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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가오니 Oct 13. 2021

#7.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기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본 실존을 지지하는 것

[source=my game play]

보기만 해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능선 아래 인적이 느껴지는 시설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샘. 타인과 벽을 쌓고 단절된 관계 속에서 고독이 일상인 한 남자입니다.

[source=my game play,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그가 무거운 짐을 지고 이곳까지 걸어온 길은 인적이 없고 오로지 그만 존재하는 외로운 세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찾아봐도 그저 자기 목소리만 공허하게 메아리쳐 돌아올 뿐입니다.



앞서 나온 장면들은 오늘 이야기할  <데스 스트랜딩>의 주된 게임 체험을 요약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놀랍게도 불편함을 강요합니다. 게임을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플레이어를 괴롭힙니다.  


소리쳐봐도 늘 혼자이다.

날씨 영향으로 체력은 가만있어도 떨어진다.

짐을 지고 이동하기 때문에 늘 중심을 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나열해보니 새삼 고독함과 고생을 체험하는 시뮬레이터 같습니다. 세계적인 스타 개발자의 독립 후 4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첫 게임이었고 철저하게 게임의 내용이 베일에 쌓여있었던 만큼 기대가 컸던 게이머들은 첫 체험에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게 게임이냐'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서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와 비평가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던 게임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 함께할 게임은 바로 이 <데스 스트랜딩>이라는 게임입니다.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잠시 몇 년 전 제 인생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그때를 회상해봅니다.



오로지 걷고 또 걷다 지쳐 도착한 그곳에 있던 것

몇 년 전,  생애 처음으로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잠을 잘 수 없으니까 극도로 예민해지고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업무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마음은 황폐했고, 자연스레 주변을 볼 여유 없이 완전히 마음을 닫고 주변 사람들과 일체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휴가를 쓰고 병원을 이곳저곳 전전하다 어느 의사 선생님의  '걷고 또 걸으세요. 그리고 햇볕을 많이 쐬시면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라는 처방에 무언가에 홀린 듯 숙소도 정하지 않고 늦가을 추워지기 전의 북해도로 날아갔습니다.

[source = 그때의 북해도를 담은 사진]

정신을 차려보니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북해도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서 평야를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source = 그때의 북해도를 담은 사진]

걷고 또 걷다 보니 구릉이 나왔습니다. 인적이 드문 비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source = 그때의 북해도를 담은 사진]

때로는 능선을 따라 걷기도 했고.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그렇게 반나절을 정해진 곳 없이 걸었습니다.

[source = 그때의 북해도를 담은 사진]

어둠이 깔릴 즈음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힘은 빠지고 발바닥에서는 불이 났습니다. 마치 신발 밑창과 발바닥이 한 몸이 된 것 같이 지면에 한 발짝 닿을 때마다 울퉁불퉁한 지면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며 터벅터벅 걷다가 어느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하고 섰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공중전화박스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이 길가에 공중전화는 누가 쓸까? 이 공중전화는 여기서 얼마나 사람을 기다린 걸까'


사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꼭 찾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필요에 의해 생긴 것, 어떠한 이유던지 만들어졌기에 존재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필요로 할 때가 있는 것 여러 가지 상황들이 존재하겠지요. 정리하기 어려운 몇 가지 생각들이 마음을 거쳐 흘러갔습니다.

[source = 그때의 북해도를 담은 사진]

공중전화 건너편으로 창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 있었습니다.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처연함. 상념에 빠져있는 것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과 함께 계속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source = 그때의 북해도를 담은 사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도 '살아져야 하는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지난하게 불면증을 겪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이유는 '잠이 오지 않아 힘들고 괴로운데 나는 이 순간을 계속 느끼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정답이 없는 물음을 자문하고 또 반복하는 과정과 그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잠이 안 오는 순간들이 계속되는 살아지고 있는 순간들이었는데 말이죠.


이 날 인적이 없는 곳을 걷고 걷다가 그 끝에서 만난 이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살아져야 하는 현재의 실재하는 순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북해도의 밤은 지났고 서울로 돌아온 후 불면의 밤은 오지 않았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은 표면(목적) 보다 존재(실재)가 앞선다.

불면증을 이겨낸 무작정 걷기와 그 과정에서 만난 의외의 만남과 뇌 속의 화학적 작용은  <데스 스트랜딩>의 게임 경험과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요. 지독하게 불친절하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하게 되는 게임 <데스 스트랜딩>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봅니다.


어느 날 저는 게임 속에서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 어느 설산을 사람을 지고서 힘겹게 균형을 맞추며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source= my game play. '걷는다 오늘도 설산을. 사람을 지고서'

'내가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걸 즐기다니 나는 이 게임 세계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했습니다.

[source= my game play. '눈보라로 앞이 보이지 않아도 걷는다'

더더군다나 악천후 속에서 무거운 짐을 걷고 움직이다 보면 금세 지치는 게임 속 주인공처럼 이런 식으로 플레이를 하다 보면 현실 속의 저까지 지치기 마련입니다.


왜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 샘은 이렇게 지독하게 불친절한 방식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짐을 날라다 주고 있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이면에 깔려있는 암울한 세계관과 설정을 적어봅니다.


스치기만 해도 금속은 부식하고 피부는 노화되어 생명체와 기계를 괴멸에 이르게 만드는 초자연적 현상인 '타임폴'(눈과 비)은 예고 없이 갑작스레 내립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 BT가 인간을 잡아먹고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극도로 외출을 꺼리게 되었고, 마음을 닫고 서로 왕래가 끊어졌습니다. 만남도 결혼도 교류도 하지 않고 타인과 담을 쌓은 채 스스로 고립되어 인간 개체의 멸망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인공 '샘'은 과거 특정한 어느 사고를 겪고 나서 타인과의 교류를 끊고 극도로 접촉을 꺼리는 고립된 자이면서 BT에게 잡아먹혀도 살아남을 수 있는 형질을 지닌 특수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가 고립된 인간들 사이를 잇기 위해 위험천만한 조건 속에서 짐을 배송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것입니다.  

배송이 끝날 때마다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교류를 꺼리는 인간들은 홀로그램의 모습으로 샘에게 얘기를 건넵니다.


이 과정의 반복이 게임을 이루는 주요 플레이 시퀀스입니다.


배송 의뢰를 받고 짐을 싼다

짐을 옮기기 위해 집중해서 걷고 이동한다.

도착한 곳에서 짐을 내려놓는다.

다시 또 배송 의뢰를 받는다.


반복되는 매 순간이 이렇습니다. 그 속에서 운반 외의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굳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는 목적을 생각해낼 수 있지만 짐을 운반하는 과정 외에 특별한 재미요소라고 할만한 특징이 없습니다.


또한, 이 과정은 또한 고난의 연속이기도 하죠.


타임폴이라 불리는 초자연적 현상의 눈과 비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

타임폴에 닿으면 시간이 빠르게 경과해 배송 물건이 부식되고 몸은 노화된다.

BT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는 잘못 걸리면 저 세상으로 데려간다.

배송물품 도둑과 인류 멸망을 꿈꾸는 테러리스트로부터 몸과 배송물품을 보호해야 한다.


이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로지 '걷기 또는 앞으로 나아가기' 뿐입니다. 

짚라인을 설치해도, 차량을 구해도 산악 험지를 반드시 거쳐 지나가야 하는 특성상 사실상 걷기밖에 의존할 수 있는 행동이 없습니다.

[source=my game play, 때로는 주렁주렁 달린 짐을 힘겹게 끌고 가고]
[source = my game play, 그리고, 한 발짝 한 발짝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는다.]
[source=my game play, 사다리를 헛디디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처음부터..]
[source=my game play, 아름다운 자연 풍광도 장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게임의 재미는 물론 감동을 받을만한 여지도 희망이 끼어들 틈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게임은 계속해서 물건을 나르는데 집중하고 몰입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 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고, 세상은 쓸쓸한 잿빛임에도 깊은 감동을 느끼고 몰입하게되는 이유는 걷고 걸어가다 물품을 전달하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실재하는 인간과의 감정교류의 요동을 한번 맛보면 쉽게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source=my game play, 결국에는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저는이 과정에서 느낀 감정의 파도를 북해도의 풍광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그 마지막 즈음에 만난 강렬한 인간성과의 조우에 빗대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 게임은 제게 명목적인 '인간'의 본질보다는 실재하는 '인간'의 본질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실재적 본질을 말이죠. 기대하지 않았던 삶의 어떤 지점에서 나와 다른 사람이 만나게 되고 감정이 소요되며 전이되기도 하며, 비로소 타인을 통해 내가 한 인간으로 실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걸어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공중전화기 같은 '그것'


한편, <데스 스트랜딩>에서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하는 타임폴이라는 비는 초자연적 저주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거스를 수 없이 흐르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폴을 피해 잠시나마 따사로운 풍광의 자연 속에서 장비를 충전하고 다시 걷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타임폴과 다양한 인간들의 드라마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은 이 게임이 추구하는 '연결'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결국 주인공 샘 (더 나아가 저의 경우에도)이 고립된 자신을 깨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게임 과정 속, 북해도의 심야에 맞이했던 '언제인지 모르지만 (혹시나 사용할 필요가 있을지 모를)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심야 길거리의 공중 전화기'와 같은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게임 속에서 맞이하는 이런'공중 전화기'들은 저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감정을 야기시켰습니다. 바로 인간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을 증명하는 감정 '이타심'입니다. 이것은 언제 연결될지 모르는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야기일지 게임 속으로 들어가서 찾아봅시다.

[source=my game play, 때로는 이름 모를 남이 만든 밧줄의 도움을 받는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겨둔 밧줄을 이용해 길을 돌아가지 않고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source=my game play, 누군가 먼저 플레이한 사람이 설치해둔 앵커]

또한, 다른 플레이어가 남겨둔 앵커를 통해 험난한 산턱을 쉽게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쳐 쓰러질 때쯤 이름 모를 누군가 남겨둔 차를 타고 이동하고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리고, 산턱을 내려와 지쳐 쓰러질 때쯤 누군가 남겨두고 간 차량을 이용해 목적지까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을 <데스 스트랜딩>의 디렉터 '코지마 히데오'씨는 소셜 스트랜드 (연결)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이 게임을 즐긴 다른 시간대의 이름 모를 플레이어가 남겨둔 흔적들을 내가 접속하는 시간대의 게임 속에서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고, 나 또한 다른 플레이어를 위해 도움이 될만한 것을 남겨둘 수 있기도 합니다.


게임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정 속 '공중 전화기'들은 고독하게만 느껴지는 황폐한 세계에서 오로지 미지의 앞을 향해 '걷기'만 해야 하는 내가 발견하게 되는 인간성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게 독려함으로서  연결을 완성해나갑니다.


나와 그들이 서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말이죠. 새삼 내가 살아지고 있는 이 순간들은 이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감사함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어디선가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
[source= 북해도에서 남겨둔 사진]

북해도 여행을 하는 동안 풍경 속에서 삶의 생동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은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때로는 삶의 구실을 찾을 때도 있습니다만, 사실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져야 하는' 삶 속에 뚜렷한 이유를 늘 가지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이 비가역적인 시간을 지나면서 이 긴 여정을 어딘가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젠가 연결될 수 있고 또한 내가 도움을 받거나 줄 수도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실재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데스 스트랜딩>은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앞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이었지만 살아가는 목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느끼게 해 주었고 많은 위안을 주었습니다.


...........................



어느 날, 늦은 퇴근길 산속에 위치한 저희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버스가 끊겨서 추운 한 겨울밤 막힌 도로를 뚫고 올라가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미리 만들어둔 막힌 도로의 뒷길이 없었다면 제가 집에 올 수 있었을까요.


다시금 삶이란 여정은 나만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의 헌신과 보이지 않는 노력들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드는 새벽이었습니다.

 어두운 밤 막힌 도로 뒷길, 내가 걸어가던 그 길에 나의 발자국을 따라올 다음의 그 누군가는 조금은 더 안심하고 올라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2021년 10월.

1년 반 전에 저장해둔 글을 드디어 발행하다.


세가오니

Fin.


추신 :

1년 이상 서랍 속에 묵혀두고 있던 이 <데스 스트랜딩>에 대해 저장해둔 글을 퇴고하고 비로소 발행하게 된 계기는 이 게임을 하면서 느낀 '연결'의 끝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2021년 9월 30일, 3시 3분 지병으로 작고하신 아버지께 바칩니다. 분명 언제나처럼 제 글을 읽어주시고 웃어주실 것 같습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

[Rest in peace. Dad]


[이전 글 #6.'나'는 존재한다, 고로 플레이한다]
[이전 글 #5. 모험하게 하는 힘 (후편)]
[이전 글 #4. 모험하게 하는 힘 (전편)]
[이전 글 #3. 못 넘을 것 같은 벽 넘기]
[이전 글 #2. 누구나 가진 '다시 시작하는 힘']
[이전 글 #1. 너무나 어려운 길,'인간성의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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