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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Jan 01. 2024

출산준비

하나하나 정성들여 준비해야하는 시간.

나의 임신 기간에 가장 도움을 받은 것은

친정 엄마도 남편도 아니었다.

나의 몸에서 흐르는 임신호르몬.

오로지 호르몬의 도움으로 심신의 안정을 찾고 지내는 시간이었다.


입덧으로 20주가 지난 후에도 교통사고로 몇 주 입원했고 

또 시부모의 폭언으로 쓰러져서 몇 주을 입원하고 보니 태교를 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출산이 코 앞이었다. 

시모의 "위험해서 비행기는 안 타는 게 낫지 않니?"라는 말에

효자인 남편은 태교여행을 송지호해수욕장으로 갔고 

나는 하와이인양 만삭의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에서 수영을 했다.

8년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렇게 시모가 비교하던 동서는 태교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냥 내가 당신 아들돈으로 여행 가는 게 싫었던 것 같은데 내가 너무 꼬인 걸까..?

이 집에 효자는 남편뿐이니.. 간섭을 다 받아주는 사람도 내가 되어야 했던 것 같다.

출산이 다가오니 시모는 별별 것을 다 훈수를 하셨다.

"얘! 자연분만해야지? 나는 제왕절개했더니 너무 힘들더라. 둘째는 자연분만하고 계단으로 걸어서 입원실 갔어. 너무 편해. 그러니까 자연분만해라."라는 소리를 들으며 병원 가방을 쌌다.

사 주지도 않을 아기세탁기를 말씀하시며

"얘! 저거 아기 세탁기니?? 작은애는 샀던데 얼마 안 한다던데?"

친정 엄마는 침대며 유모차며 카시트며 어떤 것이 튼튼하고 요즘에 잘 쓰는 건지 알아보시고 

이거 샀니 저거 샀니 물어보고 백화점 가서 좋은 걸로 아기 옷이랑 싸개 준비해라 

돈 보내고 사 보내고 하루 걸러 택배 보내느라 바쁜 신데....

어쩜 저렇게 말로 간섭만 하는지....

효자인 남편은 시모가 하는 소리가 뭔 소리 인지도 모르고 

들리는 건지 마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저럴 거면서 월세살이 하는 결혼한 지 3주도 안 된 며느리한테 

왜 임신하라고~~~~~ 임신하라고~득실득실 볶았던 건지.


결국 그들은 아기 내복은 커녕 양말하나를 사 오지 않았다.

그들의 아들인 남편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 핏줄 양말조가리 하나도 생각 못하는 그들에게 머리털 한올 같은 기대를 품고

아이를 출산한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 호르몬의 힘이 있으니까!!

씩씩하게 산모교실도 가고 온갖 강의를 찾아 들으며 임신과 출산 수업을 들었다.

갖은 경품신청으로 신상을 신나게 스스로 털리고 다녔다.

온갖 샘플은 다 신청해서 테스트를 하였고

덕분에 나는 거의 모든 출산 준비를 경품과 중고로 준비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그냥 잘 알아보고 매장에 같이 가서 사는 것이였는데.

한 푼 아껴보겠다고 살림에 보탬이 되어보겠다고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고생을 하며 내 아이의 인생도 무색무취로 시작하게 했었다.

그나마 친정엄마가 주신 돈으로 좋은 유모차와 카시트도 사고

나의 작은 경제활동으로 침대가 꾸며졌다. 

지인들이 챙겨준 비싼 백화점 제품들이 모여서 옷장과 장난감들이 채워져 갔다.

나의 작은 존재의 방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조금씩 채워져 갔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를 위해 준비한 저것들이 남편 입장에서는 다 공짜인 셈이었고

나의 입장에서는 밤마다 글을 쓰고 낮에는 수업을 참가하고 발품을 팔고 나의 신상정보를 팔아

받아온 능력 없는 엄마의 최소한의 경제활동이었다.


그것들은 돈으로 환산해서 이마만큼 당신은 아낀거야 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지랄하고 있네!!"


그때의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알뜰살뜰 검소한 우리 아내 덕분에 내 짐이 덜었다 이런 인정을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아끼면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고

내가 아껴서 우리가 더 여유로워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부지런히 엄마가 되어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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