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둥새 Mar 23. 2023

깊이 생각 할 시간

출근길, 지하철역까지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집 앞 편의점이 확장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사장님은 그대로일까, 확장 공사를 할 만큼 돈을 많이 버셨나, 이제는 좀 상품이 다양해졌을까.

편의점을 지나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 사이 좁은 골목 한켠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주 보는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왜 맨날 여기서 이러고 있나, 이 녀석은 시장 장사가 시작되면 어디 숨어있을까, 이 시장에서 쥐는 본 적이 없는데 뭘 먹고사는 거지, 얘가 다 잡아먹었나.

시장 끝에서 신발 가게 사장님이 열심히 길을 쓸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든 생각이지만 시장에서 신발 장사는 잘되는지 궁금했다. 시장에서 신발은 잘 안 사지 않나. 메이커 신발과 품질 차이가 크려나.

시장을 벗어날 즈음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멜로망스의 노래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노래방에서 부르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멜로망스의 김민석은 목소리가 엄청 좋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잘 생기지 않았나.

노래를 따라 살짝 흥얼거리다가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생각나 고민에 빠졌다. 이번 주 중으로 끝내지 않으면 다음주가 피곤할 것 같은데. 이건에 대해 주간보고를 썼었나. 오늘 회의는 몇 시였지.

어느새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역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들어갈 즈음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글을 못쓰네.


내 머릿속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난잡하다. 사실 이것도 일부일 뿐이다. 15분 남짓한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 것일까. 마음이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일부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이 그렇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요즘 글을 못 쓰는 이유일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내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요 근래의 나는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고 있지 않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지만, 온갖 잡동사니가 둥둥 떠다니는 내 머릿속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편하다. 편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운동을 안 하면 편하고, 그 편함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기 힘든 것과 같다. 이를 극복하고 운동을 시작해야 근육이 붙으며 습관이 되고 더 이상 어려워지지 않는다.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시간을 가지려 노력해야 근육이 붙고 습관이 된다.


편함을 버리고 습관까지 만들어가며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깊이 생각해야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시장길 골목에서 마주친 고양이는 그저 내 수많은 잡념 속에 스쳐 지나간 고양이지만, 과연 그러할까.


사람만 보면 도망가던 고양이는 언젠가부터 나를 봐도 도망가지 않는다. 나를 빤히 쳐다보거나, 하품을 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그저 지나칠 뿐인, 풍경과도 같은 것이라고 인지한 모양이다. 나의 출근길은 고양이에게 익숙한 새벽 시장의 풍경이 되었고, 시장 골목의 고양이는 나에게 익숙한 출근길의 풍경이 되었다. 이렇게 의미가 생기며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되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오랜 시간 생각을 방치해 왔고 솔직히 편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뒤돌아보면 기억나는 것은 회사와 집의 반복뿐이다. 내 인생에 의미 있는 것이 회사와 집만 있지는 않을 텐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의미가 생겨야 관심을 갖고, 탐구를 하고, 글을 쓰고, 목표를 갖고, 인생 자체의 의미도 찾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의미 없이 보낸 시간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노력을 좀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의 책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