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운 Jan 08. 2024

출산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은 지워진다고 했다.

가진통으로 출산이 진행이 될까 봐 입원 생활을 3주나 했는데

(너무 좋았지. 려주는 밥 먹고 코 고는 소리 없이 자고 책 읽고)

40주를 넘어 예정일이 지났는데 아직 신호가 오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파워 워킹이다.!!

다리가 붓건 말건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한강을 걷고 아파트단지를 걸었다.

우울했던 임신 중에도 임신 호르몬 덕분에 많이 감성이 생겨서 인지

많이 긍정적이고 많이 감사하며 보냈다.

그중에 낡은 우리 아파트에 대한 감사는 빠질 수가 없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울창하게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한 우리 아파트 단지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여기저기 산책하는 맛이

아주 쏠쏠하다.

임신 기간 내내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면 운동삼아 걸어야지 했던 것이지만

그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주어서 참 감사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41주.

가을을 잔뜩 품은 아파트 단지를

바스락바스락 단풍의 응원을 받으며 파워 워킹을 하던 어느 날.

드디어 그 느낌이 왔다!! 맘 카페와 지인들에게 전해 들은 것처럼 비상시를 대비하여

최후의 샤워를 하고 출산 가방을 점검했다.

(가방은 예정일 일주일 전부터 싸 두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으로 고심한 끝에 족발을 주문시켰다.

오후 4시쯤 시작된 진통은 점점 강도를 높이며 나에게 신호를 주었다.

학습한 것처럼 시간과 강도를 체크하며  일을 차곡차곡 진행한 건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

라마즈 호흡법에서 배운 호흡을 느낌이 올 때마다 하며

퇴근한 남편과 족발을 어느 정도 먹고 다시 산책을 나갔다.

그때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할만한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여태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던 이 여자는 출산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얼마나 많은 출산 수업을 듣고 연습했는데 당연히 읽고 보고들은 것처럼 잘 되겠지 했다.

밤이 되자 병원에 가야 될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도저히 걸어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남편은 지금 당장 병원에 가도 진통하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개 없으니

내일 아침에 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진정한 고통이 몰려오고 있었다.

밤새 계속 호흡을 했고 고통은 점점 불어났다. 남편은 졸다 자다를 반복했다.

읽은 책에서 아이의 귀가 발달이 되었고 엄마의 비명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났다.

'소리 지르면 안 돼.. 아이가 듣고 있어.. 호흡해야 해...'

악 소리가 나는 고통이 아니었다. 

짐승의 소리일지... 일그러지는 '...... '하고 들어가는 하울링이 계속되었다.

출산 시 아이의 고통은 엄마의 고통보다 10배는 더 아프다고 했다.

그렇겠지 그 좁은 틈으로 껴서 나오는데..

밤새도록 시간을 체크하며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묵직하게 허리를 도려내고 아래가 빠질 것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고통은 지쳐 잠들기는커녕 무엇인가 잘 못 될까 봐 두려움을 안고 정신 줄을 붙잡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왔다. 

8시다.

옆에서 자고 있는 그를 깨웠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인간.

화낼 여력도 없었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

어떻게 옷을 입고 가방을 들었는지도 기억에 나지 않을 만큼 말 그대로 정신줄을 붙잡고 차에 몸을 실었다.

15분 거리의 병원. 

남편에게 어디쯤이냐고 물어보다가 또다시 올라오는 진통으로 구역질을 하게 되었고 어제 먹은 최후의 만찬은 옷이며 차며 가릴 것 없이 입에서 개워져 나왔다. 

겨우 도착해 버려진 옷으로 병실로 도착했고 옷을 갈아입었다. 서 있을 힘도 없는 나에게 간호사는 냉정하게 옷을 벗거나 잘라야 한다고 했다.

뭐 든 상관없었다. 피범벅이 된 피인지 뭐인지도 모를 것들이 속옷에 잔뜩 있어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패닉에 빠졌다. 

고통인지 뭐 인지, 인지도 안 되는, 블랙아웃이 된 숙취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신없음과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해 설명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것과 동시에 혼자인 두려움이 덮쳐서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환복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삼대 굴욕이고 나발이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4cm 열려서 지금 무통 주사를 맞지 않으면 진통이 듣지 않을 거라고 했다. 동의서 사인을 위해 보호자가 필요했다.

그를 찾았다. 그래도 남편이니...

원래 무통 없이 자연분만을 하리라 했다.

만들어질 때부터 나의 몸이 청정하게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태아에게 흡수되는 모든 화학 물질들을 임신 기간 내내 바르는 것 먹는 것 다 조절을 했다. 죄책감이었다.

하지만 몰려오는 고통으로 두려움을 혼자 감당하기엔 응원이 필요했다. 

단 한순간이라도 마음 기댈 곳이 필요했다.


자신의 것을 너무 사랑하는 그는 신의 소중한 차에 토사물이 나보다 더 신경이 쓰였고

내가 환복 하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없었다.

너무 아프고 두려웠던 나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돌아온 그는 나에게 실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 무통신청했어...? 괜찮아..~"

...

뭐가 괜찮다는 건지....

그 시간이 지체되서였을까 아니면 용량이 부족해서였을까...

주사를 맞고 얼마나 있어야 진통이 안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묵직하게 도려내는 고통 속에서 아이가 비명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호흡을 했다.

왔다 갔다 하는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오고 가며

"산모님 아기 심전도 떨어집니다!!!!! 호흡 깊게 하세요. 호흡!!!"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질 않았다.

내 아이가 죽을 까봐...

오랜 진통에 지쳐서였을까... 호흡을 쥐어짜도

간호사는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의사들은 내진을 하며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산모님 아기 힘들어해서 좀 늘립니다."

대답할 힘도 없었다.

나의 아래는 반죽을 휘젓듯이 군부대 국통에 카레를 휘젓듯이 여러 차례 휘저어지고 고통을 넘어 뻐근함으로 정신을 잃을 때쯤 산소 호흡기를 낀 나에게 다시 간호사가 소리쳤다.

"산모님 깊게 호흡하셔야 해 호흡. 아기 심전도 떨어져요!!!"

몇 번의 힘을 주고 분주히 움직이던 스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기 힘들어서 좀 많이 쨀게요. 그리고 이번에 안 나오면 제왕 하도록 합시다."

나의 생각은 필요 없었다.

애부터 살리고 봐야지.. 몇 명의 스텝들은 내가 힘주기를 할 때마다 침대에 올라타서 배를 눌렀다. 

마지막이라고 하고 나서는 더욱 힘차게 배를 눌렀다.

그렇게 힘 주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12시였다... 정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의사와 스텝들이 빠르게 처치를 하고서는 아기를 중환자실로 데려갔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안아 보지도 못하고 빼앗기듯이 중환자실로 올라간 나의 아기.

분만실에 누워서 후처치를 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께서 괜찮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눈에서는 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출산 이후 모든 주변인들에게 항상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출산은 제왕절개로.

어차피 회복은 아프다.

감각 회복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자의 몸을 생각한다면 수술하고 진통제 도움 받고 강제로 쉴 수 있는 제왕절개가 맞다.



이전 04화 출산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