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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Jun 19. 2024

인턴 세 끼 - 칭찬만 듣고 지내던 인턴 생활이 끝나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다시 백수가 되다

인턴으로 일 한 지 한 달이 넘었을 때, 기관에서 개최하는 행사 중 가장 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다들 행사 준비로 바빴고 내 업무의 80% 역시 행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드디어 행사 당일이 되었고, 근처 지하철역 앞에서 배포할 홍보 책자와 협찬받은 상품권이 행사장에 도착했다.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상품권만 챙기고 홍보책자는 펼쳐보지도 않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내가 상품권을 홍보 책자 사이에 끼어넣자는 아이디어를 슬며시 제안했다. 그럼 상품권을 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책자를 펼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다들 행사 현장에 둘러앉아 책자 사이에 상품권을 껴넣은 채 스테이플러로 찍기 시작했다. 과장님은 다른 직원들에게 ‘우리 인턴 선생님이 낸 의견이에요.’라며 나를 추켜 세워줬고 그야말로 다들 우쭈쭈 해주는 분위기였다.


직장이란 곳은 삭막한 공간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마치 집안일과 같아서, 잘한다고 해서 칭찬을 기대하면 안 되지만 못하면 티가 나는 것이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턴으로 지냈던 기관은 달랐다. 나의 조그만 성과에도 다들 박수를 쳐줬고 실제보다 내 능력을 과대포장해 주었다. 나는 한껏 어깨가 올라간 채로 퇴근해서는 집에 와서 엄마께 미주알고주알 자랑을 늘어놓았다.




8월 졸업 예정이었던 나는 인턴 첫 달에 졸업식이 있어서 연차를 썼다. 다들 행사 준비로 바쁠 때였기 때문에 연차를 쓰겠다고 말하는 게 눈치가 보였지만 정작 팀장님은 전혀 눈치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쯤, 한창 바쁜 오후에 갑자기 사수샘이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졸업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과장님이 사수샘에게 얘기해서 부서 카드로 내 선물을 산 것이다. 사수는 바쁜 탓에 제대로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포장되지 않은 마스크 팩 세트를 건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물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따뜻한 사건들 덕분에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던 나는 이곳에서 3개월밖에 일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정직원이 되면 인턴 때와는 사정이 다를 거라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헛된 희망을 쫓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인턴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곳을 열심히 찾았다. 낮에는 인턴으로 일하고 밤에는 다른 곳에 원서를 쓰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런 패턴으로 살 것이라는 것을 짐작조차 못했다.




취업 공고를 찾아보던 중 평소 내가 꿈에 그리던 기업의 마케팅팀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어떻게 이토록 딱 맞는 시기에 공고가 올라올 수 있는지 놀라워하며 고민하지도 않고 지원했다. 며칠 후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이 잡혔다. 나는 면접을 위해 한 번 더 연차를 썼다. 일하고 있던 회사에도 솔직하게 면접을 보러 간다고 말했다. 채용형 인턴이 아닌 체험형 인턴이었기에 인턴의 구직 활동을 지원해줘야 하는 것도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굳이 말하자면 역방향 다대일이랄까? 차장 한 명이 지원자 5명을 한 번에 앉혀 놓고 면접을 진행했다. 그것보다 더 특이했던 것은 면접인데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회사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면접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계 회사라서 진행 방식이 좀 다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면접이 수월했던 만큼 합격자 발표도 빨리 공지되었고 뭔가 시원하지 않은 기분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해서 아직 인턴 기간이 끝나지 않았지만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인턴 생활을 끝내야 했다. 나는 팀장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과장님과 사수에게 차례로 얘기했다.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축하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회사 내 소문은 빠르게 돌았고 복사기 앞이나 화장실에서 다른 팀 사람을 만나면 다들 이직에 대해 묻곤 했다. 이직하는 회사가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회사였기 때문에 다들 너무 잘됐다며 축하해 줬다.



인턴으로 일하던 마지막 날,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갑자기 팀장님이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축하 케이크가 테이블 위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졸업 선물만큼 예상치 못했던지라 당황하고 감사하고 민망한 마음이 표정에 전부 드러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마지막날에 팀원들에게라도 작은 선물이라도 돌렸어야 했지만 그때는 그런 센스가 전혀 없었다.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인턴 생활이 끝나고 바로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회의실에 앉아 누구든 오기를 기다리며 나까지 3명의 신입사원이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얼마 후 면접 때 봤던 차장이 들어와서 업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면접 때 얘기했던 업무와 너무 많이 달랐다. 그러다 A4 서너 장 짜리의 시나리오라는 것을 받고는 알게 됐다. 마케팅팀 직원이 아니라 텔레마케터를 뽑는 자리였다는 것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시나리오만 보고 있는데 신입직원 중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마케팅 업무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건 텔레마케터 업무가 아닌가요?’ 그러자 차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나중에는 마케팅 업무도 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우선 텔레마케터로 일해야 해요.’ 하지만 이미 신뢰가 바닥난 차장의 대답이 타당하게 느껴질 리 만무했다. 배신감으로 뭉친 3명의 신입사원은 퇴근 후 카페에 들러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의논했다. 한 명은 이미 점심시간에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내일부터 안 나올 생각이라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업무 경력이 꽤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건 명백한 취업사기라며 역시나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 또한 집에 와서 부모님께 모든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거짓말을 한 상사 밑에서 어떻게 일하겠냐며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취업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인턴 시절 입사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새 회사에 잘 적응하고 있냐고 물으며 자기는 인턴 기간이 연장되어 6개월 더 일하게 됐다고 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는 백수도 모자라 좋아하던 직장마저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서러움이 북받쳤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며 상상회로를 돌린다. 만약 그때 이직하지 않고 인턴으로 남은 기간을 채웠으면 어떻게 됐을까? 인턴으로 남아 있었다면 계속 같은 기관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이직 한 번 없이 계속 일해서 경력에 맞는 직급을 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모르는 일이다. 안 가본 길은 언제나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상상되는 법이니까. 어찌 되었든 현실은 내가 다시 백수가 되었다는 것이고 3개월도 채 되지 않는 경력으로 일자리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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