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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연락하지 말라는 엄마

우리 저녁에는 서로 연락하지 말자.

by seon young

근래 엄마 병원에도 면회를 통 못갔다. 올 봄 엄마와 가려고 스크랩 해두었던 일본 여행지만 봐도, 냉장고에 붙여 놓은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만 봐도 눈물이 주룩 흐르는데. 병원에 여전히 콧줄을 꼽은 채로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면 또 얼마나 눈물이 날까 싶어서였다. 그것이 핑게이던 뭐던 일단 엄마를 멀리했다.


비슷한 이유로 최근 안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폭삭 속았수다'. 아이유와 박보검이 나오는 그 드라마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서 클립이 나와도 그냥 지나쳤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는 드라마를 보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가족의 이야기는 늘 슬프다. 가장 가까운 이야기라서, 저마다 사연이 없는 경우가 없어서.


엄마는 내가 어릴 때에는 무서운 존재였고 그 무서움이 의지로 바뀔 무렵 슬픔이 되었다. 집에 오면 늘 유쾌하거나 정신없이 흘러가는 속도감 있는 드라마에 몰두했다. 억지로라도 타인의 삶에 들어가 있다 보면 슬픔을 잊을 수 있어서였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차려지면 또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유독 건강 염려증이 심했다. 한 번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난 뒤에 그 염려증은 극한에 달했다. 과자를 먹고 싶은 날에는 입에서만 씹고 뱉어내기도 했고, 빵을 좋아했지만 늘 한식과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유지했다. 하루에 1만보 이상은 꼭 걸었고 최근에는 지압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은 나에게 20만원 상당의 지압봉을 대신 주문해달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남자친구한테 이야기 했는데 은근히 엄마의 지압봉을 이해하지 못하는 투를 내비쳤다.


엄마는 건강 염려증만큼이나 가족들의 안위를 염려했다. 저녁에는 연락이 닿지 않으면 서로 걱정이 될 것 같다며 낮에만 연락하고 저녁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연락을 자제하자고 했다. 이 역시 남자친구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의 건강 염려증을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가 유난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엄마가 아파 쓰러지면 그 감당은 두 딸들의 몫이 될 것이었다. 엄마는 딸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늘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을거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 명의의 집 한채를 노후 자금으로 꼭 안고 살았다. 이모들은 그 집을 서둘러 처분할 것을 재촉했지만 엄마는 눈 한 번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한 순간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게 됐다. 엄마가 정신이 들면 본인이 가장 서럽고 속상해 할 것이 분명하다. 가장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본인이 짐이 되어버렸으니. 어쩌면 엄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불쌍한 엄마. 잘 시간에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엄마가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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