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브런치는 저의 연애 기간처럼 다소 긴 글이라는 점 ......
핸드폰에 깔려 있는 [THE DAY BEFORE] 이라는 앱에는 우리가 사귄지 오늘로 2762일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1년이 365일이니 나누기 365를 해보면 7.5라는 숫자가 나온다. 7년 넘게 사귀고 있는 우리 커플. 꽤 길게 만나고 있다.
물론 주변에는 9년이나 10년 또 무려 14년을 넘게 만나오고 있는 커플들도 많지만 연애만 이리 길게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남자친구와 내가 7년 넘게 만나고 있단 얘기를 들으면 그 비결을 묻곤 한다.
"7년을 만난 비결이 뭐예요?"
평소에는 서로의 신뢰라거나, 자주 보지 않는다거나, 나의 이해심이라거나 (남자친구가 아닌 나의 이해심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등등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은 날엔 "이별이요! 한 번 헤어져보면 오래 만날 수 있어요" 라고 한다.
상대방을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난 정말 우리가 도합 7년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가 한 번의 헤어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귄지 2년 반 즈음 되던 때였다. 남자친구가 자기관리를 하지 못해 살이 정말 많이 불어났다. 키가 꽤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쪄서는 티가 많이 나지 않는데도 정말 심하게 살이 쪘다. 아마 그의 인생에서 최대 몸무게였으리라....
게다가 평일에 내가 퇴근 후 정말 스페셜하게 술이 한 잔 마시고 싶거나(평소에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기에), 산책을 하고 싶은 날에도 늘 피곤하다는 이유로 데이트에 응해주지 않았다. 그런 저런 일들로 작은 불만이 쌓여갈 무렵 남자친구가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걸렸다. 회사 업무도 재택으로 돌리고 집에서 길게 요양하게 되었던 기간이 있었고 우리는 2주 만에 만났다.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친구를 보는데 반갑기는 커녕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대학생 때 가장 친하지 않았던 선배가 걸어오는걸 바라본다면 그게 이 마음이려나 싶었다. 그리고 언뜻 비친 남자친구의 핸드폰 속 배경화면이 여자아이돌로 바뀌어 있는 걸 보고야 말았다(내가 치즈*이전 화 참고/는 용서했는데 이 여자아이돌은 여전히 밉다... 그녀는 죄가 없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만큼 화가 많이 났었다) 내 사진으로는 한 번도 배경화면을 한 적이 없었던 남자친구였다.
그 동안 참았던 불만들이 그 배경화면으로 전부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2주 만에 만나는데 여자 아이돌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바꾸고 오다니. 게다가 불만을 표시하는 나에게 약간의 짜증을 내며 그럼 본인의 조카 사진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나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왔다. 남자친구가 붙잡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일거라는 예감에서 터진 울음이었다.
우리는 2주 간의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 동안 남자친구에게 가졌던 불만을 대체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실제로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다가왔고 글이 길어질 것 같아 적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면서 지난 남자친구를 종종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도, 좋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바쁜 일상을 가진 사람은 개인 시간이 소중한 상대에게는 편안한 상대일 수 있으나, 매일 보는 연애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있던 동안에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남자친구가 조금만 양보해줬다면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을텐데. 그 사람만큼 나의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을 이해해주고 잘 맞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물론 있겠지만)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남자친구와 다시 만난 이후에도 현재의 내 가치관을 쉽게 이해해주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생각들 와중에 남자친구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겪고 한 달 동안의 대화와 데이트를 통해 재결합 했다. 헤어진 사람은 어떻게든 또 헤어지기 때문에 절대 만나지 않는다!가 나의 지론이자 철칙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나의 신념을 꺾었다.
그리고 곧 8주년을 마주하는 우리. 투닥 거리는 때는 있어도 헤어지기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행복한 연애를 하는 중이다. 서로를 더 곧잘 이해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겪어서인지 권태기를 겪고 있는 커플들에게는 한 번쯤 헤어져보기를 권한다. (위험한 발언일지도 모르겠으나..... ) 이 권태기가 내가 누구인지, 저 사람과 내가 진정 맞는 사람인지 궁금한 상황이라면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찬찬히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통해 알아갈 수도 있고 혼자만의 시간에서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나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