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인턴을 비롯에 청년 채용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한창 보도되던 시기였다. 인턴으로 출근했더니 매일 커피만 타고 복사용지만 채워 넣다가 하루가 끝난다는 푸념 섞인 인터뷰도 빠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회사 측의 입장은 대부분 비슷했다. 직장 경험도 없는 인턴에게 어떻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업무를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회사의 입장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출근과 동시에 상상만 하던 직장인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 기대했는데 실상은 잡일이나 하다 퇴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인턴에게는 회사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위의 상황은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갈등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당시 정말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경력을 채울 기회를 준다는 명목 하에 급여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회사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력서에 쓸 경력 한 줄이 너무나 간절했던 20대 사회초년생들은 한참 부족한 대우를 참아가며 다니는 경우가 허다했다.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중요한 회의를 앞둔 날이었다. 우리 팀에서 주관하는 회의였는데 과장님께서 내게 회의 자료 준비를 맡기셨다. 자료 준비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지원자별로 서류를 묶어서 지원번호 순서대로 정리하고 포스트잇에 지원번호를 써서 붙이면 되는 일이었다. 10명의 지원자 서류 묶음이 총 8부가 나왔다. 개인정보가 들어 있는 서류라서 결전의 날까지 캐비닛에 보관되었다. 잠금장치까지 달려 있는 캐비닛에 철저하게 보관되는 모습을 보니 중대한 업무를 마무리한 것 같아 뿌듯했다.
회의 당일이 되자 캐비닛 안에 있던 서류가 회의실로 이동했고 필기구와 함께 나란히 놓였다. 회의에는 미리 보고된 인원만 참석할 수 있어서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내가 인턴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참석 인원 보고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회의실에 자료 세팅을 마치고 사무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있는데 과장님께서 다급하게 호출하셨다. 다급하면서도 굉장히 미안한 말투로 내게 커피 9잔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과장님이 미안한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첫 째는 인턴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커피 심부름’이라는 상징성이 주는 거부감이 당시 사회에 만연했다. 하지만 나는 카페에서 테이크아웃만 해오면 되는 심부름에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미안한 포인트는 9잔 중 내 커피는 없다는 것이었다. 과장님은 재차 다음번에 따로 꼭 사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불참한다는 사람이 와서 커피를 추가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 과장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과장님은 나중에 정말로 커피를 사줬다. 내가 지금까지도 인턴 시절을 좋게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회사 분위기 덕분이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나에게 제대로 된 업무를 주려고 노력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내게도 ‘업무 공백기’가 있었다. 출근 첫 일주일 동안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낯설고 딱딱한 용어들만 가득한 사업보고서와 연간 계획서만 들여다봤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일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영수증을 정리하는 일을 시작으로 자료 조사(이름은 거창하지만 유관기관들의 홈페이지와 전화번호를 찾아서 정리하는 일이었다.)를 하는 날이 많아졌고 가끔 영문 기사를 요약하여 번역하기도 했다.
작은 일들이 하나씩 주어지면서 나도 ‘업무 스케줄’이라는 것을 적을 필요를 느꼈다. 동시에 업무의 마감기한을 고려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도 배웠다. 점점 업무 일지와 회사용 개인 다이어리가 빼곡해졌다. 일지에 늘 ‘현황 파악’이라는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단어만 적다가 점차 ‘연사 섭외’, ‘유관 기관 연락’ 등 그럴듯한 업무가 적히는 날들이 늘었다. 수첩을 들고 회의에 들어갈 때면 소속감을 느끼곤 했다.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아니라 직장인이라는 거대한 개념에 대한 소속감을. 그렇게 서서히 직장인이라는 개념에 가까워졌다.
업무에 적응해갈수록 나의 점심식사 메뉴도 점차 달라졌다. 멋들어진 음식만 먹던 시기가 지나고 저렴한 메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수와 단둘이 점심을 먹고 오던 날, 사수에게 혹시 주변에 추천해 줄 만한 식당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사수는 주변 식당을 잘 모른다면서 자기는 주로 도시락을 싸 온다고 했다. 알고 보니 회사에는 도시락 모임이 있었다. 참여 여부는 자율이지만 장소는 늘 똑같은 공용 휴게실이었다. 사수에게 도시락 모임에 대해 들은 이후로는 점심시간이면 엄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그럼 다른 부서의 팀장님, 대리님들, 그리고 사수가 차례로 휴게실에 나타났다.
도시락 모임의 대화 주제는 다양했지만 업무 얘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대화 주제 중 도시락 반찬 레시피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고 대리님의 소개팅 얘기나 주말 나들이도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 번은 내 나이가 이야기의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30대 중반의 대리님이 20대 중반이었던 나의 나이를 부러워하며 ‘그 나이로 돌아가면 의대도 갈 수 있을 거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82학번인 팀장님이 대리님을 보며 말했다, ‘정대리도 어려. 지금도 할 수 있어.’ 그러자 식사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는 상대적인 거라고, 남의 나이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동의했다.
8년이 지나 나는 그때의 대리님과 엇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인턴뿐만 아니라 신입직원만 봐도 정말 어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 그 밑바탕에는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것에 대한 믿음, 미숙함과 불안정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20대를 알차게 보냈다는 자신감 등이 섞여 있다. 커피 심부름과 영수증 정리밖에 할 수 없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팀의 예산을 관리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나의 지난 직장 세월이 다행히도 지금의 내가 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내가 커피 심부름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 덕분에 커피 심부름과 영수증 정리를 시작으로 다른 업무로 점점 뻗어나갈 수 있었고 맡은 업무의 범위만큼 업무 능력도 발전했다. 그러니 커피 심부름을 하는 인턴들에게 커피 심부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한편,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상사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커피 심부름만 시키지는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