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야기
'아...... 발목이 시린다.
내가 화장실을 오늘 다녀왔던가.
속이 더부룩하다.
밥을 먹긴 먹었는데 아니 마셨구나. 언제쯤 사람처럼 먹을 수 있을까......'
실핏줄이 터진 빨간 눈동자의 멍청한 눈빛.
침대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TV를 켠 채로
SNS를 드려다 보고 이 여자.
속옷은 갈아입었을까?
머리는 감았을까?
세수는 했을까?
양치질은 했을까?
저러고 있을 시간에 씻지 한탄이 나올 만한 이 여자.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 손목이야. 손가락도 마디마디 아리고.
아린다는 말이 이 느낌이었구나.
열은 떨어졌는데 그래도 내일 병원에는 가봐야겠지??
독감 2차 접종도 예약하는 거 잊지 말아야지.
아기 책도 사야 하는데 오늘도 못 사겠다.
눈알이 타는 것 같아......
내일은 서재방도 정리해야 하고 침실도......
낼 아줌마한테 마늘 꼭 소분하라고 해야겠다.
근데 이 아줌마는 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말하기도 지친다 벌써. 얼른 바꿔야지.
에노모토한테 언제 다시 올 수 있나 연락해 봐야겠다.'
머릿속은 온통 헝클어진 채로
천근만근 물이 뚝뚝 떨어지는 덜 짠 걸레 같은 몸을 끌고 화장실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화장실 누런 조명이 필터가 될 법도 한데
정말 못 봐주겠구나.
자글자글... 하.. 자글자글이라니.. 내 피부가..
보기 싫다.. 양치질이나 하자.'
우울도 이런 우울한 여인이 있나 싶게 우울한 에너지를 한껏 내뿜고 있는 이 여자.
결혼 전까지
동안이다 날씬하다 피부 진짜 좋다를 너무 들어서
이쁘지는 않지만 난 뚱뚱하지 않고 날씬하고 피부 좋은 여자이구나 은근히 즐기며 살았던 평범한 20대.
지금은 전부 거짓말 같이 행색이 초라하다.
미대를 나와서 그림이 좋아 아시아를 오고 가며 그림을 사랑했던 여자.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길 즐겨하고 보통 이십 대들 같이 맛있고 분위기 좋은 곳을 다니길 좋아했던
이 여자는 결혼을 결심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3번씩 선을 보았던 이 여자.
돈 많은 남자도 많고
능력 있는 남자도 많고
애프터 신청까지 일주일을 쉴 틈 없이 데이트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알고 지냈던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 남자는 많던 남자들 중에 유일하게 신앙이 있었고
여자는
'이 남자랑 결혼하면 함께 예배드리는 가정을 이룰 수 있겠구나.'
로망을 꿈꾸며 남자를 선택하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 여자는 능력 있는 선남들을 선택하지 않았던 걸 후회할 거라는 것을 알았을까?
결혼 후 예배의 가정은커녕 골프에 혼이 나가 있는 저 남자랑
가뭄에 콩 나듯이 겨우겨우 예배를 드리러 가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망할 교회 오빠......
로망의 콩깍지가 씌어 결혼하고 애까지 낳아버린 여자.
그 여자가 엄마로 되어 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