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와 '도대체' 사이에서

둘 사이의 간격은...

by 마혜경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나는 가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음악을 들을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멜로디인데, 가사의 의미가 종종 그 즐거움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화로운 음을 타다가 악기 하나가 귀에 걸리면 그 소리의 끝을 잡아당겨 그것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음미한다. 가끔 백스테이지를 장식하는 미지의 소리가 멀리서부터 귀에 착 걸릴 때가 있다. 이때가 고도로 집중할 때, 뱃고동 소리를 기다리던 아낙네처럼 한달음에 그 소리를 마중 나간다. 귀에 잡힌 소리는 그 거리가 어디든 연주가 끝날 때까지 옆에 묶어두는 버릇이 있다. 간혹 연주자의 취향이나 표정까지 상상하곤 한다.



나는 바닥에 깊이 내려앉은 소리를 좋아한다. Hans Zimmer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의 음악이 자주 아래로 침몰하기 때문이다. The Dark Knight Rises(Main Theme)를 듣다 보면 가장 깊은 소리가 제일 높은 것을 끌고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에너지는 계량할 수 없는 것으로 나는 자주 그곳에 내 감성을 얹고 함께 침몰을 즐긴다. 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POP을 좋아하며, 아예 가사가 없는 클래식이나 영화음악을 사랑한다. 이 감상법은 오래 지속되었으며 나의 감성을 늘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도통 변하지 않은 내 감상법에 오늘 돌 하나가 날아왔다. 가슴 한가운데 떨어진 돌은 물비늘을 그리며 깊게 가라앉고 있다. 그리고 방해꾼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심장을 관통하는 중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가수, 투박한 사람의 가느다란 어조가 이율배반적이라고 느껴서일까, 평소에 꺼리던 양희은이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아주 머나먼 시간에서 온 낡은 노래가 아닌가. 그동안 무의식 중에 여러 번 내 귓가를 스쳤을 노래, 대충 그런 노래가 있었지, 그 정도의 노래랄까. 그리고 그땐 몰랐던 가사. 나열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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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우선 내 음악 감상법에 비춰 봤을 때 멜로디는 감미롭다 못해 야릇하다. 의미를 알았으니 사랑의 '쓸쓸함'을 논하기는 어렵지 않다. 사랑 타령 노래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해석이 이 노랫말에도 숨어있다. 지난 사랑이 후회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 뒤를 쓸쓸함이 채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테고. 멜로디는 이런 분위기를 이끌고 내 귀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 길을 잃은 걸까. 평소 가사라면 건너뛰고 보는 내 가슴에 뾰족한 가시 하나가 박혔다. 그것은 무엇일까.



아, 찾았다.



저기, 찾았어! ⓒ마혜경

진부하게 사랑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 사이로 얼핏 비치는 단어, '도무지'. 이 말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 앞에서 애태우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왠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도무지,라고 입밖에 꺼냈더니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들인 느낌이 든다. 이렇게 저렇게가 아니다. 내 입장, 상대의 입장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사라지고 온통 '너' 하나로 채워진 그림 앞에 선 기분이다.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그렇다면 노래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도무지'가 아닌 '도대체'로~



도대체 알 수 없는 한 가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될 이 가사는 다짜고짜 따지는, 즉 누군가에게 야단이라도 맞은 느낌이 들어서 서늘하다. 상대는 온데간데없고 자신부터 챙기겠다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도대체라니... 우리가 늘 그렇지 않나. 약간 밀릴 것 같을 때, 손가락을 길게 뻗으며,

도대체 넌 알 수 없어!
너야말로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알 수 없다'와 붙여 사용하긴 하지만, 사실 알려고는 했는지 그 노력조차 의심스럽다. '캐묻기'에 목적성을 둔다면 '도대체'는 사랑의 언어에 자격 미달인 셈이다. 그러나 '도무지'라면 참을만하다. 아프지 않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미묘한 배려마저 느낄 수 있다. 그 온기가 지금 내게 다가온 것이다. 어원을 찾아보면 섬뜩한 이야기도 있고, 역시 부정적인 의미 앞에 사용된다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


도무지, 도-무-지, '도무지'


이제부터는 '도무지 알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화내거나 서운해하지 않겠다. 그의 '알 수 없음'을 위해 기꺼이 즐겁게 설명할 것이다. 밤새 생각의 블록을 쌓았다가 허물기를 수백 번 했을 그에게, 그래서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그에게, 세밀화를 그리듯 단정하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동안 난 안일했다.

도무지와 도대체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는 것을,

도대체 왜 도무지를 써야 하는지를,

사실 도대체를 더 즐겨찾기 했다는 것을 몰랐다.






이 모든 것은 가사보다 멜로디만 즐겨 듣는 내 감상법 탓이다. 중요한 편지를 받고도 선율만 골라 먹었으니...


오늘 스치는 노래를 듣다가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 순간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지만

그들에게도 각자의 물음이 있을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해 밤새 생각한들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도무지'와 '도대체' 사이를 오간다.

그러니 정말 해당되시는 분만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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