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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진 Nov 09. 2017

청춘마리오네트 #3

숨소리: 거친 평화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귀가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볼 일이 있다고 한 저녁이었다. 혼자서 티비를 보다가 바닥을 뒹굴다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형광등 주위로 알 수 없는 벌레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그 와중에 형광등을 뚫고 속으로 침입한 벌레들의 도전정신에 감탄하며 침투 원리를 상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조아려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의 묘기에 흥미가 떨어져갈 때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 명환이 있는가?

  - 네? 누구세요?

  - 나야, 순칠이. 시간되면 잠시 이야기나 할랑가?    


힘껏 문을 열어젖히자 송씨네 할머니 아들, 순칠이형이 환한 미소를 한 채 맥주 한 병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앉으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취기에 지배당한 순칠이형은 신발장 앞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맡기고 슬그머니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맥주 컵을 꺼내더니 힘차게 들이 붓기 시작한다.

   

  - 내가 오늘은 술이 땅기는 날이네 그려

  -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니에요?

  - 하루하루 사는 게 일이지 뭘. 이러다가 평생 엄니의 짐이 되는 건 아닌지. 명환이는 아직 어려서 좋겠구먼.

    나도 그때는 남몰래 간직한 꿈이라는 게 있었는데 말이여

  - 저도 똑같아요. 하루하루 쳇바퀴의 연속이죠.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기 보단 잠자리에 몸을 맡긴 시체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 나처럼 이 나이 먹도록 시체처럼 지내면 정말 죽어버린 느낌이여. 나는 숨 쉬고 있는데 왜 세상은 날 죽은 사

    람 취급하는가 몰러.

 

순칠이형은 연일 한숨을 내쉬며 비련의 주인공처럼 혼자서 맥주를 마셔댔다.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께 효도한 적이 없다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안경 렌즈가 짜디짠 눈물방울로 뒤범벅되고, 양 미간은 찢어진 종이마냥 구겨진 채 흐느끼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컵에든 맥주마저 가늘게 요동쳤다. 마치 밤바다의 서늘한 파도랄까. 서른 살을 넘겨버린 남자가 고등학생 앞에서 우는 심리는 무엇일까. 나는 사람을 살리는 심정으로 형에게 있는 힘껏 온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온기(溫氣). 육신까지 닿지 않는 마음을 녹이는 따뜻함. 그의 거친 숨소리가 점차 평화를 찾아갈 때쯤 남아 있는 맥주는 오줌이 되었다.     


나는 순칠이형처럼 남몰래 꿈을 간직한 적이라도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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