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라 May 08. 2019

사랑은 돌고 돌아오는 것

한 개 주면 열 개를 받는다. 선도 악도


 “다른 데는 아프지 않은데, 어깨가 너무 아파.
짐 좀 줄여야 하나?
아니면 내가 배낭을 잘 메지 못한 건가?”


 순례길을 함께 걷던 하연이에게 며칠째 하는 말이었다. 매일 20km 이상 걸으면서 언젠가 몸에 이상이 올 줄 알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어깨 통증과 피로가 쌓이기 시작했다. 어깨가 아프니 몸이 경직되고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도통 생기지 않던 부위에도 물집이 잡혔다. 한 가지 통증은 다른 통증으로 연쇄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Zubiri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하연이와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요리할 때 사용할 조미료를 가지러 간 하연이가 뛰어와 숨을 헉헉대며 말했다.
 “언니! 우리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한국 분들 있잖아. 그분들이 언니 배낭 어떻게 메는지 알려주신대! 빨리 가봐! 알베르게 문 앞에 계셔!”
 그 말을 듣고 문 앞을 향해 뛰면서 하연이에게 말했다.

 “밥 안쳐놓았어. 물이 끓어 넘칠 수 있으니까 잘 지키고 있어!”

 말하는 입은 하연이를 향하고, 팔과 다리는 한국 분들을 향해 있었다. 폴폴 끓고 있는 밥도, 튼튼한 어깨도 지켜야 했다.

Zubiri 알베르게. 주황색 지붕 건물이 주방이었다. 주방에서부터 빨래줄을 따라 알베르게 방 문까지 뛰어갔다.

 배낭을 손에 들고 아주머니에게 배낭을 어떻게 메야하는지 물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배낭 메는 방법도 모르다니.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멍텅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잘 걸으려면 배낭을 잘 메야했다. 끈을 이리저리 당기고 풀어주시더니 “한 번 메 보세요.”하고 나에게 배낭을 건네셨다. 배낭을 메고 어깨끈과 허리끈을 내 몸에 맞게 조절했다. 균형이 맞지 않게 배낭 한쪽이 치우쳐 있었는데 얼추 맞춰진 느낌이었다.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배낭이 한 번에 내 몸과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배낭끈을 자꾸 당겨보기도, 느슨하게 풀어보기도 해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내 몸에 맞춰봐야 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에이 뭘. 다음에 도움 필요한 사람 있으면 도움 주고 그러면 되지. 근데 발은 왜 쩔뚝거려요?”
 “발에 물집이 잡혀서 터트려야 되는데 밥 먹고 터트리려고요.”
 “밴드는 있어요? 물집 밴드?”
 “물집 밴드요? 처음 들어봐요.”
 “가만 보자, 내가 갖다 줄게요. 저기 앉아 기다려요.”
 말씀이 끝나자마자 물집 밴드를 가지러 가셨다. 잠시 후 빠른 걸음으로 오셔서, 물집 밴드 그리고 종이테이프를 건네셨다. 가방 끈을 조절해주신 것도 모자라 밴드와 테이프까지 챙겨주시다니. 새우처럼 고개를 숙이며 연신 감사 표현을 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의 포용에 대해 생각했다.

 그분은 내게 순례길이 처음이냐고 물으셨다. 처음이라고 대답하고, 그분께 처음이시냐고 되물었다.
 “나는 카미노 세 번째예요. 첫 번째, 두 번째 왔을 때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그때 생각했지.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꼭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겠다고. 내가 이렇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서 좋네요.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꼭 돌려줘요. 사랑은 돌고 돌아 결국엔 나한테 되돌아오니까.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이에요. 사랑은 돌고 돌아온다는 말이요."

 "감사하긴. 젊은 사람한테 말 너무 많이 했네. 아이고. 나는 이제 쉬러 갈게요.”
 "아니에요. 오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부엔 카미노!”


 한 가지 통증은 다른 부위 통증으로 연쇄적인 반응이 나타나듯 따듯한 마음도, 그에 걸맞은 사랑도 내겐 그랬다. 누군가 내게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면, 난 온기를 품고 있다가 다른 이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되곤 했다. 따듯한 말을 건네고 나면 품이 넓은 사람이 된 듯했다.


  <한 개 주면 열 개를 받는다. 선도 악도...> 엄마가 몇 년째 바꾸지 않는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다. 엄마는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빠들과 나에게 말씀하셨다. 상대방에게 한 만큼 되돌아온다고. 그게 상대방을 위한 일이든, 피해를 주는 일이든 내가 한만큼의 딱 열 배로 돌아온다고 했다. 엄마는 그 신조를 믿으며 곧게 살고 계신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한쪽을 내어두시고, 도움을 받았다면 기억해두고 곱절로 갚아주시는 분이었다. 엄마의 말은 내가 조금이라도 약은 행동을 하려다가도 멈추게 했다.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서 읊조리는 듯 들리기 때문이다. '호영아. 알지? 한 개 주면 열 개 받는다. 선도 악도..’

엄마의 말은 나에게 순례길에서 만나는 화살표 같은 거야.

 엄마의 신조가 언제까지 참이라고 믿게 될지는 모르겠다. 살면서 몇 번쯤은 '엄마 말이 틀렸잖아.' 엄마 품에 안겨 찡찡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을 되새기며 살아보려 한다. 한 개 주면 열개를 받는다는 말, 사랑은 돌고 돌아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아주머니의 말을 믿으며. 순례길에서 계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내밀던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이 되돌아가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집착 포인트는 배낭을 보면 알 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