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에는 엄마를 미워했다. 너무 예민해서 작은 것으로도 혼이 자주 났고, 가족보다는 바깥에의 일을 더 신경쓰고 본인을 더 가꾸는 엄마가 미웠다. 아빠가 불쌍했다.
엄마가 우리 몰래 병원에 입원한 뒤로, 그리고 우리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주며 아빠와 이혼을 한 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와 조금 더 터놓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유난히 엄마를 많이 닮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빠가 나보다 동생을 더 좋아하는 것도 나에게서 엄마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는 엄마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엄마에게 가지는 감정 중 어떤 감정이 맞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냥 순간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엄마와 더 진솔한 이야기도 하고 풀리지 않았던 것들을 풀고 싶었다. 봄 여행을 계획하던 중에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예전에 내가 닮았던 엄마는 없다. 엄마와 여행도 갈 수 없게 되었고 가벼운 대화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엄마를 바라보고 애써 웃을 뿐. 집에서도 눈물이 나고 일을 하다가도 눈물이 난다. 엄마를 이해할수록 슬픔은 커지고 부정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졌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 먹으면서 처음에는 이 슬픔과 분노, 허망함, 안타까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글로 해소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다보니 허망함은 더 커지고 슬픔도 굴러 굴러 여기저기에 박혔다.
딸들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엄마의 딸이라서 종국에는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이전의 엄마가 아니라고 해도, 엄마의 삶은 끝나지 않았고,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다만 더는 같은 속도로 걸어갈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비슷한 모습을 가진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결국 닮은 팔자에 맞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팔자를 닮았다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나는 엄마의 강함도 닮았다는 걸 기억해보려 한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엄마가 끝내 못다한 것을 대신 살아보기 위해 오늘도 견딘다.
언젠가 이 글을 돌아봤을 때, 지금의 내가 이 감정들을 다 껴안고 살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
그 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시고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가 응급실에 있었을 때부터 쓰기 시작하면서 이 글을 마칠 때 즈음에는 엄마가 어떤 희망을 작게라도 보여주길 바랬는데요. 의식은 찾았지만 아직 인지가 없어 엄마를 볼 때면 아직도 희망보다는 허망함과 슬픔을 더 많이 발견해요.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려고요. 모두 오늘도 건강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