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P年05月
5월은 조금 버거운 달이다. 어버이날에는 내 엄마, 시엄마, 시아빠를 챙겨야 하고, 어린이날에는 두 명의 조카를 챙겨야 하고, 그이 형의 생일도 있으며 그이 생일도 있다. 그러니까 시가 식구들은 5월에 챙김 받는 날을 모두 가졌다. 공교롭게 딱 두 며느리만 제외하고 말이다.
명절은 내가 리더가 아님으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그것은 그것대로 힘들다만) 5월은 일정 조정이며 선물이며 식사며 직접 신경 쓸 일이 한데 모여 있다. 가정뿐만 아니라 일적으로도 바쁜 달이라 무리를 했더니, 지금 내 기관지는 할아버지 폐호흡 소리가 난다.
5월 중에 나와 관련 있는 두 가정은 각각 모임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가정 단위로 따지면 나의 가족, 나의 본가, 나의 동생, 시가, 첫째 형의 가정, 첫째 며느리 본가, 이렇게 여섯 가정이 스케줄을 맞춰야 한다. 한정된 주말 중에 날짜와 장소를 선택해야 하는데 다 같이 만난 상태에서가 아니라 전화로 문자로 서로를 맞추다 보니 시가의 모임 날짜는 정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본가 모임 날짜는 정해졌고 시가에는 그날만 제외하면 된다고 알려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 타 지역에 있던 동생이, 친구 생일이 토요일이라며 날짜를 변경했다. 이 때문에 본가 식구들의 식사시간을 바꿔야 했고, 그 영향으로 나의 시가 식구들 식사시간도 바꿔야 했다. 동생은 그런 사정도 모르고, 또 누나인 나와 자형을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그이의 입장은 달랐다. 동생도 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조금 짜증이 났다.
그리고 주말이 되어 우리는 시가로 향하고 했다. 운전 중에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고 그 내용은 동생이 몇 시에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운전 중인 그이에게 말했다.
“동생이 9시에 집에 도착할 것..”
“아 씨 됐어. 신경 쓰기 싫어”
기분이 상했다. 왜 내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냐고 화내고 싶었다. 가족이란 게 그렇다. 나는 욕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은 싫다. 그이가 전체를 배려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내 동생을 내버려 두겠다는, 신경 쓰기 싫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말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복잡하게 끓는 마음을 혼자 삭이며 일단 가야 했다.
내 가족이 살고 있는 곳과 시가는 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래서 가끔 들리는데 그날도 점심 식사를 하러 넷이 나섰다. 그러다 유채꽃밭 이야기가 나왔고, 왕할머니(그이의 외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밥 한 끼는 순식간에 스케일이 커졌다. 차를 돌려 왕할머니를 모시러 갔고, 함께 식사를 했다. 또 운전하여 유채꽃을 보러 갔고, 유채꽃밭이며 튤립 정원을 걸었다.
나는 시엄마 시아빠를 좋아하지만 나눌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내 얘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친척들 사이에 회자될만한 말을 하고 싶지 않고, 해석을 어떻게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애매한 이야기도 피하고 싶다.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훈적인 말이나 철학적인 토의를 함께 할 수도 없다. 과거의 추억도 나눌 것이 없고,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할 수도 없다. 나는 할 말이 없으면 억지로 아무 말이나 하는 편은 아니라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께서 아들과의 데이트가 고프셨는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적이 흐를 사이는 없었다.
배가 부른데 '굳이'라고 생각했지만 '카페에서 팥빙수 먹기'까지 마치고 나서야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 딱히 힘든 것은 없었다. 밥 잘 먹었고, 꽃 잘 봤고, 집에 잘 왔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있었고 뿌듯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이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내가 효도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그 한마디가 찡했다. 나의 입장과 나의 예의를 알아주고 있었구나. 쌓일 것도 없는데 쌓인 마음이 풀렸다. 정직한 말이라 좋았다. 나보고 효도를 대신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한참 동안 토닥토닥, 하루치의 위로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