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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의 끝으로 갈수록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한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을 가려 고민할 때 '중대'와 '홍대'를 가려 생각하고 안성에 있는 '중대'에 부모님과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중대'는 대학에 가기 전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간 '중대'에서 무엇을 얻을까 싶지만 내가 대학을 가고자 하는 의지의 촛불에 불을 키우는 것 같은 역할을 해줬던 중대의 방문은 그때는 엄청 먼 곳에 있는 곳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와보니 '경기도 외곽인 안성'에 위치한 거였다.
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경기도가 넓게 느껴지기도 하고 안성이 경기도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깝게도 느껴진다. '남부터미널'에서 '죽산터미널행' 버스를 타고 백암을 지나 한 시간여 만에 내려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나로마트에서 떡을 사서 아침으로 먹고, '죽산천' 따라 '아기똥풀' '개똥쑥'의 사열을 받으며 이제 조금씩 부지런해지는 시골 논밭길을 걷는다.
작은 인공습지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걷는데 봄이 와 있음을 바닥부터 느낀다.
길을 걷다 나타난 '죽산 성지' 이곳은 22명의 가톨릭 신자가 순교한 곳이란다.
초입화장실 옆에 있는 곳에서 경기옛길 스탬프를 찍고 '철쭉'과 '영산홍'으로 그득한 성지의 마당을 걷는다. 이곳 이름은 '이진'이라 했는데 오랑캐들이 침략했을 때 진을 치던 곳이어서 그렇게 불리기도 했고 이곳에서 사람들이 종교의 이유로 사형당하자 그곳에 가면 그 사람은 잊으라고 해서 '이진터'라 불리었다고 하기도 한단다.
과거에는 무서운 역사의 현장이 현재는 꽃과 나무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다.
물론 그 그 정원의 중심에 순교하신 분들의 무덤과 사연들이 늘어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 처연한 감정으로 만들어 간다.
소박하지만 엄숙한 대성당에 들렸다 정원 넘어 사제관을 지나 '수원교구 영성관'을 통해 나간다.
나가자마자 '안성 흔들바위' 간판이 있고 산길로 250미터 거리에 있다 하여 올라가 '흔들바위'를 만난다.
조용한 곳에 위치한 신의 잃어버린 공깃돌 같은 그 바위는 누군가 잘못 움직여서인지 내 느낌인지 흔들거리는 느낌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봄은 꽃가루의 계절이다.
날리는 꽃가루를 마주치며 길을 걷는다. 버들강아지가 터지며 생기는 솜털 같은 꽃가루도 민들레의 홀씨가 모여 눈처럼 하얀 느낌의 꽃가루도 봄이 되어 생기는 식물들의 현상이다.
알레르기 있는 분들이 제일 싫어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부지런한 시골 어르신들이 논을 정리하고 물을 채우고 하시는 걸 보며 언덕 넘어 길을 걷는다.
동네 초입에서 커다란 바위를 발견한다.
동네에서 신성하게 여기었다는 '갓바위'가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손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는 며느리의 불평에 갓바위의 갓을 숨기면 손님이 줄 거라는 이야기에 갓을 숨겼더니 집에 손님이 끊겨서 집이 망하고 며느리 손이 마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단다.
송산리 마을에 들어서니 '느티나무'가 시원해 보인다.
느티나무 옆으로 잣나무와 소나무와 향나무가 다 같은 소나무인척 하고 늘어서 있다.
'느티나무' 밑으로 동네분들이 만드신 쉼터에 앉아 있자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분다.
식사를 하고 스케치를 한다.
그곳에 있어 보면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아늑함을 그린다
조금 올라가자 '현풍곽씨 효자비'가 나타난다.
담장과 지붕은 새마을운동 일어난 70년대쯤 만든 듯 보이나 비석은 조선시대 것으로 보인다.
현풍곽씨가 어머니를 엎고 산을 오르다 도적을 만나 칼에 여러 차례 찔리고도 어머니를 내려놓지 않아 널리 이야기가 퍼지게 되었단다.
살짝 도로길도 다시 시골 논밭길도 지나치다 도로를 넓히는 길에서 꺾으니 소를 기르는 축사가 나온다.
요즘 소들은 조금 편해 보이지만 그래도 착해 보이는 눈을 마주하면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착한 눈들을 가졌다.
한참 헤매다 드디어 도착한 영남길 9코스의 종점, 3-9 버스를 타고 금산리에서 일죽터미널로 그리고 죽산 터미널로 이동해 '장터 순댓국'으로 허기진 장을 채우고 하루짜리 전원생활을 지낸 시간을 남겨두고 '남부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2023, 0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