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걸음마를 떼듯이 보드를 타고 사람을 만나고.
정곡을 찔린, 그렇지만 설레는 이메일을 받고서 무료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웬만한 관광지는 다닐 만큼 다녔는데도 분명 새로울 곳이 있었지만 3개월의 늪에서 오만했던 난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네타방의 친구들도 타지에서의 생활에서 더 이상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하고 무기력해졌다. 우리는 만나서 밥을 해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이미 갔던 곳을 가는 패턴을 반복했다. 우리의 생활 패턴에 새로운 것이 필요했고, '마'가 제안했다.
"우리 스케이트보드를 타보자."
바르셀로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특히 MACBA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앞을 보면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젊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보도블록과 부딪히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고 조금이라도 넓은 광장에서는 반복해서 묘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관람자에서 행위자로 변신하기 위해 Decathlon이라는 스포츠용품점으로 갔다. 그곳은 마치 스포츠용품 궁전 같아서 한층 한층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스포츠의 장이 펼쳐졌다. '사'와 나는 그곳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하나씩 샀다. 우리는 기숙사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우리의 추진력을 몸소 보여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와 '하'도 샀고, 나중에는 '자'까지 보드에 매료되었다.
시우타데야 공원에서 만난 A군은 내가 친구 신청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나를 찾아냈다는 것이 놀라워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요청을 수락했다. 내킬 때만 수업을 가는 나와는 달리 A군은 성실한 학생이었다. 내가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면서 할 일이라고는 빨래 돌리는 일 밖에 없다고 했을 때는 못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진짜였다.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는 동안은 하루 동안 할 일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즉흥적으로 할 일을 정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우리는 주로 기숙사 앞 도로에서 보드를 탔다. 보드를 산 지 열흘이 지났을 때쯤에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바람을 맞으며 내리막길을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해가 떠있는 낮보다는 해 질 녘을 선호했는데 낮동안 게으르게 뒹굴었던 것을 반성하듯 보드를 끌고 나갔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보드를 탈 동안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가지 않아서 보드를 타러 가기 전과 타고나서 방으로 돌아와 메시지를 보냈다. A군은 내가 보드를 탄다는 사실에 놀랐고, 나는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A군에게 보드 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Boarddler(보들러)'라고 불렀다. 보들러는 Board와 Toddler 의 합성어인데 보드 위에 발을 올리는 것부터 배우는 모습을 보고 만들어냈다. 어디에서 뽐낼만한 실력이 아니기에 우리는 기숙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와 '자'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둘은 크루저 보드를 샀는데 속도가 훨씬 빨라서 가까운 마트를 갈 때 종종 이용하더니 그 덕에 보들러 단계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나와 나머지 친구들은 아직 보들러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만 한 발 앞선 친구들에게 얹혀 바르셀로네타로 원정을 떠났다.
바르셀로네타에는 보드를 탈 곳이 많다. 람블라의 끝에서 해변까지 가는 길은 폭이 넓어서 보드를 타는 데 불편하지 않고 해변에 도착해서도 넓은 공터가 곳곳에 있어 방해를 받지 않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람블라에서 버스를 타고 해변으로 갔다. 넓은 광장을 만나자 보드를 바닥에 깔고 발을 올렸다. 능숙하게 먼 곳을 응시하며 보드를 타는 사람들 틈에서 내 모습은 영락없는 보들러였다.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고 크루저 보드를 타고 유유히 내 주의를 도는 '하'와 '자'가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묘기라는 것을 부릴 줄 알았다. 크루저 보드는 묘기를 부릴 수가 없지만 일반 보드는 가능하다. 묘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하지만 뒤집어진 보드를 발로 툭 쳐서 뒤집는 동시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보들러 사이에서 내 묘기는 박수를 받았고 '하'와 '자'도 박수를 쳐줬다.
얼마 타지도 못했는데 늦게 도착한 탓인지 금방 해가 졌다. 노을이 진다고 쉽게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바쁠 일도 부지런할 필요도 없어서 가는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았고 오는 시간을 계획하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큰 물에 나와 무리를 한 탓인지 종아리가 슬슬 아파왔다. '사'와 나는 공원 가장자리 턱에 앉아서 다른 애들이 타는 것을 지켜봤다. 시선을 좀 더 넓히니 다른 사람들도 보였다. 가족보단 친구가, 친구보단 연인이 많았다. '사'는 무섭게 내 생각을 읽어냈다.
"계속 연락하고 있어?"
"응, 하지."
바르셀로나에서 지냈던 시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길게는 태어날 때부터, 적어도 몇 년간 나를 알아온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결정을 혼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부담이었고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피하는 것으로 답을 내기에는 비겁하고 재미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는 나를 아는 새로운 지원군들이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