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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Jun 05. 2024

인턴 첫 끼 - 직장인으로서의 첫 점심식사

돌림 노래처럼 돌아오는 질문들

인턴으로서의 출근이 첫 사회생활은 아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다녔으며, 한 번에 2~3개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나씩 정리하며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학기가 끝나는 6월부터 전투적으로 구인 공고를 뒤지기 시작했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곳은 지원하자는 포부를 가졌다.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어떤 회사에 지원할 지부터 정했다. 역시나 제일 먼저 눈이 간 곳은 대기업이었다. 대기업 본사 직원이 직접 진행하는 채용설명회와 학교에서 전문가를 초청해 열어주는 취업 강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000자를 요구하는 항목에는 950~980자 사이를 적어야 한다 등의 자기소개서 규칙을 필기해 가며 열심히 들었다.




그러다 어느 대기업의 채용설명회를 들으러 간 날이었다. 계열사 중 식품 회사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공짜로 간식을 나눠주기도 하는데 마침 간식 봉투가 준비되어 있는 기분 좋은 설명회였다. 하지만 간식 봉투의 즐거움도 잠깐뿐이었고, 매끄럽지 못한 발표자의 설명이 조금씩 지루해졌다. 발표자는 ppt 화면을 읽는 것조차 더듬거리더니 어느새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하던 중 질문 하나가 귀에 꽂혔다. “영업관리는 몇 명이나 뽑나요?” 채용설명회에 적지 않게 참석해 봤지만 채용인원을 알려주는 설명회는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명인지 구체적으로 답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너도나도 손을 들어 지원하고자 하는 부문의 채용 인원을 물어봤다. 발표자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구체적인 숫자를 얘기했다. 숫자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많이 뽑는다는 인원이 기껏해야 5명이었다. 대기업의 채용 문턱은 생각보다 더 높았다.




대기업의 높은 문턱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입사 원서를 쓸 때마다 직장 경력 부분을 빈칸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르바이트와 직장은 엄연히 달라서 아르바이트 경력을 직장 경력으로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줄이라도 채워볼 심산으로 인턴으로 눈을 돌렸고 운명처럼 공공기관의 인턴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이 정도면 원서에 그럴듯하게 쓸만한 곳이라 생각하며 지원했고, 운 좋게도 어느 공공부처 산하의 공공기관 인턴 채용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면접은 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면접 정장이라고는 언니에게 물려받은 긴팔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 셋업이 전부였다. 결국 원래 가지고 있던 단정한 반팔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를 입었다. 면접은 여러 명의 면접관과 한 명의 면접자로 구성된 일대다 형태였다. 면접관은 기관의 주요 사업과 업무에 대해 물었다. 예상한 질문이었고 무난하게 답변했다. 그다음에는 내 생각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예상치 못했던 질문들이어서 당황했지만 꾸역꾸역 답을 끄집어냈다.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만 해도 합격 여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인턴으로 최종합격한 것이다. 일정 기간 동안 인턴으로 근무하면 심사를 거쳐 정직원으로 전환해 주는 ‘채용형 인턴’이 아닌, 고지된 기간만큼만 일하는 ‘체험형 인턴’이었다. 엄마께서는 짧은 기간 동안 일하는 것을 아쉬워하셨지만 나는 입사 원서 경력 사항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회사였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내려 본 적 없는 지하철역이었다. 첫 출근 전날 밤, 자기 전에 몇 번씩 알람을 확인했음에도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며 잠을 설쳤다.




출근 첫날, 바짝 긴장한 상태로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배정받고 교육 일정을 안내받다 보니 오전이 다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도 다른 직원들처럼 지갑과 휴대전화만 들고 뒤를 따랐다. 건물 밖을 나서자 나와 똑같은 차림의 직장인 수백 명이 여러 건물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내가 그중에 하나가 되다니. 즐거워서인지 어색해서인지 괜히 웃음이 나는 것을 입술을 앙 다물며 삼켰다.


첫날의 메뉴는 파스타였다. 드라마에도 출연한 적이 있는 배우가 하는 파스타 가게였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주상복합 건물에 있었는데,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직원들이 자주 오는 곳은 아니었다. 파스타는 평균 점심값을 웃도는 사치스러운 식사라서 매일 지출해야 하는 점심식사로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식사를 할 때만 오는 곳이었다. 가령 회사에 새로 들어온 인턴의 첫 점심식사같이.


그날 점심의 주인공은 나였다. 식사 초반에만 해도 내게 질문이 쏟아졌지만 음식이 나오면서 점차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선배 직원들은 음식 얘기, 사적인 얘기, 업무 얘기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나는 얘기에 어느 정도로 반응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음식을 먹어야 할지 눈치를 살피느라 음식 맛을 느끼지도 못했다. 크림 파스타를 주문했던 것은 기억난다. 맛집이라고 하니 맛있었을 거다. 하지만 맛으로 먹는 식사는 아니었다.





출근 첫 주는 여러 팀의 사람들과 돌아가면서 점심을 먹었다. 팀장님이 좋아하신다는 백반집도 갔고 유명하다는 일식 덮밥 가게도 갔다. 점심식사 메이트는 매일 달라졌지만 질문은 늘 똑같았다. “전공이 뭐예요?”, “우리 기관을 알고 있었어요?”, “이 일에 원래 관심이 있었어요?”. “어디 살아요?” 등 면접과 신상조사를 넘나드는 질문들. 한 번은 다른 팀의 조금 젊은 선생님과 식사를 하러 갔는데 앞서 말한 질문을 똑같이 던지고는, “이 질문 일주일 내내 들었죠?”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인턴이나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일주일 동안 팀원들끼리 돌아가며 환영식사를 담당한다. 팀장님 바로 다음 순서일 때도 있지만 어쩔 때는 뒤쪽에 가까운 순서가 되기도 한다. 나의 인턴 첫 주 동안 들었던 돌림 질문을 똑같이 하는 나를 의식할 때면, ‘이 질문 한 3번은 들었죠?’라며 나 역시 머쓱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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