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4살, 나는 금단의 분홍신을 신었다.

by 이정은

처음 소설을 쓰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끼던 노트를 꺼내 첫 장을 넘기고, 제목을 정한 후에 첫 문장을 써내려 가는 나는 거침이 없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1학년. 14살이었다.


어릴 적 엄마가 읽어주셨을 동화책으로 시작해서 적어도 10년 이상 책을 읽었다고 가정했을 때, 10년치의 인풋이 아웃풋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소설은 132페이지에 걸쳐 완결 되었다.


마침표를 찍던 날, 나는 정체성을 깨달았다.


‘나는 창조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세상에 이런 종류의 희열이 존재하는 구나.’


무엇이든 잘 버리는 나는 그 노트만은 버리지 않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



세월이 흘러, 어느덧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완결지었지만 그때만큼 순수하게 기쁘지는 않다.

여러 사회적 관계와 작품의 성적, 앞으로 다가올 불안한 미래와 책임져야 하는 작은 생명이 내가 마냥 아이처럼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끊임없이 자문한다.


내가 굳이 작가라는 불안정한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첫 경험에서 비롯된 잘못된 각성 때문은 아닐까.


사실 나는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하는 기질을 타고났다. 더불어 통제하려는 성향 또한 있어 작가라는 직업과는 상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순간에도 글을 쓰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글쓰기가 불안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용도의 현실 도피차원은 아니다.


캐릭터의 입을 통해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기도 하고, 마음속 깊숙이 감춰왔던 비밀이나 상처를 은밀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을 토하듯 풀어내기도 하고, 혹은 평소 이루고 싶었던 소망을 대리 체험 하기도 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치유라는 보상을 주는 분홍신이다.


14살에 신을 신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벗으려고 해도 벗겨지지 않고, 어쩌면 영원히 벗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구속이다.



*



최근 나는 불안을 친구삼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작가의 감수성은 조금 더 예민해서 때로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 덕에 글 쓰는 일을 직업 삼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안은 나에게 글을 쓸 연료가 되어주지만 과하면 스스로를 태운다.

연료와 자기방화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선을 밟고 걷는 중이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내디디면서.


처음 소설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을 잊은 건 아니지만 이미 한번 경험한 강렬함은 다시 맛볼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나는 아마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다. 앞으로도 꽤 많은 날을 불안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삶은 늘 과정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글쓰기 역시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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