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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Nov 18. 2023

사랑하는 사람이랑 가고 싶은 곳, 자킨토스

물론 친구랑 가도 좋은 곳

 그리스 자킨토스에 오고 나서 자정이면 잠에 들고, 9시면 잠에서 깼다. 숙소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여유로운 재즈선율과 눈앞에 보이는 푸른 바다를 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 한잔이 생각났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와 여행하니 아침에 커피를 홀짝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뜨거운 커피나 차를 후후 불어 목구멍을 통해 뜨거움이 꿀떡 넘어갈 때면 뜨듯하게 속이 데워지면서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선이가 알아본 바로 자킨토스에서 가장 저렴한 맛집이라는 수블라키와 기로스집에 자주 갔다. 물가 비싼 아이슬란드에서 버티려면, 그리스에서 경비를 최대한 아껴야 했다. 그 식당은 저렴한 값은 물론이거니와 맛과 양이 훌륭했다. 둘이 합쳐 6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배불리 먹고 나와 해안 길을 따라 걷다가 커피숍에 들어갔다. 관광객이 드물고 현지인으로 가득한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면 사장님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들은 여길 어떻게 찾아왔지?’ 표정으로 우리를 0.2초 쳐다보고, 영업용 미소로 전환하여 자리를 안내해 주신다. 그 당황한 미소는 내가 원하는 곳에 잘 찾아왔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커피숍에서 나와 다시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놀이터에 들어갔다. 초등학생 세 명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항상 꼬마들은 “니하우”라든지, “유 프럼 차이나?” 나를 중국 사람이라 확신하고 말을 건다. 어렸을 때 눈 파란 외국인을 보면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나의 세계가 좁았듯,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세계도 넓지 않다는 걸 반증하는 거니까.

 

 자킨토스에서 일과 중 마트에서 장 보는 일은 바깥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면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양파, 돼지고기, 마늘, 주스, 감자칩, 토마토소스, 파스타면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가 너무 좋아서 자꾸 일찍 들어가게 됐다. ‘여행을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 슬로건처럼 밥 해 먹고, 쉬고, 자고,  아주 좋다. 사진 백업을 하고, 고기를 굽고, 양배추 쌈을 삶아 야무지게 먹었다. 지선이는 참 잘 먹는다. 나는 더 잘 먹는다. 나와 여행을 같이 여행자의 대부분은 밥 힘으로 여행한다.


 저녁 먹고 테라스에 앉아 다이어리를 쓰며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바람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 위에 주인집 아저씨와 아들이 바깥에서 조명을 수리하며 이야기하시는 소리가 얹어진다. 이 동네는 또래 친구들이 몇 없을 것 같은데 저 꼬마는 무엇을 하고 놀까? 널어놓은 형형색색의 빨래가 많은 저 집은 가족이 몇 명이 살까? 문득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탱탱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들이 시야를 따라 통통 튄다. 그들이 나를 본다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할까? 찬찬히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11시쯤 해변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해변까지는 3분 거리에 위치한 해변이었다. 5분도 걸리지 않은 짧은 거리였지만, 지선이에게 무섭다는 말을 족히 서른 번 정도를 한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별이 아주 많지 않았는데, 달빛이 밝았다. 우리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는데, 달이 은은한 조명을 킨 것처럼 밝아서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의 눈 코 입이 다 보일 정도였으니. 밝은 달빛에 바닷물이 피아노 연주를 하듯 찰랑찰랑 거렸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구경했다. 누워서 별을 보고 있으면, 내가 눈이 포슬포슬 내리는 스노볼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네가 아까 별 구경하러 가자고 했을 때, 사실 조금 귀찮았는데, 나오길 잘했다.”

 “그럼 내일도 나오자.”

 “그래. 아아아- 자킨토스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다시 오고 싶다.”

 “나도. 내가 먼저 와야지!”

자킨토스 섬에서 바다와 노을 그리고 별을 볼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다운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자킨토스

#그리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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