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재복이 생각
명환이형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생각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같이 있을 때도 한번 씩 먼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하소연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봐야 고등학교 2학년생인데 형은 뭐가 그리도 걱정과 고민이 많은지.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되면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수준보다 확실히 어려워지나 보다. 특히 나는 수학에 약한데, 고등학교 가서 절절맬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그만 피터팬처럼 나이를 멈추고 싶다.
- 형, 어젯밤에 형네집 무슨 일 있었어?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리던데
- 나는 세상모르고 잤는데, 아마 부모님께서 싸우신 것 같네. 늘 그랬듯이
- 역시 어른들은 생각이 각자 뚜렷해서 의견충돌이 종종 있는 것 같애
- 그럴 수도 있고, 한쪽이 병에 걸린 것일지도. 근데, 부모님이 싸우면 고스란히 그 잔해는 자식이 받게 될 것
이라는 것은 부모님은 모를 거야. 아마도. 절대로.
- 병에 걸렸다고? 다투시면 우리가 받는다고?
- 재복아, 공터에서 공 던지기나 하자
형은 늘 어려운 말을 던져놓고 말을 돌려버린다. 자기가 무슨 시인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형이 좋다. 뭔가 나보다 똑똑한 것 같고, 나를 진심으로 챙겨주는 느낌을 늘 받기 때문이다. 형 때문에 내 삶이 어쩐지 풍성해진다고나할까. 한 번씩 나쁜 짓을 일삼는 일에 동참시키지만 나에게는 매우 쉬운 일만 시키기에 그 또한 즐겁다. 교과서에서는 잘못됐다고 지적할 일이지만 나의 일상에서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소한 놀이일 뿐이다.
오늘은 엄마가 밤늦게까지 놀고 와도 된다고 했다. 내일까지 제출할 숙제도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재복이형이랑 삼원빌딩 옥상에 놀러간다. 그곳은 우리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유일한 곳이며, 재복이형이 경비 아저씨와 친하기 때문에 우리를 늘 반가운 인사로 맞이해주신다. 아저씨는 늘 야간에 근무하시기 때문에 밤 8시에 가면 정확히 아저씨가 우리를 맞이해줄 것이다. 빌딩에 놀러갈 때마다 재복이 형은 어김없이 박카스를 한 병 준비한다. 그러면서 늘 나에게‘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세뇌시킨다. 내가 보기엔 마음씨 좋은 아저씨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두고 형과 나의 성격차이라고 해야 할까.
- 재복아, 혹시 마리오네트(marionette)가 뭔지 알아?
- 응? 그게 뭐야? 영어단어야?
- 체코 프라하라는 곳에서 시작된 건데 인형을 실로 매달아 사람이 조작하면서 펼치는 인형 연극 같은 거야.
인형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인간의 입을 빌려 말을 하고 행동하지. 때로는 춤도 추
기도 해.
- 나, 그거 티비에서 본거 같애.
- 넌 티비에서 봤겠지만 난 현실 속에서 늘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
거든.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난 그 분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
- 엇, 형 그 마리오네트라는 인형 산거야?
형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나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쓴 시라면서 혼자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정해진 발걸음 나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숱한 가시가 온 몸을 향해 오지만 하나도 피할 수 없는 내가 맞이한 찰나
길거리를 헤매는 고양이는 언제쯤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시간이 두려웠다
세상의 수많은 빛이 나를 향해 반짝이는 날을 기다려본다
내 손과 발 그리고 머리가 진짜 내 것이 되는 날에 빛이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