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 맞더라도 의견을 굽히고 싶지 않은 딸에게 ..
엄마가 아프고 나서 내 의중과 상관없이 엄마에 대해 더 알게 됐다. 그러면서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됐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엄마를 많이 발견하기도 했다. 그것은 외모이기도 했고 생각이기도 했다.
엄마가 대학시절 나를 얄미운 여우같은 기지배라고 했던 것도, 아빠와의 관계도, 태생적으로 예민한 성향으로 우리에게 통제에 가까운 요구를 하는 것들도 하나 둘 이해하고 또 나도 모르게 닮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엄마의 기질을 많이 닮은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다.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난히 욕심이 많았다. 겉으로는 순한 양처럼 굴었지만 내 것은 무조건 사수해야 하는 성격에 얌체같은 짓도 곧잘 저질렀다. 초등학생 때 집에 친구가 놀러왔던 날이 기억난다. 전 날 아빠가 사다준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독점하고 싶어 친구가 집에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친구가 문 밖을 나서자마자 빠르게 인사를 마치고 냉동실 문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너 지금 친구 가자마자 아이스크림 꺼내는거야? 나가서 친구 데려와서 같이 먹어"
엄마는 내 욕심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친구를 다시 데려와 집에서 아이스크림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나는 내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적하는 엄마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 먹으면 두 개나 먹을 수 있는데 왜 남에게 내 아이스크림을 줘야 할까?
고등학생이 되고 나는 공부도 곧잘 하고, 선생님들의 신임을 받는 학생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들은 내가 나에게 취하게끔 만들었다. 2학년 1학기 즈음이었을까, 학교에 영어회화 선생님이 새로 왔다. 젊은 남자였는데 첫 수업부터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학생들의 관심을 사로 잡았다. (얼굴은 별로 였는데 너무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니 그것이 학생들에게 반응을 좀 끌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선생님들에게서 처럼 그 영어회화 선생님의 사랑도 독차지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은 분노로 바뀌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 수업시간에 유치원에서 배웠을법한 'backpack' 단어를 가르치거나 수업이 끝나면 꼭 여학생 한 명을 본인의 1인 사무실로 데려가 쉬는 시간 내내 데리고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그가 변태에 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퍼져 나갔다.
나는 그 사태를 두고만은 볼 수 없었다. 그에게 우리의 수준에 대해 알고 가르치는 것인지 따져대고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것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나 외에도 몇 명이 그에게 대들었고 그는 나를 타겟으로 삼았다. 나는 그에게 트집잡히지 않으려 영어회화 공부를 유난히 열심히 했지만 늘 말도 안 되는 지적을 받으며 매 번 학년주임 선생님에게 불려갔다. 손을 들고 벌을 섰고 반성문을 여러 장을 써내야했다. 물론 반성은 전-혀 하지 않았다. (반성문에 내가 왜 그랬는지를, 내가 얼마나 정당한지를 꾸역꾸역 적어서 냈다.)
결국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호출하기에 이르렀고 엄마에게 당당하게 내 업적을 자랑하듯 말했다.
"엄마, 그 선생님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내가 잘못한게 아니라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이야. 모든 일에 그렇게 열을 쏟으면 안돼. 넌 공부를 해야지."
엄마의 이야기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 변태를 선생님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엄마가 그 사람을 겪어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학을 맞는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이 선생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꼭 밝혀내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길게 설득했고 결국 엄마의 말에 따라 선생님에게 사과를 해야했다. (사과를 하던 때에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고 눈은 여전히 세모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와 지금, 엄마가 병상에 누워 있게 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엄마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더 많이 병원을 찾았다. 사람들은 사람들은 엄마에게 받았던 것을 그대로 기억하고 그 이상을 나눠주려고 찾아왔다. 그리고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없어. 늘 그랬지. 계산을 안해. 본인이 하나를 받으면 둘을 주고 셋을 줘."
그 사람들이 병원을 지켜주는 덕분에 나는 조금이나마 회사와 개인의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와중에도 쏟아지는 업무량은 날 지치게 만들었다. 내가 잠시 재택근무로 자리를 비우는 동안 다른 팀과 우리 팀원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이슈가 계속해서 발생했고 나는 그 일들을 하나하나 다 해결하려 나섰다. 그러다보니 내 개인 업무는 계속해서 야근과 새벽까지 이어졌다. 엄마 생각이 나는 날에는 울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나가다 보신 대표님이 나를 부르셨다.
"뭐가 중요한 지를 지금 찾아야 해. 모든 걸 다 할 순 없어. 넌 어머니의 딸이니 지금은 딸의 역할에 충실해."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고등학생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듯 했다. 모든 일에 신경쓰면서 모든 일에 똑같은 힘을 들이는 나. 그리고 엄마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엄마가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더 자기 것에 욕심내고 자기것을 지키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타인까지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에너지가 아닐까? 엄마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결국엔 발길이 서서히 잦아들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도 회삿일은 잠시 신경을 꺼도 된다고 하지만 그 배려와 이해도 언젠가는 화살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회사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면서 사람들은 언제든 다른 얼굴을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엄마를 보며 엄마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엄마가 일어나면 예전에 나의 고등학생 일화부터 시작해서 엄마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난 아직 엄마에게 듣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엄마를 이해할수록 내 생각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고 엄마의 이야길 듣고 싶다.
내가 틀렸다고 아니라고 해도 좋으니 엄마가 어서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