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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 청천 Jan 22. 2022

상견례하기 : 결정권

20N年11月





상견례누가 참석할 것인가? 부, 신랑의 직계 가족, 이렇게 딱 떨어지면 깔끔하고 좋겠다만, 안타깝게도 나의 아빠는 다른 세상에 있고, 그이의 형은 결혼해서 아내와 두 아이 가정을 이루었다.


내 쪽에서는 나, 엄마, 동생 셋이 참석할 생각이었고, 그이 쪽에서는 그이, 엄마, 아빠, 형이 참석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이의 형에게 의사를 물었더니 본인과 본인의 가족은 따로 볼 수 있는 날이 많으니, 양가 3명씩 인원수를 맞추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웠다. 인원수가 같으니 음식 값은 그이와 내가 반씩 지불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비 시아버지의 생각이 달랐다. 첫째 아들과 며느리와 손주 두 명까지 함께 불러야 한단다.

"저쪽에도 동생이 나오면, 우리도 다 나가야지"

"아이고 당신. 상견례 자린데 애기 보고 정신 사납게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당신이 애 둘 다 안고 있으소"

예비 시아버지는 예비 시어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러더니 나에게 아버지 형제 없냐고 큰아버지라도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라도 첫째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상견례 자리에 함께 해야겠다고 했다.


어떻게 손. 톱. 만큼도 나를 배려하지 않지? 내 쪽에서 셋이 나갈 것 뻔히 알면서, 두배보다 많은 일곱이나 데리고 나오겠다고? 손주들까지 꼭 그날 보셔야겠어? 애기들은 가만히 있어도 눈을 사로잡는걸. 다른 날도 많잖아. 구를 위해 모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면 나는 이럴 줄 알았다며 표정 굳어질 테고, 억지로 웃고, 엇을 위한 상견례냐 싶고, 기분 쓰레기 같고... 딱 견적 나오는 이 상황을 내가 받아들여야 해? 왜 굳이 그러셔야 하는 거야? 아니 정말 이해가 안 가서 미치겠네. 왜? 아버지를 부르라고? 아버지가 없으면, 큰아버지를 불러? 도대체 무슨 말이야? 뀌면 다 말인가? 일 년에 한 번도 안 보는 관계의 사람을 그 자리에 왜 부르라는 거야?....... 아빠는 늘 나의 자랑이고 사랑인데, 아빠 없다고 대체자를 데려오라니. 아 진짜 서럽다. 진짜 서럽게 한다.


나는 예비 시아버지의 발상과 그 내뱉음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상처 입었다는 색으로 '아버님 말씀에 따르겠다'라고 충동적으로 결정권을 놓아버렸다. 포기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내가 포기한다고 내 마음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다. 화난다고 내팽개치다니, 어리석었다. 다행히 또 한 명의 당사자인 그이가 놓지 않고 아버지를 어르고 달래서 원하는 대로 하게 되었다.





상견례 날은 다시 생각해도 나에게 재미있는 날이었다. 날씨가 정말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차려입은 동생도 귀여웠고, 아침 일찍 준비를 끝내고 싱글벙글 돌아다니는 엄마도 귀여웠다. 우리는 한식이 코스로 나오는 한옥집으로 갔다. 우리가 앉은 방 창이 열려 있었는데 초록 나무와 싱그러운 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두 엄마들은 세상의 모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했고 덕분에 우리 모두 미소가 만연했다. 이어서 아무도 나서서 말을 하지 않는, 미소와 침묵이 공기를 휩싸는 시간이 왔다.

"하하하하"

"호호호호호호......"


긴 침묵을 참지 못하는 엄마는 그때부터 독주하기 시작했다. 난 그 독주가 왜 그렇게 웃기는지. 내 주장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통쾌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6명이 있는 자리에서 대화 지분율을 60%나 가져갔다. 그러니까 나머지 5명은 한 명이 10%의 지분도 못 가졌다는 이다. 엄마 본인이 요즘 탁구를 치고 있다는 이야기, 술을 한 잔도 못하는데 한잔 먹었다가 처음으로 대리를 불렀다는 이야기, 이사할 때 나의 아빠이자 당신의 남편은 자신을 꼼짝 못 하게 앉혀놓았다는 이야기, 또 항상 일찍 집에 들어와서 나와 내 동생과 놀아주었다는 이야기, 본인이 개를 싫어하는데 큰집에 개가 세 마리가 있고 한 마리가 백내장이 생겼다는 이야기 등, 정말 쓸모는 없는데 마이너스될 것 없는 이야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기분 좋게 상견례를 끝내자 나의 평정심이 돌아왔다. 돌아온 정심이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되짚게 만들었다.


윗사람이 되면, 말할 때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니 편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작은 말도 신경을 쓴다. 그이 상견례 후에 ‘장모님이 가정적인 신랑이 되라는 말을 하신 것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엄마의 말 중에 '자상한 남편' 에피소드들은 어떤 의도가 있다기보다 평소 많이 하는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그이는 자신에게 대입하여 장모님의 의도를 찾으려고 한 것이다. 


나 역시 예비 시아버의 한 마디에 반응하고 예비 시어머의 표정이나 몸짓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한 마디 한마디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그냥 하는 말'을 알아가는 중이다. 변 사람들의 그냥 하는 말에 놓지 않아야 것은 결정권이다.  인생이고 내 미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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