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변화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필연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게 웹소설이 그랬다.
처음 접한 건 일본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회사에 취직했을 무렵이었다.
몇 개월쯤 지나 일에 적응하고 보니 슬슬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졌다.
‘어릴 때 보던 BL소설이나 찾아볼까?’
음지 문화는 생명력이 끈질기다. 입구를 찾는 일이 어렵지, 찾아내기만 하면 신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서치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맞이한 입구는 허탈하게도 생각보다 밝은 곳에 있었다.
이제 BL이라는 장르는 더 이상 음지문화가 아니었다. 햇볕이 잘 드는 보송보송한 자리에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놀람은 잠시였다. 나는 바싹 마른 스펀지처럼 미친 듯이 소설을 흡수했다.
쉬는 날은 밥도 안먹고 잠도 자지 않을 정도였다.
출퇴근 시간, 쉬는 시간, 점심 시간도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웹소설에 마음을 의지한 채 한동안은 거대 기업의 톱니바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5년 6개월.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과, 인풋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욕구 때문에 몸이 달아 죽을 지경이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찻길로 뛰어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사표를 냈다.
시기를 보고 있었을 뿐 사실 퇴사는 정해진 일이었다.
내 직장생활은 이후로 두 번 다시 없다.
*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된 나는 1년 간 총 6개의 공모전에 도전했다.
당시는 드라마 작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 교육원에서 수업을 듣고, 지망생들과 모여 스터디 하면서 작업에 몰두했다.
퇴직금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적금까지 깨는 건 겁이 나서 일자리를 찾았다.
평일에는 글을 썼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세 탕씩 뛰면서 생활비를 만들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갔다.
슬슬 조바심이 일었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직업도 없이 꿈만 쫓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말은 하시지 않아도 걱정하는 엄마의 눈이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10년을 노력한다고 드라마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10년을 버틸 수 있을까?’
평일에는 하루 15시간 이상 앉아서 글을 썼고, 주말에는 15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신보다 몸이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뭐라도 좋았다. ‘지망생’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작가’라고 불리고 싶었다.
*
‘이정은 작가님?’
그 순간 나는 웹소설을 쓰기로 결정했다.
정말이다.
플랫폼에서 하는 무료 강의에 참석했을 때였다.
입구에서 출석체크를 하는 직원이 기념품을 건네며 하는 말에 나는 단박에 진로를 수정했다.
웹소설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