸 가능성이 있는 총금액 같은 새로운 지표를 꾸준히 관리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IT 시스템 전반에도 영향을 줍니다. 기존의 ERP(전사자원관리)와 CRM(고객관계관리) 시스템을 고쳐야 하고, 정기결제, 사용 현황, 요금 부과 같은 기능도 새롭게 추가해야 합니다. 고객 수가 많아질수록 수많은 거래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야 하므로, 시스템의 안정성과 확장성도 함께 강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법무팀도 달라져야 합니다. 구독은 단순한 구매 계약과 달리, 정기 결제, 계약 해지, 자산 소유권 이전 같은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어 기존 계약서와는 다른 새로운 법률 검토가 필요합니다.
물류와 재고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에는 물건을 만들어 팔고 나면 끝이었지만, 구독 모델에서는 제품을 기업이 소유한 채로 고객에게 빌려주거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회수해서 정비하고 다른 고객에게 제공하는 식의 순환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제품의 설치, 회수, 재배송 등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또한, 고객지원(CS) 부서와 콜센터의 역할도 훨씬 더 중요해집니다. 구독 고객은 제품을 사용하는 동안 끊임없이 질문하고, 요청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업은 24시간 고객센터, AI 챗봇, 원격 진단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렌탈’이나 ‘할부’처럼 반복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은 얼핏 보면 구독 모델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렌탈도 결국 매달 돈 내는 거니까 구독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모델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렌탈 모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정수기나 복사기를 빌릴 때, 보통 렌탈 중개업체가 고객의 신청을 받아 제품을 제조사로부터 구매해 고객에게 전달합니다. 고객은 3~5년 정도 매달 비용을 나눠서 내고, 그 기간이 지나면 제품의 소유권이 고객에게 넘어갑니다. 이 모델에서는 제품을 가져다주고, 초기 설치나 기본적인 보증 서비스까지만 제공한 뒤, 대부분의 경우 제조사와 고객 간의 관계는 끝나게 됩니다. 즉, 이 구조의 목적은 판매를 돕기 위한 거래 중심의 구조에 가깝고,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거나 꾸준한 가치를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반면, 코웨이, SK매직, 삼성전자, LG전자처럼 제조사가 직접 렌탈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객이 렌탈을 신청하면, 제조사가 직접 제품을 설치해 주고, 정기적으로 방문해 점검과 유지보수도 해주며, 제품 업그레이드도 가능합니다. 고객의 사용 경험을 계속 추적하고, 불편한 점이나 개선사항을 수집해서 신제품 개발에도 반영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단순한 제품 대여가 아니라, 제품+서비스+경험을 하나로 묶어 고객에게 제공하는 형태가 됩니다. 고객과의 관계도 렌탈 기간 내내 이어지고, 기업은 서비스 품질과 만족도를 계속 관리를 합니다. 이 경우는 단순한 렌탈이 아니라 ‘구독 서비스’에 가까운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것이 할부 모델입니다. 고가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처럼 한 번에 사기 부담스러운 제품을 분할해서 지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인데요. 할부는 고객 입장에서 비용 부담은 줄여주지만, 모든 대금을 다 내면 제품은 고객의 완전한 소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제조사와의 관계도 사실상 종료되죠. 다시 말해, 할부는 ‘지불 방식’이 반복적일 뿐, 그 자체로 지속적인 서비스나 가치 제공은 없습니다. 고객에게 꾸준한 지원이나 관계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단지 비용을 나눠 내는 판매 촉진 수단일 뿐 구독 모델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렌탈이나 할부처럼 반복 지불이 포함된다고 해서 모두가 구독 모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구독 모델이 되려면, 기업이 고객과 직접 관계를 맺고, 지속적인 관리와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꾸준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구조여야 합니다. 단순히 제품을 빌려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죠.
이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개념이 바로 ‘서비스화(Servitization)’입니다. 이는 제품 자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을 통해 고객이 얻는 결과물이나 경험을 함께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어도비(Adobe)입니다. 예전에는 소프트웨어를 CD로 사서 설치했지만, 이제는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계속 최신 버전의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로 바뀌었죠. 고객은 언제나 최신 기능을 누릴 수 있고, 어도비는 지속적인 매출을 확보하면서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비스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가 제품을 단순히 렌탈이나 할부로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구독 모델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구독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1)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 2) 제품 사용 중 정기적인 관리, 점검, 유지보수, 3)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 4) 서비스 개선과 신제품 개발에 피드백 반영, 5) 단순한 물건이 아닌 ‘경험’과 ‘결과’ 중심의 가치 제공 등의 요소들이 따라야 합니다.
즉, 기업이 단순한 제품 판매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로 거듭나야 하며, 고객이 구독하는 것은 제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제품을 통한 ‘지속적인 효용과 가치’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품 부서와 서비스 부서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고, ‘판매 완료’가 아니라 ‘지속적인 만족’이 목표가 되는 방식으로 기업의 생각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할부나 전통적인 렌탈은 반복 지불 구조를 가진 ‘판매 중심’의 방식이고, 제조사가 직접 관리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형태가 진정한 구독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구독 모델을 제대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조직 전체가 '지속적인 가치 제공'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하며, 이는 오늘날 제품 시장에서도 점점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서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 <커머스의 미래, 로컬>의 내용을 저자 직강 이러닝과 도서, 강의교안과 참고자료, 전용 GPTs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제조사들도 이제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 구독 모델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제품을 구독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초기 부담을 줄이고, 지속적인 서비스와 편의성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Samsung Care+ 보장 서비스와, 다양한 혜택을 묶은 VIP Advantage 멤버십, AI 가전제품을 월정액으로 제공하는 AI 구독 클럽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SmartThings와 연동된 가전 구독은 제품 상태 진단, 에너지 소비 분석, 맞춤형 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하여 단순 사용을 넘어 지속적인 경험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과측면에서 2024년 12월 출시한 ‘AI 구독클럽’은 불과 2~3개월 만에 2,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으며, 월평균 1,000억 원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는 보도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추세라면 구독모델로 연간 1조 원 이상의 매출이 발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프리미엄 TV의 경우 구독을 통한 구매 비중이 2023년 12월 20%대에서 2024년 2월 50%로 급증했고, 냉장고 등 초기 비용이 높은 가전제품에서 구독 서비스 이용이 두드러졌다고 합니다. 구독모델 도입 이후 네오 QLED와 OLED TV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증가하는 등 실질적인 판매 증대 효과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LG전자는 2009년 정수기 렌탈을 시작으로 일찍부터 구독 시장에 진입하여, 현재는 ThinQ 앱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가전 관리, 정기 점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다양한 가전제품 렌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LG는 지속적인 서비스와 고객 경험 관리를 통해 구독 기반 비즈니스를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과측면에서 2023년 구독 매출이 1조 6,000억 원에 달하며, 전년 대비 70% 이상 성장했다고 합니다. 2024년에는 300개 이상의 제품을 구독 모델로 제공하고, 75%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누적 매출 1조 8,00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LG는 정수기 렌탈을 시작으로 스마트 가전, 에어컨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구독 모델을 확장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전기차를 일정 기간 동안 체험해볼 수 있는 Evolve+ 구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차량 보험, 정비, 긴급 출동 서비스를 포함해 고객이 구매 전 경험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추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고가이거나 생소한 제품군에서 구독이 시장 확산과 구매 전환을 유도하는 전략적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현대자동차의 구독 프로그램은 가전업체만큼 매출이 크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다만, 차량 보험·정비·긴급 출동 등 서비스를 포함한 구독형 모델을 통해 고객 경험을 강화하고, 구매 전환을 유도하는 전략적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구독 모델은 기업에게 예측 가능한 수익과 장기적인 고객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매력적인 비즈니스 전략이지만, 실제 도입과 운영 과정에서는 다양한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고 복잡한 문제는 기존의 전통적인 판매 구조, 특히 유통 파트너들과의 충돌입니다. 많은 제조업체들은 오랜 시간 동안 대리점, 리셀러, 전문 유통업체와의 협력 구조를 통해 시장을 확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유통 파트너들은 오프라인 매장 운영, 지역별 고객 네트워크, 설치 및 사후 서비스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제조사 입장에서도 대규모 직접 판매망을 갖추지 않아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유통 기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구독 모델이 도입되면 이 구조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구독 서비스는 고객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사용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야 하므로, 제조사가 유통 파트너를 거치지 않고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 경우 중개업체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줄어들고, 마진이나 수수료 수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하며 반발하게 됩니다. 특히 구독 서비스는 단순한 제품 판매가 아니라, 사용 설명, 유지보수 안내, 요금제 선택 등 고객에게 더 깊이 있는 설명과 서비스 제공이 요구되기 때문에, 기존 유통 채널이 이를 따라가기에는 기술적 이해도나 실행 역량에서 한계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이러한 구조적 갈등은 제조업체의 구독 모델 확산 속도를 늦추거나 시장 전체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독 서비스는 고객의 지속적인 만족을 전제로 유지되므로, 기대한 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경우 고객은 언제든지 해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가 제품의 경우, 소비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 품질과 체계를 기대하는데, 만약 설치 지연, 서비스 응대 지체, 기술적 문제 등이 반복된다면 해지율은 빠르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독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인 안정적인 반복 수익 구조가 흔들리게 되고, 브랜드 신뢰도까지 함께 하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객 이탈은 단지 한 명의 고객 손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구독 모델의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됩니다.
더불어 구독 모델은 기업 내부의 운영 측면에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일회성 판매 구조에서는 필요 없었던 반복 결제 시스템, 구독 상태 관리, 사용 데이터 분석, 고객 응대 자동화 등 다양한 기능들이 새롭게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IT 인프라의 고도화와 전문 인력의 재교육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구독 수익은 일시적인 매출이 아니라 일정 기간에 걸쳐 나눠 인식되므로, 회계 처리 방식도 복잡해지고, 재무 보고 체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처럼 구독 사업은 ‘한 번 팔면 끝’이 아니라, ‘계속 책임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운영의 난이도와 리스크 관리 부담이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우선 유통 파트너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반복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의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독 유지 기간에 따라 수수료를 나눠 지급하거나, 고객 충성도를 기반으로 보너스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제조사가 자체 온라인몰이나 앱 기반의 D2C(Direct-to-Consumer) 채널을 구축하되, 유통점은 체험 공간 제공, 제품 설치, 유지관리 등 오프라인 접점을 담당하도록 역할을 분리하는 병행 전략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보다 나아가 핵심 유통채널을 자회사로 흡수하거나 전략적으로 제휴함으로써 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유통 파트너가 구독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서도 의미 있는 역할과 수익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의된 파트너십’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고객이 구독을 유지하고 싶도록 만들기 위한 설계가 중요합니다. 단순한 제품 대여가 아니라, 정기 점검, 소모품 교체, 기능 업데이트, 전용 고객지원 등 고객이 ‘매달 비용을 지불할 이유’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하며, 서비스 품질은 최소한의 기준이 아니라 브랜드를 평가받는 핵심 지표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제조업체가 구독 모델을 통해 고객과 더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고객의 신뢰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결국, 구독 모델은 단순한 판매 방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업의 수익구조, 고객과의 관계, 내부 운영 시스템, 외부 유통 전략까지 전방위적으로 재편해야 하는 전략적 전환입니다. 특히 고가 제품을 다루는 제조업체에게는 이러한 전환이 곧 브랜드 경쟁력, 고객 충성도, 시장 리더십과 직결되며, 이를 제대로 설계하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구독 모델은 기회가 아니라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독모델의 도입은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구독모델의 확산은 제품을 파는 방식뿐만 아니라, 기업의 가격 전략과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 유지 방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옵니다. 특히 고가 제품을 다루는 기업들에게는 이 변화가 더욱 복잡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가격 측면에서, 고가 제품을 구독 형태로 제공하게 되면 소비자는 한 번에 많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비스포크 가전을 5년 구독하면 월 몇 만 원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광고처럼, 가격 부담이 줄어들면서 소비자층이 넓어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민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희소성’과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소유하지 않아도 같은 제품을 저렴하게 쓸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이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의도해 온 ‘소유의 가치를 통한 차별화’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차량을 구독 형태로 이용할 경우 ‘내 것’이라는 소유의 만족감이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자동차처럼 사회적 지위와 연결된 제품일수록 부의 상징성도 약해지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심리는 고급 가전이나 명품 같은 고가 제품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국, 고가 브랜드의 고객은 단순히 기능이나 편의성뿐만 아니라 ‘소유를 통한 자부심’을 중시하기 때문에, 구독이 그 가치를 대체하지 못할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격 정책에서도 구독 모델은 정가 판매와의 충돌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사가 딜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월 구독료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할 경우, 기존의 일시불 구매 고객이나 유통 채널에서는 가격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많은 완성차 기업들은 보험, 정비 등 다양한 서비스를 구독료에 포함시키는 ‘번들링 전략’을 사용합니다. 소비자가 단순히 가격만 비교하지 않도록 만들고, 월 렌탈료와는 다른 프리미엄 패키지로 인식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구독 모델에서는 가격의 투명성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구독을 결정할 때, 월 비용과 제공되는 서비스가 명확하게 안내되지 않으면 불신을 갖게 됩니다. 제조사는 구독으로 수요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소비자들은 많은 혜택보다는 저렴하고 투명한 비용을 더 중요하게 여기 마련입니다. 구독 형태로 상품을 이용하는 것일 뿐 소비자들은 가격에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브랜드가 고급스럽다고 해도 불명확한 가격 구조는 구독 해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너무 고급화된 구독 서비스는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차량을 여러 대 자유롭게 바꿔 탈 수 있는 고가형 패키지는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으며, 중간 가격대의 실용적인 구독 상품이 오히려 유럽 등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즉, 프리미엄 브랜드라 하더라도 구독 환경에서는 소비자의 가격 감각에 맞춰 전략을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독이 항상 브랜드에 부담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독 모델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LG전자는 정수기 렌털을 시작으로 다양한 가전제품을 구독 형태로 제공하면서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는 정기적인 교체 수요로 이어지며 매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LG전자의 구독형 가전사업은 2020년 약 5,900억 원에서 2023년 누적 1조 2천억 원을 넘어서며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자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단지 제품을 저렴하게 빌려준 결과가 아니라, 정기 방문, 케어 서비스, 고객 맞춤 혜택 등 구독을 통해 전달되는 브랜드 경험 전체가 고객 충성도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업데이트 기능이 있는 제품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 경험이 좋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고객이 브랜드 생태계 안에 오래 머물게 되는 효과도 생깁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량 기능을 원격으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기존보다 높은 수익성과 고객 락인 효과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전략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소비자의 수용 한계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제품에 포함돼야 할 필수 기능까지도 별도 구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BMW가 좌석 열선 기능을 유료 구독화하려 했을 때, 소비자들은 기본 기능을 돈 받고 판다는 불만을 쏟아냈고, 이는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구독 서비스가 다양해질수록 소비자의 선택 폭은 넓어지지만, 지나친 수익 중심 설계는 오히려 소비자 신뢰를 해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