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May 06. 2019

맥도날드 가고 싶은 날

햄버거를 먹고 싶지 않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밝은 표정을 내비치는 일이 큰 에너지로 소모될 때가 있다. 한국에 있을 땐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되는데 여행 중엔 그게 참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불특정 다수와 마주해야 했다. 상대방과 이야기할 땐 환한 얼굴을 내비쳐야 했고,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어야 했다. 마음 에너지가 소진됐을 땐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들과 최소한의 인사만 나누었다. ‘말 없고 사람들과 고루 섞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여행자’ 컨셉을 유지했다. 몸짓의 반경은 좁게, 목소리는 작게, 표정의 변화는 적게 일관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 테니까.

 어쩌다 한 번씩 밥 먹는 것조차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찾아왔다.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 간격으로 나라 이동을 하는 나로선 입맛과 예산에 맞는 식당 찾는 게 큰 과제 중 하나였다. 여행일수가 10일, 100일, 200일 그 이상으로 점점 커질수록 식당 고르는 기준이 뚜렷해졌다. 일단 가격이 저렴한 식당들을 골랐다. 그중에 메뉴가 많지 않고 대표 메뉴가 있는 식당, 관광객에게는 유명하진 않아도 현지인들이 꾸준히 찾는 식당. 이 세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식당을 검색하고 찾아다녔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 쪽으로 오면서 좋아할 법한 식당을 구글 지도에 저장해두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저장해두었던 식당에 가거나, 숙소에서 만난 직원이 추천해주는 식당에 가기도 했다. 간혹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식당에 가기도 했으나, sns에서 유명한 발 디딜 곳 없는 식당은 맛을 떠나 서비스의 질을 기대하기 힘들었고 여행지로서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맛은 조금 투박할지라도 그곳만의 맛과 정취를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곳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주변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을 때,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낮아졌을 때. 그럴 때면 닭장 같은 도미토리 침대에서 배고픔을 참기 싫어질 때까지 버텼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소지품을 챙겨 나와 일말의 주저 없이 맥도날드에 갔다. 평소에 햄버거를 즐겨 먹진 않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허기를 달래기엔 맥도날드만 한 곳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내 돈 주고 햄버거를 사 먹었던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패스트푸드점은 최소한의 힘으로 단숨에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그 도시의 고유한 정취를 느낄 순 없지만 값이 저렴하고, 대표 메뉴가 있으며,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맥도날드였다.

터키 트라브존에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맥도날드. 주문할 때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기계로 주문할 수 있는 곳. 기계가 영수증을 뱉어내면 대기줄에 가서 음식을 기다려야 하는 곳. 전광판의 번호가 내 이름이 되는 곳. 사람들과 듬성듬성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우걱우걱 먹는 곳. 햄버거를 먹다가 때 묻은 옷깃을 보면 은근한 처량함이 느껴지는 곳. 떨어진 양상추를 크게 넣다가 소스가 입가에 묻어도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 곳. 뻔한 맛이지만 그 뻔함이 싫지만은 않은 곳. 다수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철저하게 그들과 분리될 수 있는 곳이었다.


 한국에 와서 맥도날드가 종종 생각난다. 햄버거를 좋아하지도 않고 먹고 싶지도 않지만 이따금 맥도날드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타인과 철저하게 분리되고 싶은 날. 내 이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은 그런 날, 맥도날드가 생각난다.


*자주 읽고 가끔 씁니다.

@hoyoungjo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