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루키가 되기 위한 첫걸음
서둘러 인턴을 끝낸 결과는 백수였다. 그래도 이제 직장 경력이 한 줄 생겼으니 전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취업 시장에는 만반의 준비를 끝낸 슈퍼루키가 있었다. 취업 설명회를 들으러 갔을 때 ‘슈퍼루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 취준생이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이 바로 슈퍼루키다. 슈퍼루키란 1~2년 정도의 직장 경력이 있는 중고 신인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슈퍼루키가 신입 공채에 지원해서 진짜 신인의 자리를 차지한다.
운 좋게 서류에 합격해서 면접을 보러 가면 슈퍼루키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면접관은 흐뭇하게 슈퍼루키의 경력을 훑으며 ‘이런 일 해보셨으면 이런 경험도 있겠네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슈퍼루키는 자신 있게 자신의 능력을 어필했다. 그에 비해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인턴이 경력의 전부인 나는 상대적으로 적은 질문을 받았고 내가 면접관의 관심 밖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취업 사기 같은 공고에 속아 섣부르게 인턴을 그만둔 것을 후회했다.
수많은 슈퍼루키들 속에서 자신감은 물론이고 자존감마저 떨어지던 그때 나는 생각을 바꿨다. 슈퍼루키에게 계속 밀리고 있다면 나도 슈퍼루키가 되자! 기업 간판을 따져가며 정규직 공채만 찾아보던 나는 눈을 돌려 직무 위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운 직무 기준은 영어를 사용하는 행정 업무였고 마침 그에 딱 맞는 취업 공고를 찾아냈다. 대학 부설 어학당의 계약직 행정직원 자리였다. 취업 준비에 갓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계약직은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간절했다.
다시 취준생이 된 지 2달 반이 다 되어가던 시기였다. 이보다 더 긴 시간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격이 급한 내게는 2달 반 마저도 참 긴 시간이었다. 날이 갈수록 쌓이는 불안감에 신경이 예민해지자 사소한 일에 짜증이 늘었다. 이런 상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엄마와의 관계조차 점점 냉랭해졌다. 짜증이 우울로 바뀌기 직전, 지원했던 어학당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면접을 보자는 전화였다.
면접을 보러 가던 날은 새해가 코앞이었다. 이번 면접에서 떨어지면 해를 넘겨서도 백수였다. 간절한 만큼 면접을 잘 봐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지만 실제로는 면접을 망쳐버렸다. 오랫동안 영어를 쓰지 않은 탓에 영어 면접에서 너무 더듬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신감이 만든 불안이었나 보다. 얼마 후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다. 새 회사로의 첫 출근일은 새해 첫날이었다. 새해까지 취준생의 신분을 이어가지 않으려는 목표를 이룬 것이다.
어학당의 행정실은 두 개의 사무실을 이어 붙인 크기였고 내 자리는 출입구에 가까운 자리였다. 어학당 특성상 수강생들을 응대하는 것 또한 업무였기 때문에 부원장님의 자리를 제외한 모든 자리가 출입문을 마주 보고 있었다. 행정실 직원 수가 겨우 12명밖에 안 되는 작은 사무실이지만 나는 운 좋게도 동기가 있었다. 나보다 3살 많은 언니였는데 해외 명문대 졸업 후 사기업에서 일하다가 이직한 곳이 여기였다. 성격이 부드럽고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라서 친하게 지냈는데 이제는 각자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데도 여전히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다.
어학당이라면 대부분 비슷할 텐데 내가 일했던 곳 역시 언어권 별로 담당자가 있었다. 중어권, 일어권, 영어권으로 나뉘었는데 중국어와 일어를 쓰지 않는 나라 전부를 영어권으로 묶어서 관리했다. 그렇다 보니 영어권만 담당자가 두 명이었다. 그 덕분에 내게는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동기 언니는 첫날부터 나의 점심 메이트가 되었다. 부원장님의 일방적인 수다로 채워졌던 첫 점심식사 이후로는 동기 언니를 비롯해 다른 언어권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었다.
동료 선생님들과 찾은 곳은 캠퍼스 내 학생 식당이었다. 대학 부설 기관은 대부분 대학 캠퍼스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부설 기관 직원들도 도서관이나 피트니스 센터 같은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저렴한 학생 식당도 포함이다. 한 끼에 6천 원도 하지 않는 가격에 다양한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가 넘쳤다. 백반은 물론이고 김밥, 돈가스, 만두 등을 번갈아 가며 먹었다. 특히 내가 입사했던 시기가 방학 중이었던 덕분에 식당은 늘 여유로웠다.
학생 식당에서 가장 좋아했던 메뉴는 이탈리안 음식이었다. 치즈 그라탱, 파스타, 피자까지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가격이 대부분 만원을 넘기지 않았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학생식당에서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이었다. 파스타 옆에 수프와 피클까지 곁들인 덕분에 구색까지 완벽했다. 분명 밖에서 사 먹는 파스타보다 저렴한데도 학생 식당의 다른 메뉴보다는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작은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때 주문하곤 했다.
다른 언어권 선생님들과의 식사를 통해 어학당 행정실 직원 중 정규직은 차장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머지는 전부 계약직이고 오래 일한 두 분만 무기계약직이라는 것이다. 무기계약직은 똑같은 계약직이지만 계약에 기한이 없기 때문에 계약직보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 나를 포함해 점심 메이트들은 모두 계약직이었다. 다들 이곳에서의 경력을 발판 삼아 다른 일을 할 계획이었다. 퇴근 후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는 선생님도 있었고, 꾸준히 이직을 준비하거나 해외 취업을 고려 중인 선생님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경력을 쌓는 데 집중한 나머지 취업의 방향을 정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영어 쓰는 사무직이면 되는 걸까?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로 영어를 쓰는 업무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고찰이 더욱 필요했지만 당시 나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계약직이지만 그래도 1인분은 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급할 게 없었다. 그래서 미래의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