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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Aug 30. 2023

시간을 사치하다

여행에서 누리는 최고의 사치

용산사를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덧 비가 그치고 하늘을 가득 뒤덮었던 먹구름도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사원에서 얻은 좋은 에너지를 연료 삼아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완화에서 멀지 않은 동네인 디화지에(Dihua Street, 迪化街). 그런데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던 도중, 신푸시장(Xinfu Market, 新富市場)의 활기에 그만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재래 시장 구경은 여행에서 놓쳐선 안될 재미니까. 어쩔 수 없지…!’ 하며 한참 시장을 구경했다. 그러다 그 곁에 있던 갤러리에 또 눈을 빼앗기고,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엔 그 곁의 카페에 또다시 눈을 빼앗겨 차를 마시며 한참 노닐었다. 


이렇게 내키는 대로 시간을 펑펑 쓰며 낭비할 수 있는 것도, 여행에서나 부릴 법한 특별한 사치 아닐까?




시간을 낭비하는 즐거움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특별한 이유는 늘 재고 따지며 아껴 쓰던 ‘시간’을 펑펑 낭비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으로, 또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일정을 쪼개고 쪼개어 떠나온 여행. 정해진 휴가에 맞추어 출국 편과 귀국 편을 선택해야 했다. 말하자면 ‘중대한 시간적 제약’을 가진 여행자인 것. 언젠가는 귀국 편을 정하지 않은 채 훌쩍 떠나기도 했지만, 일을 해야 하는 지금에 와서 그렇게 자유로운 여행이란…. 그 어떤 판타지 영화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작은 단위로 살펴보면 분명히 일상과는 다른 자유가 있다. 계획 없이 이어지는 여행지에서의 매일, 매시간, 매 순간은 서울에서의 일상보다 훨씬 자유롭다. 그만큼 시간을 대하는 마음도 한껏 너그러워진다. 


마음먹은 시간을 훌쩍 넘겨 잠에서 깨도, 길을 잃고 헤매다 예상보다 늦게 목적지에 닿아도, 괜찮다. 배차가 드문 버스를 놓쳐 한참을 기다려도, 대체로 괜찮다. 영업시간을 착각해 먼 길을 걸어 찾아간 가게 앞에서 허탈해져도, 결국엔 괜찮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니까. 나는 지금 여행자니까. 


여행에서 느끼는 해방감 역시, 이 제약 없는 ‘시간 낭비’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펑펑 낭비하는 해방감! 이렇듯 시간을 사치하는 즐거움이 곧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한 것이다.





내일의 여행 계획. : 시간 낭비


용산사에서 디화지에까지, 구글맵이 알려준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 그러나 그곳에 닿기까지 실제로 걸린 시간은 수어 배 이상이었다. 눈여겨 봐둔 디화지에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계획했지만, 그러기에도 너무 늦어버렸다. 


결국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디화지에 상점가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귀여운 상점을 발견해 한참을 구경하고, 골목 어귀에서 발견한 식당에서 대만식 어묵탕과 기름밥으로 맛있는 저녁을 보냈다.


시간 낭비와 엇나간 계획으로 채워진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괜찮다.’는 사실이, 정말 호화롭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내일은 또 어디서 어떻게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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