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요, 닳아

가다 서다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by 마혜경


얼마 전 자동차종합검사를 받았다. 라이트부터 브레이크, 타이어까지 전체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차량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서비스로 비용도 저렴하고 예약제라 짧은 시간에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직원이 검사 결과와 조치사항을 알려준다.


휴게실 안에는 대 여섯 명의 남자들이 입으로 담배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것을 마시지 않으려면 가까이 앉은 남자의 들숨과 날숨에 박자를 맞춰야 한다. 한 템포 놓친 차이가 결국 엇박자를 만들고, 포기하려던 차에 직원이 나를 부른다.


"마혜경 님!"

"네?"


"배기가스, 라이트, 브레이크 다 정상입니다.
그런데 앞 타이어가 많이 닳았어요,
교체하셔야 돼요. "


'읭?'



"어머, 교체한 지 얼마 안 됐고,

얼마 타지도 않았는데... 요?"

"혹시 근거리 운전하시나요?"

"음... 자주요..."


"오히려 가까운 거리를 가다 서다 반복하면
더 쉽게 닳아버려요."

"…… "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쉽게 닳아버려요


걷고 싶어요 ⓒ마혜경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가다 서다를...

쉽게 닳아버린다

닳는다

사라진다






곰곰이 생각한다. 가다가 머뭇거리고 주춤하는 버릇이
무언가를 닳게 한다는 말, 그 말이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가다가 서는 일은 안 좋은 일일까.
힘들면 가다 설 수도 있지.
신호등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으니까.

무엇보다 가다 보면 주변에 볼 것도 많고,

갑자기 딴생각이 나서 방향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가다가 가기 싫어져

다시 돌아온 적도 많으니까.

가다 보면 결국 변덕이 생기니까.






신호등처럼 신중하게 생각하고 돌아보려는 태도와, 가다 서다를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가다 서다의 버릇이 자기 딴엔 '돌다리도 두드린다'는 심정이겠지만, 이것을 한 장의 그림이라 가정한다면, 핑계의 요소를 죄다 그려 넣은 꼴이 된다.


어떤 일은 고민하고, 관찰한 후 되새겨야 하겠지만,
우리가 완결 짓지 못하는 일의 대부분은 덜 고민해서 덜 생각해서가 아니라 가다 서다를 밥 먹듯이 하니까 마음이 닳고 닳아서 결국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이다. 한번 바닥 맛을 보면, 바닥이야말로 안전하다고 믿게 되니까 일어서는 데 큰 각오가 필요하다.


무턱대고 가다 서다만 반복하면 할 수 있는 게 가다 서다일 뿐이고, 오롯이 가는 데 사용되어야 할 용기는 서는 일에 모두 허비된다. 흐름이 깨지고 오히려 무기력해진다. 가려는 의지로 무늬를 만들어야지, 가다 서다로 만들다 보면 패턴대로 관성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가던 사람은 한 번에 욱~ 잘 가게 되고, 가다 서다 하는 사람은 가다 서다를 쭈욱~ 반복하게 된다.


달리는 기차의 관성을 없애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때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닳게 함으로써 잠시 휴식을 얻을 수 있다. 결과는 냉정하다. 총질량의 법칙에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닳아버린다면 바닥에 엎드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바닥이 되는 일만 남는다.



타이어는 무게를 싣고 굴러간다
어떤 무게는 비싸고 둔탁하며
어떤 무게는 가볍고 겸손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둔탁한 것도 겸손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채 닳아버리지만
그래도 굴러가니까 하나에 가닿게 된다.

내 의지도 무게를 싣고 굴러간다
어떤 태도는 아둔해서 하찮고
어떤 생각은 빈틈없이 단단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하찮은 것도 단단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채 닳아버리지만
그래도 걸어가니까
뭐든 동그랗게 하나에 가닿는다.






내가 모두 닳아서 언젠가 사라져야 한다면,
바닥이 아닌 걸음에서 닳고 닳다가
마지막 1할은
무덤 앞으로 가는 일에 소비하고 싶다.


이것이 나를, 아니 나의 발을,

닳도록 사랑하는 최소한의 예의.

타이어 하나에도
진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
혼자 가득한 목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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