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그들이 사는 세상

by 몽운

도착하자마자 서로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옷만 편하게 갈아입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스페인의 밤거리는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유해 보였다. 살짝 기대가 올라왔다.

피곤했던 우리는 거리만 살짝 둘러보고 근처에서 버거를 포장하고

와인 하나를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피곤했고 나는 이 딱딱한 머리카락을 처리하고 싶었다.

여행을 가는 길에 그의 전화만 오픈을 해서 갔다.

어차피 나는 휴가를 공지하고 갔던 터라 연락이 올 곳이 없었고

무엇보다 아무 연락도 받지 않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 시작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호텔로 돌아오니 시아버지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에게 말을 했고 문자를 지금 보낼까?라고 묻는 나에게

지금은 한국이 잘 시간이니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보내라고 했다.

우리는 허기를 채운 뒤 나는 드디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곯아떨어진 그의 옆에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누우면서

내일부터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일들을 할지 잔뜩 부풀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펼쳐질 지옥은 상상하지도 못 한채 말이다.


우리는 울리는 메시지에 잠이 깼다.

메시지 내용은 왜 며느리가 답장을 바로 보내지 않느냐는 격앙된 메시지였고

전화기 너머로는 시어머니의 언성이 높고 짜증스러운 말투가 흘러나왔다.

"왜 어른 문자를 읽고 씹니!! 지금 아버지 화 많이 났어. 뭐 하는 애니 개는?? 어디서 건방지게 어른 문자를 씹니? 어른이 문자를 보냈으면 바로바로 보내야지. 당장 연락하라고 해라!!"

그의 설명 따위는 이미 들을 마음이 없었다. 등신 같은 그는 어버버 거리다가 끄고는

아버지가 화가 나셨다고 하니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

연락을 본인 아들도 안 했는데 왜 나에게 저런 소리까지 해야만 하셨을까?


그때!!

나는 연락을 했으면 안 됐다.

그에게 다시 전화해서 설명하라거나 스피커 폰으로 둘이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순진했고 무지했던 나는 그들에게 어른 대우?

아!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로서의 존중? 이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풀기 위해 장문의 문자를 두 개를 보냈다.

나는 이런 상황이라 폰을 개통해서 오지 않았고

호텔에서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하였기에

외출 시 그의 폰만 들고나갔다. 돌아와서 와이파이를 연결하여 폰을 확인했을 때는

한국이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우리는 고민을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연락을 드리려고 했다. 답을 안 하려던 것이 아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답이 늦어 죄송하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두 통의 쩔쩔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고

왜 신혼여행을 간 며느리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중에

눈치 없고 개념 없는 등신 같은 그는 그의 어머니의 조언을 가장한 그들의 계획대로

카톡으로 단톡방을 만들었다.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그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나와 셀카를 찍은 다음 단톡방에 어디이다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이 미친 짓은 뭐지 싶었다. 왜 이러지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지?

처음에는 그 난리를 쳤으니 부모님의 마음을 달래려는 것인가 그래 그렇겠지.. 오늘 그러려는 거겠지..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완벽히 빗나갔다.


신혼여행지의 첫날밤을 만끽하지도 못하고

눈을 뜨자마자 나의 부푼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올가미 같은 시댁의 단톡방에 밤낮없이 보고서가 올라갔다.

어디인지 뭘 먹는지 그럼 그들이 코멘트를 달았고

나는 또 그 지랄 맞은 모욕감을 느끼기 싫어서 간단하게 코멘트를 달았다.

단 한순간도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내 피 같은 시간과 돈을 들여 둘만의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그들과 떨거지의 모양새로 낭비하고 있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내가 뭐 하는 짓인지 이 생각 없는 인간은 무슨 짓인지.

내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여행을 더 이상은 그들의 뜻대로 망칠 수가 없었다.

연애기간 여행 한번 편히 못하고 외각으로 드라이브 한 번을 하지 못 하며

데이트도 만끽할 수 없었는데

지나가면 현실이고 부부생활 가족생활이 될 텐데

돌아올 수 없는 이 시간을 그와 첫 단추를 더 이상 잘 못 끼우기가 싫었다.

꾹꾹 참았다. 때로는 피곤하다는 말로 때로는 멀미가 났다는 말로 피해 가며

그와의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렇게 2주를 보냈다. 매일을 노력했다.

매일을 즐기려고 행복하려고 그와 대화를 하려고.

그는 결혼을 했다는 것에 심취했고 부모님의 니즈를 클리어했고 여행 동선과 계획에 사로 잡혀서

둘의 방향은 안중에도 없었다.

둘의 목표도 생각도 전혀 달랐던 우리는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슬펐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이렇게 서럽고 화가 난다는 게.


친정엄마가 결혼 전에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추억으로 사는 거야. 여행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다 잊고 세상이 둘만 사는 것처럼 즐겨.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둘이 신나게 재미있게 놀다가 와. 꼭 그래야 해. 행복하기만 하고 와야 해.

그 추억으로 힘들 때 슬플 때 이겨낼 수 있을 만큼 다 즐기고 와."


그들도 다 지나서 그걸 알 텐데.. 그 만한 세월을 사셨으면 알 텐데..

지독한 그들의 집착은 앞으로의 삶에서 어떻게 튈 것인지 불안하고 두려웠고

정서적 독립에 대한 죄책감과 개념이 부족한 그가 나를 어떻게 지켜 줄 것인가의

불안함으로 가득한 밤들을 지새우며 시간은 흘러갔다.


재미도 추억도 행복도 없이 기억만 있는 나의 2주의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날

쉬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뜻대로 바로 시가로 가는 그가 싫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나도 싫었다.

마마보이 파파보이인 그도 찌질해 보였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지?

내 집. 내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일단 쉬고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하자.

그래 그도 결혼까지 힘들었을 테지. 그래서 부모님과 부딪히기 싫었을 테지.

현실로 돌아가면 대화로 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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